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한 Feb 08. 2017

총각무 나눠먹는 길고양이 가족

몇 차례 눈이 내리고, 한파가 다녀간 겨울입니다.

골목에서 어미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가 맵고 짠 총각무 하나를 나눠먹고 있습니다. 

고춧가루와 양념이 범벅된 국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어미 고양이가 크게 한 입 베어먹자

옆에 있던 아깽이 턱시도가 나도 좀 먹자며 어미를 밀치고 총각무를 독차지합니다.

어미는 한발 물러나 그런 아깽이를 바라만 봅니다.

그마저 삼색이 한 마리는 뒤로 밀려나 입맛만 다시고 있습니다. 

배고픈 길고양이 가족의 눈물겨운 풍경입니다.



총각무를 다 먹은 턱시도의 입과 발은 김치국물이 묻어 흰털이 벌겋게 물들었습니다. 

하필이면 가져온 사료가 없어서 

나는 주차한 차가 있는 곳까지 한참이나 되돌아가 사료 한 봉지를 가져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어서 그릇도 없이 구석에 사료를 내려놓았습니다.

두 마리의 아깽이는 걸신들린 듯 숨도 쉬지 않고 그것을 먹어치우기 시작합니다. 

새끼들이 식사를 끝내자 이번에는

어미가 뒤늦게 사료를 씹어먹습니다. 

세 마리 길고양이 식구는 한참이나 코를 박고 사료를 먹고 나서야 살겠다는 듯 

눈빛이 평온해졌습니다. 



뒤늦게 어미는 큰길로 나와 눈 녹은 물로 목을 축입니다. 

골목 저편에서는 또다시 칼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일었습니다. 

모든 게 얼어붙은 계절, 

고양이는 먹을 게 없어 김치며, 언 호박이며, 배추 등 무엇이든 먹어야 하고, 

그래야 살아남습니다. 

가끔 시골길을 산책하다보면

텃밭이나 냇가에 버려진 음식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를 만나곤 합니다.



미처 사료를 준비해 오지 않은 산책길에 만나는 그 풍경은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런 맵고 짠 음식이라도 먹어야 하는 길고양이의 삶!

한겨울 며칠씩 굶주린 고양이는 저체온증으로 죽을 때가 많은데, 

그들에게 아사와 동사는 같은 말입니다. 

겨울이야말로 고양이에게 사료 한 줌, 따뜻한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입니다.



(* 총각무를 나눠먹는 모습을 보고 이후 녀석들이 영역을 떠날 때까지 나는 사료를 배달했고,

이 녀석들과의 또 다른 에피소드 또한 여러 편 책에 담겨 있다.)  

작가의 이전글 전설의 설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