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의 책임, 사회에 있다
이번 주의 마이 붐은 뭘까? 마감을 앞두고 머릿속에 지난 한 주 혹은 두 주의 기억을 되감아가는 시간을 보낸다. 이번 주는 아무래도 전세 사기인 것 같다. 루나파크의 전세 사기 썰 만화를 보고 난 뒤 내 머릿속 한 편에는 전세 사기를 당할 뻔한 기억이 머물러 있다. 지난여름부터 가을까지 전셋집을 찾고 대출을 받느라 애를 쓰던 동안에 내 머릿속에서 전세는 월세를 낮추는 방법이었지 사기의 수단은 아니었다. 그런데 강서구에서 우연히 아주 괜찮은 매물을 발견하고 전셋집을 찾으면서부터는 사기라는 게 참 쉽구나, 여차하면 사기당하는 건 일도 아니겠구나 하고 겸허하게 세상을 돌아보게 됐다.
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저렴한 매물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며 자꾸만 과하게 비싼 신축 빌라를 권하는 중개사. 무직자도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보증보험을 들어줄 수 있으니 깔끔하게 꾸며놓은 신축 빌라에 입주하라고 종용하는 중개사를 보며 신축 빌라가 왜 위험한지 아는 나는 자주 회한에 빠졌다. (신축은 매매든 전세든 거래 기록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이다.) 그가 아무리 외제 차에 나를 픽업해 여기저기 편히 데려다주어도 내 맘 한구석에선 ‘이건 아니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나를 막아줄 수 없었다. 한 발짝만 삐끗하면 계약서에 서명했을 것이고 그는 보장받을 수 없는 곳에 나를 데려다놓았을 것이다.
한동안 공부했다. 전세 사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지만 정말로 해법은 없었다. 사기 치려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다. 세입자가 조심하는 수밖에…. 그래서 이 말은 효용 가치가 없다. 어느 누가 바쁘고 지친 상항에서 전세 사기 자체의 위험성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하겠는가? 전세사기 피해방지 종합대책보다 중개사의 감언이설이 천 배는 가까이 있다. 이번 호에 실린 비적정주거에 관한 글도 연장선에 있다. 어느 누가 좁고 더러운 집에 살고 싶겠는가? 저렴한 주거 환경이 더 가까이에 있을 뿐이지. 주거는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안락하게 쉴 수 있는 집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 멀고도 멀다. 그 사실에 화가 난다. 소득이 적어도, 대출을 못 받아도, 보증금이 적어도, 넓고 쾌적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 이 점에 대해선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글/ 양수복)
헤드폰 혼용 기간
이맘때면 봄가을 교복 혼용 기간처럼 블루투스 이어폰과 헤드폰을 섞어 쓴다. 겨울에는 주변에 귀마개로 추천할 정도로 보온성이 뛰어나기에 헤드폰만으로 늦여름의 날씨를 견디긴 어렵다. 뜨거운 햇살 아래 걸어야 할 때는 이어폰을 끼고, 저녁나절 선선할 때는 헤드폰을 쓰는 게 나의 방법이다.
사실 내 헤드폰은 딱히 외관이 특출하지는 않다. 소니의 WH-H910N을 쓰는데, ‘인기템’이던 WH-1000XM4와는 디자인에 차이가 있다. 오래 쓰려면 혹시 모를 오염에도 강해야 할 것 같아서 검은색으로 구매했다. 크림색이나 회색, 힙한 사각형 헤드폰처럼 세련된 맛은 없지만 살짝 긁혀도 티가 나지 않아서 편하다. 어떤 옷차림에도 무리 없이 어울리는 점도 좋다. 아마 재구매를 해도 검은색 헤드폰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다.
단점도 있다. 원래도 ‘바리바리 바리스타’인데 헤드폰까지 챙기면 가방이 무거워진다. 귀고리와 마스크, 헤드폰을 모두 감당해야 해서 가끔 귀가 버겁다.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에 헤드폰 윗부분이 부딪히거나 애써 세팅한 머리가 눌릴 때도 있다.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건 역시 헤드폰이 선사하는 소리의 남다른 공간감이다. 이어폰이나 스피커로 들을 때는 몰랐던 곡의 디테일이 들리면 감동적이기도 하다. 종종 음향 기기 CF의 주인공이 된 기분에 빠지는데, R&B를 들을 땐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록을 들을 땐 역시 마음속으로 에어 기타를 연주한다.
헤드폰이 실력을 발휘하는 의외의 장소는 바로 집이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갖춘 헤드폰의 장점은 물론 지하철이나 버스, 길에서 소음을 최대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내 경험상 조용할 때도 즐길 수 있다. 외출할 때만 쓰기엔 헤드폰의 기능이 아깝다. 혼자만의 고요한 공간은 진짜로 헤드뱅잉을 하거나 춤을 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니 말이다. 한여름에 나온 신곡을 헤드폰으로 다시 들어볼 차례다. 이렇게 가을을 보내면 충분하다. (글/ 황소연)
<묘사하는 마음>
어떤 사랑은 때로 집요하고 촘촘하고, 그럼에도 다정하고 부드러워서 울타리 밖으로 흘러넘친다.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은 이 책의 글을 읽다가 나는 가끔 울고 싶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지’로 시작해 ‘어떻게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로 끝맺어지는 고백들. 찬찬히 들여다보고, 힘겹게 기록하고 인상적인 장면과 배우의 작은 움직임을 포착한 이 책의 글들은 리뷰이기도 하고 일기이기도 하면서 때론 비평이기도 하다.
책 제목은 <묘사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이고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태도이고 또 영화에 대한 경의이기도 해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쓰고 싶었다. 영화 잡지 <씨네21>에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됐던 글들을 다시 정리하고 묶어낸 <묘사하는 마음>은 무언가를 힘겹게 사랑한 사람의 기록이다. 읽고 있으면 해당 영화의 어떤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고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진다. 혹은 이 치열한 글들을 받아쓰고 싶어지기도 한다. 김혜리 기자가 영화를 애정해서 글을 쓴 것처럼, 나는 그의 글을 애정한다. (글/ 김송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