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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한 Mar 28. 2018

고양이가 있는 아름다운 동백식당

제주도 원불교 교당 뒷마당에 동백이 붉다. 턱받이가 노랗게 부푼 동박새들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동백꽃 사이를 드나든다. 어떤 꽃은 동박새 부리가 닿기도 전에 투둑, 하고 떨어진다. 아침에 살풋 내린 가랑비에 낙심한 듯 져버린 동백으로 교당 뒷마당은 꽃천지가 되었다. 골목을 돌아나온 골바람에도 투욱 툭 동백이 진다. 봄이 서러워 울고 싶은 마음처럼 뚝뚝 동백이 진다. 



송이째 툭하고 떨어지는 동백은 지고 나서도 빛깔이 곱다. 어떤 고양이는 동백이 진 자리에서 붉게 운다. “꽃이 지기로소니 사료가 없을소냥!”“나 보기가 귀여워 오실 때에는 말없이 사료 가득 가져오라냥!”아무리 울어도 대답이 없자 이번에는 세 마리 고양이가 합창을 한다. “밥 주는 집사는 상기 아니 일었느냥. 문 너머 사료 빈 접시를 언제 채우려 하냐옹!”



고양이들의 합창을 듣기라도 한 걸까. 어느 손이 예쁜 할머니가 빈 그릇마다 사료를 붓고 돌아선다. 여태 기다린 고양이들의 꼬리도 승천할 기세다. 노랑이 두 마리가 각자 한 그릇씩 차지하고 밥을 먹는다. 뚝뚝 떨어진 동백꽃 너머로 까드득 까득 고양이 밥 먹는 소리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동백 식당이다. 뒤늦게 턱시도도 한 마리 지친 묘생을 끌고 와 밥을 먹는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텨보자고 꾸역꾸역 밥을 삼킨다.



저녁 무렵에 한 번 더 교당에 들렸더니 밥을 먹고 나온 삼색이 한 마리가 동백꽃만큼 고운 자태로 앉아 있다. 아침에도 만난 노랑이는 저녁까지 이곳에 머물며 동백꽃 지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녀석은 까무룩 계단에서 단잠을 자다가 동백이 질 때마다 귀를 쫑긋거린다. 그렇게 붉은 동백 너머로 고양이들도 아득하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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