[메밀꽃 이는 세상]
그 언젠가의 겨울과 여름을 생각하며
어쩌다 보니 5번째 선거판에 직‧간접적으로 발을 담그고 있다. 심지어 3년을 연달아 치른 선거에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표를 받았다. 선거라는 영역을 단순한 승패의 문제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길 것으로 생각되는 캠프라는 소속감은 구성원들을 한껏 북돋았고, 나 역시 그런 분위기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좋은 분위기에서 즐기는 구성원들, 열정적인 후보, 여러 정치적 상황이 맞물려 내가 속한 캠프는 물론 여당은 예상보다 더 압도적인 결과표를 받을 수 있었다.
문득 몹시 추웠던 2012년의 겨울, 내가 서 있던 그 광화문 광장이 떠올랐다. 환호하는 사람들이 바다처럼 너울거렸고, 모두가 후보의 이름을 연호했으며,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있음을 그 어떤 때보다 뜨겁게 느낀 겨울이었다. 비록 지지했던 후보는 당선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 정부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제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겨울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어느 식당에서 부둥켜안고 울었고, 누군가는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밤새 술을 마셨다는 그런 기억의 단편이 남아있는 계절이었다. 함께 나눈 즐거움의 크기만큼이나 상실감과 괴로움의 크기도 큰 그 겨울은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2015년의 시계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렸다.
우리는 그 해 여름부터 국정교과서를 가지고 치열하게 싸웠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추적했으며, 마침내 촛불로 가득한 뜨거운 겨울을 광화문에서 다시 맞이해야만 했다. 정말 많은 이상한 일이 있었던 2015년이었고, 그 해답을 찾아가던 2016년이 있었으며, 또 다른 시작점이 된 2017년이었다. 간혹 이 시간을 기억하는 누군가와 함께 우리가 다른 곳에 있었어도 이처럼 뜨거울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결론은 대개 비슷하다. 다른 모습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의 걸음은 왠지 같은 방향을 향했을 것이라는 것.
△ 투표함에서 쏟아지는 투표용지들 (사진 - 뉴시스)
새내기의 시선으로 보는 선거의 흔적
선거는 흔적을 남기기가 참 어려운 영역이다. 어느 캠프에 속해 있던 깊숙이 개입할수록 표면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것들은 수면 아래로 묻어둘 수밖에 없다. 또한 캠프마다 스타일이 다르기에 그동안 봐왔던 몇 번의 선거판으로 일반화시키기가 어렵고,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나의 경우는 비슷한 연령대 가운데에서는 적지 않은 선거 경력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고작 몇 번의 선거를 겪어본 새내기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새내기의 시선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라 간단하게나마 이번 선거에 대한 단상 몇 가지를 남겨보려고 한다.
파이가 클수록 정작 내 파이는 더 찾기 힘들다
학창 시절 제일 좋아했던 과목은 정치였다. 어떤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그냥 그 학문 자체가 흥미로웠다. 먼 고대부터 시작된 이상적인 토의의 장, 정치적 이론과 학설들, 선구안을 가진 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것들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정치는 학문으로서의 정치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고 덜 매력적인 부분도 많았다.
이론적으로는 전문성을 갖춘 대표를 선출하고, 선출된 대표가 모여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일임하는 것이 ‘정치’이지만 정작 이렇게 하고 있는 대표는 몇이나 되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로 그 어느 때보다 후보도, 당도 많은 선거여서 이 아쉬움은 더욱 컸다.
△ 지방선거 후보자 공보물을 정리하는 선관위 직원들(사진 - 뉴시스)
아주 단적인 예로, 이번 선거에서는 지자체 장을 뽑을 선거를 제외하고는 나조차도 우리 동네를 대표해 나온 후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출퇴근길에 바닥에 떨어진 명함과 어딘가에 붙은 현수막 속 사진을 보며 저 사람이 후보겠거니 생각한 것이 다였다. 선거운동 기간이 짧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선거에 비해 정보가 너무 적었다. 그뿐 아니라 당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한 공약을 내걸어 후보별의 특색을 찾기도 어려웠다.
특히 구‧시‧군의회 의원 선거의 경우는 블로그나 SNS를 활용하지 않는 후보도 많아 공보물에만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블로그나 SNS를 사용한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특히 초선의 경우 대체적으로 선거를 대비해 신설한다) 온라인을 통해서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이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관할하는 지역이 크지 않아 직접 돌아다니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후보들의 연령대가 높다는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각 정당에서 공천 면접 시 그 어느 때보다 청년과 여성을 우대해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인들의 연령대는 생각보다 더 높았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서울특별시의 구‧시‧군의회 의원 당선인 통계를 대표적으로 살펴본 결과 전체 당선인 369명 가운데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7%(187명)를 차지한 50대였으며, 60대 이상 당선인은 26.3%(97명)였다. 50대 이상 당선인은 무려 77%(284명)인 반면 30대 미만은 0.5%(2명)였고, 30대의 경우는 8.4%(31명)에 불과했다.
물론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열정적인 의정활동을 펼쳐왔고, 펼쳐갈 당선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프라인에만 한정될 경우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의정활동 정보를 접할 수 없고, 당선자들 또한 이들의 의견 수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한 것인지 각 구‧시‧군의회의 홈페이지에는 의원들의 개인 연락처를 공개해놓고 있다. 명시된 것이 업무용 연락처일지라도 직접 연락하면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의정활동을 확인할 수 있어 유권자들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의 공간인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홈페이지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발언, 의안 발의 등 기본적인 의정활동만 관리되더라도 좀 더 촘촘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그래도 특정한 당의 후보자가 되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후보로 확정되면 선관위에 의무적으로 재산, 병역 등 각종 내용을 신고해야 하고 공보물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유권자는 이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최소한의 1차 필터링이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그 앞전의 공천과 경선 과정이다. 당에서 심사하는 공천의 경우 유권자는 물론 당원에게도 공천의 심사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물론 공천 대상자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소 어떤 사람들이 공천 심사대상이 되었는지 일반 유권자는 물론 대다수의 당원이 약력조차 알 수 없다. 공천을 통해 경선을 거칠 후보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당원의 경우 경선 투표에 참여할 수 있으니 ARS에 녹음된 몇 개의 약력을 들을 수 있어 미당 원인 유권자들보다 약간 낫긴 하지만, 몇 개의 약력으로 그 사람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니 1차 필터링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높았던 만큼 유권자들과 당원들의 관심이 높았지만 이에 비해 시스템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 않았나 싶다. 파이가 커졌음에도 오히려 내 파이를 찾아먹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크고 많을 거라던 내 아름다운 파이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굿바이 지선②에서 내용이 이어집니다.)
출처: http://hipbig.tistory.com/230 [BIG 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