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대학'은 어디서 출발했는가
54명의 지식인들이 모인 강당이 시끌시끌하다. 그때 널찍한 홀의 한 복판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문으로 걸어들어온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행복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습관과 교육으로 완전한 덕을 갖추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의 왼손에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철학을 다룬 ‘니코마스 윤리학’이 들려져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 옆에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하나가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려 보이며 열심히 말하고 있다.
“아닐세. 인간의 지식과 이성은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네. 이데아의 중요성을 자네도 인정해야 하네.”
그의 왼손에는 자연학과 우주론을 다룬 ‘티마이오스’가 들려져 있다. 그는 플라톤이다. 이 장면은 르네상스의 거장 산치오 라파엘로(1483-1572)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라는 벽화그림 속에 들어있다.
아네테 학당은 바로 플라톤이 만든 유럽 최초의 대학인 ‘아카데미아’이다. 라파엘로가 표현한 아카데미아 풍경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은 그리스시대의 지식인 스타들이며, 그들의 ‘실제 모델’이 된 얼굴들은 자신을 포함한 르네상스기의 천재들이라고 한다. 그리스시대와 르네상스가 공유하는 지적인 자부심이 느껴진다.
플라톤이 아테네 근교에 아카데미아를 세운 것은 BC387년 경이었다. 그때 마흔 살이었던 그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을 나름으로 보강하여 ‘대화편’을 저술하고 형이상학적인 체계를 완성해나가고 있었다. 아카데미아의 목적은 본원적 탐구를 통해 지식의 과학화를 추구하는데에 있었다. 특히 정치가의 육성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수학, 천문학, 화성학(和聲學)을 익혀 과학적인 탐구 소양을 갖춰야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카데미아는 일종의 ‘정치인 교양대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를 세운 것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스승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플라톤은 충격을 받았다. 정치란 무엇이며 국가와 법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회의가 몰려왔다. 그는 여행을 떠난다. 그는 시라쿠스 궁전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디오뉘시우스 1세를 알게 된다. 플라톤은 그의 정치적인 꿈을 높이 평가하여 그와 함께 이상국가 건설을 기획한다. 그런데 오히려 디오뉘시우스 1세의 음모에 걸려 노예로 팔리는 처지가 된다. 마침 노예시장에서 소크라테스를 존경했던 아니케네스가 ‘노예 플라톤’을 발견하고 그를 사서 해방시킨다. 플라톤은 아테네로 돌아온 뒤 돈을 마련하여 아니케네스에게 돌려주려 하지만 그는 받지 않는다. 플라톤은 이 돈으로 좋은 정치를 이루는 전인적인 인간성을 배양하는 ‘아카데미아’를 설립하였다는 것이다. 과연 있었던 일인지 신빙성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인류최고의 ‘대학생’ 아리스토텔레스를 낳고 그리스의 학문을 풍요롭게 했던 아카데미아가 태동하게된 내면(內面)을 읽을 수 있는 스토리이다.
‘아카데미아’의 기억은 1천년을 지나면서 중세 유럽의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에서 새로운 움직임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중세는 왜 대학을 낳았을까? 스콜라철학은 지적인 훈련을 받은 집단을 서서히 성장시키고 있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집단화함으로써 그들이 활동할 무대가 필요해졌다. 또 십자군 원정으로 사라센문화와 접촉하게 되면서 그곳의 지식들(산술, 자연과학)이 봇물처럼 들어온다. 거기다가 사라센인들이 받아들여 간직하고 있던 고대 그리스 문화가 수입되기 시작한다. 철학과 법학, 의학서적들이 중세인들의 학문적 욕망을 자극한다.이에 국왕과 교회와 시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법인단체인 ‘대학’이 점차 번성하기 시작한다. 대학을 의미하는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는, 원래 ‘모두’라는 뜻으로, 교사와 학생의 권리와 이익을 높이기 위한 ‘교육 길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단과대학을 의미하는 콜레지움(Collegium)은 학생들을 위해 독지가들이 지은 기숙사를 의미했다. 파리대학의 콜레지움은 소르본느 신부가 기부한 기숙사로 신학부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제공한 시설이었다. 나중에는 파리대학 자체를 소르본느라고 하기도 한다.
법률대학의 원조가 되는, 11세기말의 볼로냐대학은, 이탈리아 북부의 볼로냐시가 교황 및 황제와 충돌할 때 법리적인 싸움을 벌였던 것이 지적 관심의 밑천이 되었다. 노틀담 성당학교를 가지고 있던 파리는 파리대학을 낳았는데 여기는 철학대학으로 유명했다. 또 살레르노대학은 이탈리아 남부 도시인 살레르노가 동부 그리스와 근접한 곳이라는 점이 학문적 특화를 낳았다. 이곳은 전통적인 요양지로 건강과 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에 의학대학이 발전한다.
