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한국인 최초로 박지성 선수가 2005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매우 알려진 팀이었다.
그러나 당시 200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양한 강팀들의 등장으로 과거의 리그를 지배하던 만큼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또한 유럽 무대에서도 인터밀란, 포르투 등 다양한 강팀들에게 밀려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리그나 유럽 무대에서 크게 뒤쳐지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경기력이 안 좋은 시즌에도 3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저력을 과시하였으며, 리그 우승 8회 , fa컵 1회, 챔피언스 리그 1회 우승이라는 기이한 성적을 남겼다.
98-99 시즌 영광과도 같은 트레블 이후 2000년, 2001년 맨유는 다시 한번 우승 경쟁팀인 아스널을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우승 타이틀을 거뭐진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팀의 내부 사정의 악화와 아르센 벵거의 무패 우승 아스날, 무리뉴의 첼시 등의 신흥 강자의 등장으로 3시즌 동안 리그 우승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팀의 내부 사정- 주축 선수들의 사건 사고과 이탈..
2001년, 1998-99 시즌 트레블에 일조한 맨유의 배테랑 수비수 야프 스탐은 갑작스럽게 라치오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 당시 많은 팬들이 야프 스탐의 이적에 의아해하였는데, 그의 이적에서 축구적인 요소가 기여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는 그의 자서전 'head to head'에서 당시 야프 스탐이 psv에서 맨유로 이적할 때 구단 간의 상의 없이 먼저 선수에게 접근한 일화를 폭로하였고, 이러한 자서전의 내용을 본 퍼거슨은 야프 스탐을 자신의 눈밖으로 두었다.(인터뷰에서는 퍼거슨은 야프 스탐의 장기적인 부상 문제로 인하여 이적을 결정하였다고 밝혔지만, 후에 야프 스탐이 자신의 라치오 이적에 대한 비화를 밝혔다)
그리고 2003-2004 시즌을 앞두고, 퍼기의 아이들 중 한 명이자 프리킥의 마술사라 불리던 데이비드 베컴이 퍼거슨 감독과의 불화로 맨유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였다. 당시 퍼거슨 감독은 베컴이 유명세에 취하여 연예인병에 걸렸다고 판단하여 베컴을 호되게 혼내었는데, 이에 베컴은 퍼거슨이 자신의 사생활에 너무나도 개입한다고 생각하여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을 결심하게 되었다.
2003년 12월에는 수비수 리오 퍼디낸드 쪽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는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 진행하는 도핑테스트에 불참하여 8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맨유 수비에 큰 공백을 발생시켰다. 이는 퍼디난드와 잉글랜드 국대에게도 영향을 크게 받았다. 선수 입장에서 8개월의 출전 정지 처분은 경기 감각을 잃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며, 당시 유로 2004 결승전에서도 출전할 수 없어 잉글랜드 수비진에서도 공백을 발생시켰다.
신흥강자 - 무패 우승의 아스널, 무리뉴의 첼시
팀의 내부 사정이 나빴던 만큼 외부에서는 새로운 신흥강자들이 등장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우승 경쟁을 힘들게 하였다. 이 무렵 등장한 프리미어리그 강팀들이 바로 03-04 시즌 아르센 벵거의 아스널과 04-05 시즌 무리뉴의 첼시이다.
당시 03-04 시즌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티에리 앙리, 피레스, 베르캄프 등 우수한 선수들을 데리고 리그 무패 우승을 달성하였는데, 이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또한 04-05 시즌 무리뉴의 첼시는 특유의 촘촘한 수비 전술과 수비형 미드필더 마케렐레를 활용한 4-3-3 포메이션의 활용으로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소 실점(15골)이라는 금단의 기록을 쌓으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동안 맨유는 이들에게 밀려 항상 우승을 아쉽게 놓쳤으며 특히 04-05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3위에 머물렀고 fa컵에서는 아스널에게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면서 fa컵마저도 우승컵을 내주게 되었다.
