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희망없이
꽃마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해를 그리워하지 않는 꽃이 없겠지만 유독 멀쑥하게 큰 키로 햇살에 목말라 하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노라면, 갈구(渴求)의 차이,염원의 차이가 한 존재의 운명을 빚어내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워낙 태양만 생각하고 그곳으로만 고개 돌리다보니 꽃모양 마저도 자신이 사모하는 것을 닮아버렸습니다. 해바라기의 바깥꽃,즉 노란 혀처럼 생긴 꽃들은 실은 별로 필요없는 장식용이라고 합니다.그 큰 꽃잎 안쪽의 작은 천개의 꽃잎이 암술과 수술을 가진 진짜 꽃입니다. 하지만 저 노란 설상화(舌狀花)는 태양의 광휘를 예찬하고 증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해바라기의 아름다운 빛둘레입니다. 너무 힘있는 것에만 기대고 애쓰는 노력들이 세상의 아첨을 닮았다 하여 때로는 곱잖은 은유법에도 동원되는 것이 이 꽃입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도는 것은 어릴 때 뿐입니다.철들어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면 천진한 향일(向日)을 거두어버립니다.자신을 만들고 키워준 햇살의 젖줄을 떼면서 그는 홀로서기를 합니다. 얼마나 번뇌가 있었겠습니까. 이름마저 다른 존재에 붙들려있는 해바라기가 해를 벗어나려는 저 진지한 고집. 저 살을 깎는 인식의 성장이 한 생애를 완성할 것입니다.
향일의 꿈을 불태우는 또다른 기이한 꽃은 나팔꽃입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마는>이란 임주리의 노랫말은 틀렸습니다. 나팔꽃은 한밤중에 꽃잎을 벌리기 시작하여 새벽에 활짝 핍니다. 그리고 한낮에 시들고 맙니다. 태양을 그리워하여 피는 것이라면 너무 성급합니다. 깊은 밤부터 몸을 열어 햇살을 그리워하건만 늘 새벽은 너무 늦게 찾아옵니다. 이윽고 햇살이 그의 꽃잎을 두드렸을 때는 이미 너무 지쳐있습니다. 하루 그 한번의 개화로 꽃잎 하나의 생애는 끝납니다.여름 내내 나팔꽃이 피어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줄기의 눈마다 언제나 다른 꽃들이 쉼없이 벙글기 때문입니다. 성급하게 피었다가 아쉽게 지고마는 꽃이라서 <속절없는 사랑>을 앓는 가슴에 곱게 아른거리는 꽃이 되었습니다.
달맞이꽃 또한 어떤 사모(思慕)를 품은 꽃입니다.
풀이라 부르기엔 너무 우뚝 자라있는 줄기끝 잎겨드랑이에 노오란 꽃잎을 내는 이 꽃은 그 가녀린 형상 때문에 수줍고 섬약해보입니다. 어찌하여 이 꽃은 "달맞이"란 이름을 가졌을까요? 왜 해바라기처럼 달바라기가 아니라 그냥 달맞이일까요? "맞이함"만 있고 그 후일담이 생략되어 있는 이 꽃은 그러기에 어떤 비극을 품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는데요. 달맞이꽃은 달이 뜨면 피고 달이 지면 지는 꽃은 아닙니다. 달이 없는 밤에도 달맞이꽃은 피어있답니다. 학자들은 달맞이꽃이 달의 빛이나 온도 때문에 피는 것이 아니라 노을빛 태양에 힘입어 피는 꽃이라 합니다. 지는 태양을 품고 피어난 꽃이란 얘깁니다. 그렇다면 그 이름은 어찌된 일일까요? 남들은 다 환한 낮을 기다려 뭇시선을 받으며 꽃을 피우는데 유독 어둠을 택하여 홀로 황홀히 스스로의 불을 켜는 그 고독함 때문에 아마도 무엇인가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추측한 까닭일까요? 달이 뜨지 않는 밤엔 달을 그리워하고 달이 뜬 밤엔 이윽고 그 달빛에 부드러운 몸을 맡기며 사랑을 한다고 하여 달맞이꽃이던가요? 어쨌든 달빛은 좋겠습니다.그가 있으나 없으나 먹구름 속에 가렸거나 그믐의 피로에 몸져누웠거나 한결같이 그를 기다리는 꽃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 사모는 달에 연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부에서 키운 햇살의 사랑이기에 달의 형상이나 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지고지순의 정념으로 불태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캄캄한 밤에 서늘하게 젖어오는 이슬을 튕기며 산골짜기에 피어있을 달맞이꽃을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 이뤄질 수 없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쉽게 뜻에 취하고 유혹에 반하고 사소한 이유들로 번뇌하고 뒤돌아서는 인간의 부질없는 사랑을 경계하는, 신의 은유법일까요? 저 작은 꽃잎을 내밀어 보여주는 정갈한 자태,그윽하게 풍겨나는 향기는 아무래도 무심히 보아넘기기 어렵습니다.
강원도를 지나는 기차의 창에서 달맞이꽃을 보았습니다. 밤이라야 필 꽃이라 꽃잎의 일부를 닫고 있었지만 초췌하지 않고 씩씩한 기다림을 이어가는 희망찬 기색이 엿보이는 듯 했습니다.
가망없는 사랑이라 한 들 어떻겠습니까? 마음의 무명(無明)에 홀로 황홀히 그리운 꽃을 피워내는 일, 이 그리움은 오로지 나의 것입니다. 그가 다만 거기 있기 때문에 빛을 보탠 것이지 그에게 매달려 사랑의 얼개 모두를 만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겠습니까? 이 고독도 사랑의 귀한 일부인 것을.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