중세대학의 교실 풍경은, 우리가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대학의 모습 그대로이다. 혹자는 오늘날의 대학이 중세의 원형에서 거의 진화하지 않은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교수는 교재를 들고 천천히 읽어나간다. 학생들은 그 내용을 받아쓰고 있다. 한 대목이 끝나면 교수는 읽은 내용들을 해석하고 주석을 붙인다. 그것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수업 방식은 강의와 원서강독, 번역,질의응답 등이다. 수업이 이렇게 단조로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직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까닭도 있었다. 대학은 독립된 사회로 인정을 받았고 병역이나 세금이 면제되었고 치외법권이 허용되었다. 중세대학은 르네상스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기관이었고, 그리스의 학문과 문학을 계승하는 토양을 마련한 곳이기도 했다. 또 근대 이후의 언론자유 또한 이들 '대학‘에 힘입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대학은 ’문화의 상아탑‘에서 벗어나 기술공업사회, 혹은 산업정보사회의 역군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점차 바뀌어간다.
동양의 대학은, 중세의 우니베르시타스보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훨씬 가깝다. 중국과 한국의 옛 ‘대학’은, 정치인의 양성과 그들의 인성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플라톤이 동양에서 태어났더라면 관념과 현실을 연계하는 ‘지도자 육성의 학문’이 훨씬 풍부해졌을 것이다.
‘대학(大學)’이란 개념은 대개 세 가지 층위에서 다뤄진다. 첫째는 학교로서 ‘소학(小學)’에 대칭되는 최고학부의 범칭이다. 고대 중국의 우(虞)나라에는 ‘하양(下痒=‘양’에서 병疾부 대신에 민엄호밑으로 바꿔서 쓸 것)/상양‘이 있었고 하(夏)나라에는 ’서서(西序)/동서‘가 있었고 상(商)나라에는 ’좌학/우학‘이 있었으며 주나라에는 ’우양(虞痒=민엄호밑부의 양)/동교(東膠‘의 학제가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소학/대학‘이 짝을 이룬 것이다. 대학제도가 본격적으로 틀을 갖춘 것은 한나라 이후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의 국학(대학감), 고려의 국자감(국학), 조선의 성균관이 역시 같은 취지의 제도이다. 취학 연령에 대해서는 한나라 복승(伏勝)은 “13세가 되면 소학에 들어가고 20세에는 대학에 들어간다”고 하고 있고, 한나라의 반고(班固)는 ’8세 소학, 15세 대학‘을 말하고 있다. 소학에서 가르치는 것은 세수, 청소법, 응대법,외출 귀가법, 예법, 음악, 활쏘기, 말타기, 문자, 산수이며,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은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로잡고 제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방도 등이었다.
학제로서의 대학이 아니라 서명(書名)으로서의 ‘대학’이 있다. 대학은 원래 ‘예기(禮記)’의 49편 중에 제42편이었는데 송나라 때 단행본으로 떨어져나왔다. 주자가 ‘대학장구(章句)’로 정리하면서 중용, 논어, 맹자와 함께 4서의 하나가 되었다. ‘대학’의 저자를, 주자는 증자라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예기의 저자인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라고 하기도 한다. 대학은 옛날 교육기관이 ‘대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교재라고 주자는 설명한다. 이 책은 경(經)과 전(傳)으로 나눠지는데, 앞의 것은 성인의 말이며 뒤의 것은 그것에 대한 주석이다. 대학은 5개의 장으로 되어있는데, 핵심은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지식을 철저히 해야한다는 얘기이다. 지식이 의지를 낳고 의지가 마음을 낳고 마음이 몸을 낳으며, 몸이 집안을 다스리고, 다시 나라를 다스리고, 그렇게 해야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논리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지식예찬론인데, 이같은 교육원론이 철저히 실천되어 유럽의 아카데미아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동양의 학제들이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이었고 그 구성원들 또한 학문적인 성취도에 따라 선발된 것이 아니라, 왕족과 귀족 자제들을 중심으로 입학했던 제도적 한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세째 대학의 개념은 ‘대인의 학문’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대인은 군자라는 것과 통하는 말로, 재덕있는 사람과 다스리는 사람을 아울러 지칭한다. 동양에서 지도자는 바로 ‘덕을 갖춘 사람’과 동일시되었다. 덕은 일을 처리하는 수완 그 이전의 인성적 바탕을 의미한다. 학문이란 말은 요즘의 학리적 탐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천궁행의 뜻을 담고 있다. 이 땅에서 오랫 동안 제도로 운영되었고, 또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겨져온 대학은, 어느 사이엔가 서양의 중세대학 개념에 덮이어 의미와 가치가 퇴색되었다. 우리가 진실로 바로세워야할 대학의 정신적 근간은 오히려, 낡아가는 책 속에 생생한 숨소리로 숨어있는 고전 ‘대학’이 이미 명명하게 밝혀놓고 있는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