이렇듯 과거의 영광과는 대조되는 상황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의 인수를 희망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미국의 맬컴 글레이저 Malcolm Irving Glazer인데, 그는 미국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부동산 업계의 거물이다.
그는 2003년~2005년까지 맨유의 주식을 약 14억 7,000만 달러에 사들였고 2005년에는 약 1조 4,942억 원에 존 매그니어와 J.P. 맥매너스가 보유한 맨유 주식 28.7%를 인수하여 지분율 70%를 돌파하였고 , 5%를 추가하여 구단의 주식 상장 폐지와 같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지배적인 주주, 즉 구단주가 되었다.(당시 잉글랜드 클럽에 있어서 지분의 75% 이상을 소유하는 것은 지배적인 주주권을 소유함을 의미한다. 즉 이전까지의 맨유는 이러한 지배적인 구단주가 존재하지 않는 시민구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맬컴 글레이저 가문에 인수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일부 팬들은 거대 자본이 맨유를 인수하는 것에 대하여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수에 반대하며 올드 트레포드와 맨체스터 거리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부 맨유의 서포터들은 모금을 통해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라는 팀을 꾸리기도 하였다.
전체적인 팀 리빌딩과 빠른 아웃풋
미국 글레이저 가문이라는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맨유는 이적시장에서 수많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그야말로 폭풍의 이적시장(Crazy window)을 보냈다. 인수 직후 이적시장이었던 04-05 시즌 이후 2005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맨유는 에버튼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유망주 웨인 루니와 지금은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당시 최고의 유망주인 스포르팅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 멤버인 클레베르송을 영입하면서 미래와 현재의 전력을 모두 보강하였다.
그렇다고 맨유가 선수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오버페이를 한 것도 아니었다. 2005년에는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가 챔스에서 psv소속으로 좋은 활약을 보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맨유는 네덜란드 대표 수문장 반데사르과 풀백 에브라, 센터백의 비디치를 영입하였는데, 이 4명의 선수를 사들이는데 실질적으로 지출된 비용은 총 330억 원으로 혜자 딜을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 전력을 보강한 맨유의 05-06 시즌은 리그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당시 05-06 시즌에서 센터백에서는 비디치-퍼디난드가 구축하는 일명 "통곡의 벽"으로 불리며, 이전까지 숙원 하였던 수비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안정감을 되찾았으며, 중원에서는 스콜스, 박지성, 대런 플레쳐 등 각기 다른 특성의 자원들로 구성되어 중앙에서의 다채로움이 나왔으며, 중원 장악력 또한 높아졌다. 공격진에는 당시 희대의 골잡이라 불리던 반 니스텔루이를 포함하여 호날두, 긱스, 웨인 루니로 구성되어 막강한 화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다음 시즌인 06-07 시즌 다소 아쉬운 시즌을 보내야만 했다. 자국 리그에서는 02-03 시즌 이후 잃어버린 리그 우승 타이틀을 되찾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결승에서 ac밀란에게 합산 스코어 3:5로 패배하면서 아쉽게 챔스 우승을 놓치게 되었다.
따라서 07-08 시즌 전 맨유의 여름은 바빠지는 게 당연시되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공격진에서 엄청난 보강을 하였는데 우선 웨스트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카를로스 테베즈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던 오언 하그브리스 선수를 영입하고, 측면에서는 어린 나이에 스포르팅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제2의 호날두'라고 불리던 루이스 나니를 영입하였다.
