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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Jun 28. 2024

서울국제도서전 팔레스타인 강연 후기

그토록 고대하던 도서전 강연을 마치고 왔습니다. (앗...그러고보니 사진을...찍은 게 없네요...)


9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두 명의 연사 + 사회자까지 있어서 사실 여러모로 시간 관리가 어려운 강연이었습니다. 조금도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하고 말 그대로 수박 겉핥기로 끝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잘 모르시던 분들이나, 국내에 출간된 서적 또는 대학 강의 정도만 들어보신 분들께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특히, 청중분들이 정말로 좋은 질문을 해주셔서 더욱 좋은 강연이 완성되었습니다. 질문 주셨던 분은 강연 끝나고도 저랑 30분 동안 질의응답을 이어갔습니다. 강연시간이 짧아 답답했던 제 마음을 두 분이 풀어주셨습니다.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두 시간짜리 제 강의를 들으셨던 대학생이신데, 오늘 친구까지 데려오셔서 같이 강연을 들으셨습니다. 더 전문적인, 혹은 새로운 내용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오셨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터라 많이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 저녁 대접하고 세 시간 동안 전문적인 수준의 질의응답을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너무나도 반갑고 감사합니다. 제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까지의 팔레스타인 역사에 관해서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이고, 또 1차 사료까지 연구한 유일한 연구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제 목소리에 귀 기울이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책은 기대 이상으로 잘 팔리고 있긴 합니다. 7개월 만에 벌써 800권을 돌파했습니다. 좋은 서평에, 출판사 메일로 감사 인사까지 전해주시는 독자분들도 계셨고요.


그렇지만 일반 대중은 대체로 관심도 없고 너무 어려운 주제라서 들여다보길 꺼려하는 게 현실이죠. 대로 팔레스타인에 관심이 있거나 중동 지역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안다고 착각을 하고 제대로 된 연구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적이나 강연을 보면, 100년 전에 떠돌던 소문 같은 거를 진실이랍시고 가르치는 분들이 수두룩합니다. 영국이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거나, 그 이유가 1차 대전의 전쟁자금 마련을 위해서였다는 등 기초 중의 기초적인 내용조차 틀리고요.


제가 대학 시절에 우리 학계 수준에 정말 크게 실망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국가정보론에 관한 수업을 듣고 특정 주제를 더 공부하려고 최신 연구서적을 찾아봤는데, 마침 그 해에 발간된 대학교재용 학술서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해당 내용을 찾아봤는데.... 세상에. 제가 그날 아침에 봤던 영문 위키의 내용을 글자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번역만 해서 적어놨습니다. 무려 두 페이지를요. 당연히 출처 표기는 없고요.


이처럼 대학 교수 중에 연구에 게으르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팔레스타인 관련해서도 수업 시간에 제대로 된 내용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도서전 강연 중에 국내에서 팔레스타인을 전문으로 연구한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아는 선에서는, 단국대 홍미정 교수님과 저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홍 교수님께서는 팔레스타인을 넘어 중동을 아울러 연구하신 중동전문가이시지만, 이스라엘 정착촌을 연구해서 박사 논문을 내신 분이고, 팔레스타인 관련 책도 가장 많이 내셨습니다.


이외에 팔레스타인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은 한겨레 신문의 정의길 기자님이 계십니다. 기자님도 팔레스타인만을 전문으로 하시는 건 아니시지만 유대인 역사 관련해서 책을 내셨고, 팔레스타인이나 중동 관련 기사 읽어보면 전문성이 확실히 돋보입니다. 다른 기자들은 외신보도를 요약번역해서 옮기고 있지만, 정의길 기자님께서는 자기 언어로 말씀하시지요.


오늘 도서전에서 질문받은 내용 중에 그나마 믿을 만한 언론이 뭐냐는 게 있었죠. 시간도 부족하고 같이 연사로 나오신 분이 JTBC 기자님이시다 보니 답변을 안 드렸는데, 팔레스타인이나 중동에 대해서는 한겨레가 제일 낫습니다. 보도할 때 사건의 맥락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입니다. 다만, 아시다시피 한겨레는 좌파 성향이 두드러져서 이스라엘 입장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으니 이 점은 염두에 두고 읽으셔야 합니다. (과거엔 경향신문이 더 적극적이었는데 요즘에는 안 그렇더군요.)


국제 언론으로는 뭐, 다들 들어보셨을 알자지라가 좋긴 하지요. 그런데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친팔레스타인 일색이라서.... 저는 BBC를 더 추천합니다. BBC는 친팔레스타인 언론으로 비판받고 있긴 하지만, 중립에 제일 가깝습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서 가장 전문성 있는 언론으로 첫 손에 꼽힙니다.


저는 지금 국내에서 유일하게 팔레스타인 분쟁 전문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팔레스타인만으로는 국내에서 먹고 살 방도가 없다고 다들 중동전문가로 확장해야 한다고 조언을 주시네요. 저도 이게 현실이란 건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문제는 중동에 있는 나라가 많다 보니 중동 전문가가 되어버리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제대로 연구를 못하게 됩니다. 다른 교수님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기초적인 것조차 모르는 이유가 때문이지요.


우리가 미국 전문가, 영국 전문가 이런 들어봤어도, 아메리카 전문가, 유럽 전문가는 들어봤죠? 그런데 유독 중동이나 아프리카, 동남아 쪽은 나라 하나하나를 파고들려고 하지 않고 뭉뚱그려 공부하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틀릴 수박에 없죠.


저는 그런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아서 적어도 몇 년간은 더 팔레스타인 문제를 파고들 생각이긴 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식민지배의 구체적 유형과 사례'나, '분쟁이 아닌 일상 속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은 정말 중요한 주제인데, 저 아니면 아무도 연구해서 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디 그때까지만이라도 현실이란 무게를 버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국제도서전 강연은 참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지금 쓰고 있는 <언론에서 말하지 않는 가자지구 전쟁의 진실>부터 얼른 마무리 지어서 세상에 선보이겠습니다.


일반인용으로 쓰는 책인만큼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길 기대하고 있는데, 주위에서는 부정적이네요. 그러나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을 썼을 때도 다들 고개를 저었지만 좋은 성과가 나왔듯이(책 잘 팔리니까 자기는 그럴 줄 알았다고 말 바꾸는 모습이 참....), 저는 우리 사회에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단지 그동안 나온 책들이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뿐이지요. 저는 그런 분들께 흡족할 만한 책을 써내고, 그래서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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