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6일 뜨거운 여름의 단상

by 주노

손편지의 마지막에는 늘 쓰는 날의 날짜를 적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편지를 자주 전하는 나에게 그것은 일종의 일련번호 같은 것이었다. 대면해서는 전할 수 없었던, 이상하리만치 진심을 꾹꾹 눌러쓴 글의 마침표로서 날짜를 적으면 의미를 더하는 것 같기도 했다. 2025년 8월 6일 평범하게 지나가고 있는 오늘 그리고 올여름의 단상을 적어본다. 오늘을 기점으로 아프고 시렸던 초여름의 마음이 단단해졌기를 바라며. 그리고 어느 곳에 있든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온통 하얀 별로 물든 공연장과 시원한 바람이 불던 하늘을 번갈아 보며 그 순간이 오래 기억되길 바랐다.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는 대신 눈을 감자 오히려 감정이 더 벅차올랐고, 공연장의 잔상이 겹치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슬픔이 아닌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에서 흐르려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눈을 뜨자, 하늘에선 색색의 불꽃이 터졌다. 노래 제목처럼 별이 가득했던 콜드플레이 콘서트, 버킷리스트를 이뤘다는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가족 중 한 명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같은 공연을 예매해 놓고 다리를 다쳐 못 오게 된 그를 위해, 조명을 별 모양으로 보이게 하는 ‘문고글’을 챙겼다. 고글을 통해 집 안 형광등을 비추어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콜드플레이 공연 실황을 보며 우리는 평범한 안녕을 나눴었다. 다음 주엔 새로 오픈한 이케아 강동점에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정말이지 일상적인 말과 함께.


중학생 때 등교 준비를 하던 중 출근하시던 아버지가 몸이 이상하다며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걱정하지 말고 학교에 다녀오라고 하셨지만 수업 내용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몇 시간 뒤 울먹임이 심해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어머니는 “아버지가 아무래도 못 깨어날 것 같다”라고 하셨다. 1%도 안 되는 확률, 포기하라는 말을 비웃듯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건강에 큰 문제없이 지내고 계신다.


이케아에 가보자는 약속을 하고 세 시간 뒤 응급실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께 빌었다. 이번에도 아버지를 살려주셨을 때처럼 한 번만 도와달라고, 그동안 나를 지켜준 것처럼 그도 꼭 지켜달라고.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던 그에게 우리는 콜드플레이의 노래를 틀어주고 ‘문고글’을 씌워 주었다. 무미건조한 병원의 형광등을 아름다운 별 모양으로 보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식장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내 품에 안겨서 아이처럼 엉엉 울 때, 하도 많이 울어서 더 이상 나오지도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우는 모습을 보이면 그가 마음 아파할 테니 그만 울어야지 식의 성숙한 감정을 감히 가질 수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서로를 위로하며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먼저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야 비로소 그 사람이 떠난 거라고 믿는 인디언들처럼,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는 우주여행을 하러 갔을 뿐이라고 믿기로 했다. 애태우며 그리워하는 것으로 감정을 낭비하지 않고 늘 같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쉽지만 어려운 초여름이 그렇게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데 점점 커져가는 매미의 울음소리처럼, 이사 준비까지 겹친 나의 초여름은 몹시 불안하고 위태했다. 슬픔을 숨기고 회사에서 웃는 것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겪은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괴로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상처에 금세 새 살이 돋듯이 가슴 한가운데가 시린 만큼이나 남아 있는 여름을 단단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서른셋의 나이에 갑자기 철이 든 것도, 슬픔의 감정이 바닥난 것도 아니다. 명확한 이유도 없이 그렇게 보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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