이로서 맨유는 공격진에는 테베즈와 루니가 톱 자원으로 나오며 득점을 담당하였으며, 2선에서 오언이 처진 공격수로 공격을 지원하고 측면에서는 호날두가 파괴력을 가지고 무너뜨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3선 미드필더 자원에서는 캐릭터와 폴 스콜스가 전체적인 경기 조율을 맡았고 수비진에서는 비디치-퍼디난드가 통곡의 벽을 구축하였으며, 풀백 자원의 웨스 브라운과 에브라는 수비적인 역할보다는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을 담당하며, 공격에 치중을 두는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갔다.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첼시와의 막판 경쟁
전력 보강을 마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오히려 리그 개막 이후 다소 경기력이 떨어진 행보를 보였다. 개막 이후 레딩, 포츠머스,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2 무 1패를 기록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맨유는 총 1골 만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공격진을 보강한 맨유에게 아이러니하게도 공격력의 문제를 인식하게끔 하는 득점력이었다. 이후에도 토트넘, 에버튼 등 과의 클럽들을 상대로 1-0으로 힘겹게 이겨내면서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잃어버린 듯하였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후 빠르게 살아났다.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위건과의 경기에서 루니의 시즌 첫 골, 호날두의 멀티골, 그리고 이적생 테베스의 결승골에 힘입어 4-0 승리를 거뒀고 이를 기점으로 호날두, 루니, 테베스로 이어지는 공격진의 득점력이 되살아났다. 이후 맨유는 11라운드까지 모두 4-1 대승을 거두면서 리그 8연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편,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을 노리는 또 다른 팀인 아스널은 개막 이후부터 11경기 무패행진으로 좋은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맞이하는 12라운드 아스널과 맨유의 맞대결, 양 팀 입장에서는 12라운드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야만 리그 우승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었다. 결과는 2-2 무승부. 경기 내용에서는 종료 직전까지 맨유가 갈라스의 자책골과 호날두의 골로 2-1로 앞서 갔으나, 후반 추가시간에 실점을 제공하면서 맨유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운 경기였다.
이후 양 팀은 우승 경쟁팀답게 뜨겁게 우승 경쟁을 펼쳤고, 시즌 후반기 들어서는 프리미어리그의 첼시가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리그 타이틀 경쟁팀으로 합류하였다. 그리고 맨유-아스널-첼시 나눠진 3파전은 리그 막판까지 가야 그 승자가 결정되는 치열함을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 맨유가 꾸준한 경기력으로 위건과의 리그 최종전에서 호날두와 긱스의 골로 2-0으로 승리하면서 첼시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UEFA 챔피언스 리그 - Again 1999
07-08 시즌 맨유의 챔스 여정은 4강전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를 제외하고는 꽤나 순조로웠다. 우선 조별리그에서는 스포르팅 cp와 as로마, 그리고 디나모 키예프와 한 조로 순조로운 16강 진출이 예상되었다. 실제로도 맨유는 챔스 조별리그에서 6경기 5승 1 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승점 16점을 획득하며 1위로 16강에 진출하였다.
16강전에서는 리옹과 맞붙었는데, 1차전 원정경기에서는 리옹의 벤제마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리드를 당하였지만, 87분 테베즈가 헤딩골을 성공시키면서, 1-1 무승부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올드 트레포드 경기에서 열린 리옹과의 2차전에서는 41분 호날두의 선제골이 나왔고, 홈경기 이점을 살려 맨유는 계속해서 리옹의 골문을 겨냥하였다. 그러나 경기는 1-0으로 끝났다. 이날 경기에서 맨유의 선수들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에 찬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가야 했다.
8강전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맞붙었던 as 로마와 다시 만났는데, 1차전에서는 호날두와 루니의 골, 그리고 2차전에서는 테베즈의 골로 합산 스코어 3-0으로 순조롭게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최강 바르셀로나와 한판 대결...
4강전이 가장 고비였다. 4강전 상대는 바로 당시 펩이 이끌고 메시와 사비, 이니에스타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한 바르셀로나였다. 캄프 누에서 열린 1차전, 맨유는 쉽사리 바르샤의 골문을 겨냥하지 못하였다. 전반 막판 호날두가 페널티킥 기회를 얻었지만, 이마저도 실축하며 맨유의 공격력은 한 풀 꺾이게 된다. 그러나 바르샤 또한 고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르샤는 에투, 앙리, 메시로 이어지는 공격진의 화력이 맨유의 비디치- 퍼디난드라는 통곡의 수비진에 박히면서 결과는 0-0 무승부로 끝이 났다. 언론의 예상대로 양 팀 다 막상막하의 경기력을 보여준 것이다.
