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르누아르를, 블루보틀에서 세잔을 봅니다

'낭만'을 파는 브랜드와 '본질'을 파는 브랜드

by 마케터 싱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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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녀온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나 달랐던 두 거장의 그림 때문입니다.


세상의 빛나고 행복한 찰나를 화폭에 담으려 했던 르누아르(Renoir). 세상의 변하지 않는 구조와 견고한 형태를 파고들었던 세잔(Cézanne).


미술관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두 화가의 서로 다른 시선은,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두 커피 브랜드의 성공 방식과 닮아있다고 말입니다.





1. 르누아르와 스타벅스: "연결의 즐거움"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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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대표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봅니다. 사람들은 춤추고, 웃고, 대화합니다. 그림 속에는 커피 한 잔의 여유보다 더 큰 **'어우러짐의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그는 예술이 사람을 위로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스타벅스(Starbucks)**가 만들어낸 성공이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닙니다. 감미로운 음악, 편안한 소파, 이름을 불러주는 파트너. 그들은 커피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제3의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르누아르가 캔버스에 '행복한 공기'를 채워 넣었듯, 스타벅스는 매장에 **'따뜻한 연결'**을 채워 넣었습니다. 그 결과 스타벅스는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문화의 광장'**이 되었습니다.





2. 세잔과 블루보틀: "본질의 미학" (Es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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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세잔의 시선은 정반대입니다. 그는 사과 하나를 그릴 때도 찰나의 감정보다는, 그 사과가 가진 **'변하지 않는 견고한 구조'**를 담으려 했습니다.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완벽한 본질'**을 구현하는 것. 그것이 그에게는 예술이었습니다.


**블루보틀(Blue Bottle)**의 성공 방식이 이렇습니다. 블루보틀은 과감하게 스타벅스의 편안함을 걷어냈습니다. 와이파이도, 복잡한 메뉴판도 없애고 오직 **'커피 추출'**이라는 행위에만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리스타가 숨을 죽이고 물을 붓는 순간, 블루보틀은 세잔처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 컵 안에 담긴 것이 커피의 본질인가?" 이 타협하지 않는 태도 덕분에 블루보틀은 커피를 단순한 음료에서 **'숭고한 경험'**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들은 커피 애호가들의 **'성소(Sanctuary)'**가 되었습니다.





3. 깊어져야 넓어진다 (From Depth to Width)


르누아르(스타벅스)는 사람을 향해 팔을 벌려 넓어지는 길을 택했고, 세잔(블루보틀)은 본질을 향해 파고들어 깊어지는 길을 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케터로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위대한 브랜드는 **'세잔'**에서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인의 놀이터가 된 스타벅스도, 시작은 시애틀의 작은 원두 가게였습니다. 그들 역시 초기에는 좋은 원두라는 '본질'에 미쳐있던 세잔이었습니다. 그 깊이가 쌓였기에, 훗날 수많은 사람을 품는 르누아르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질문은 "둘 중 무엇을 선택할까?"가 아닙니다. **"순서"**의 문제입니다.


깊어져야(Depth), 넓어질 수 있습니다(Width). 세잔처럼 집요하게 본질을 파고든 시간 없이는, 르누아르처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확장은 불가능합니다. 본질 없는 확장은 그저 '거품'일 뿐이니까요.


당신의 브랜드는 지금 어디쯤 와 있나요? 아직 본질을 다지는 세잔의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아니면 그 본질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르누아르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나요?


분명한 건, 단단한 뿌리(세잔)만이 풍성한 꽃(르누아르)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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