2차전도 똑같은 양상은 이어졌다. 양 팀의 공격진은 각각 양 팀의 수비진에게 계속 막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골문을 먼저 흔든 건 맨유였다. 맨유의 폴 스콜스는 후반 호날두의 드리블을 걷어낸 바르셀로나의 볼을 가로채 중앙 지역 부근에서 중거리 슛을 날리고, 이 슛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면서 선제골을 성공시킨다. 그리고 맨유는 자신의 리드를 경기 끝까지 지키면서 결과는 1-0으로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모스카바에서의 결승전.. 그와 걸맞은 치열함을 보여준 양 팀
9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맨유의 결승전 상대는 같은 프리미어리그팀이자, 리그에서도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던 첼시였다. 이 날 결승전은 상당히 기념비적인 경기였는데, 바로 유럽 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 결승전에서 잉글랜드 클럽끼리 붙는 경기였다. 그만큼 당시 프리미어리그팀들은 챔스에서 좋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이날 결승전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일단 선발 라인업부터 양 팀의 베스트 11이 총출동하였는데, 맨유는 테베즈와 루니가 투톱으로 나오며 득점을 책임져야 했고 측면에서는 호날두와 하그브리스 선수가 출전하였지만, 하그브리스는 측면뿐만 아니라 중앙에서도 움직임을 가져가며, 처진 공격수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미드필더진에서는 마이클 캐릭과 폴 스콜스가 구성하며 전체적인 경기 조율에 힘을 썼다. 그리고 수비진에서는 당시 믿을맨이자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던 비디치 - 퍼디난드가 짝을 이루며 상대 공격을 봉쇄하여야 했다. 그리고 풀백인 에브라와 웨스 브라운은 호날두와 하그브리스가 위차 한 측면의 파괴성을 더해주었다.(당시 결승전 선발 라인업을 놓고 우리나라 팬들은 박지성 선수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하여 많이 의아해 하였다.)
첼시는 4-3-3 전형의 포메이션을 사용하였다. 1선에서는 득점력이 뛰어난 드록바를 위치시켰으며, 2선에는 조 콜과 말루다가 측면에 위치하여 측면에서의 수적 우세를 노렸다. 그리고 중원에서는 당시 최고의 중원이라 불리던 램파드-마켈렐레-발락 조합이었는데, 발락과 램파드가 2선과 3선을 넘나들며 공격가담을 해주었고 마케렐레가 뒤에서 수비가담을 해주며 전체적인 경기를 조율하였다. 그리고 최후방라인에서는 존 테리와 카르발류가 센터백을 구성하였으며, 맨유와 마찬가지로 에슐리 콜과 에시앙이 측면에 배치되면서 수비적인 역할 보다는 측면에서의 파괴성을 더해주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선제골은 맨유가 먼저 성공시켰다. 전반 41분 스콜스와 웨스 브라운이 2대1패스로 첼시의 측면을 흔들었고, 웨스브라운으로 부터 날아오는 크로스를 호날두가 해결하였다.
그러나 맨유는 자신들의 리드를 경기내내 지키지는 못하였다. 경기 막판, 수비수들의 혼전상황을 틈 타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가 골을 성공시키면서 1-1 동점을 만들고,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연장전에서도 경기의 치열함은 이어졌다. 첼시는 연장전에서 골대를 맞추는 아쉬움을 남겼고, 맨유는 연장 후반 마지막 찬스 긱스가 찬 공을 존테리가 막아내면서 경기의 승자를 승부차기로 끌고 가야 하였다.
그리고 연장전에 이은 승부차기에서 맨유에서는 호날두가, 첼시에서는 존 테리가 미끄러운 잔디로 인하여 실축한 상황, 마지막 첼시의 아넬카가 승부차기를 실축하면서 맨유가 챔스 우승에 차지하게 된다.
07-08 맨유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다시 한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클럽을 세계 최강의 클럽의 위상으로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시즌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하면서 세계 최고의 선수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