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거저리

건강한 숲이 품어낸 '불편한 자연'의 기록

by Eco archivist

도깨비거저리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대체 이런 종은 대체 어디서 찾는 거야?"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기괴한 뿔을 동반한 단단한 외골격과 ‘도깨비’라는 수식어는 오랫동안 나를 설레게 했지만, 실체를 마주하기란 전설 속 영물을 찾는 것처럼 막막했다.

내 주변의 산을 아무리 뒤져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막연한 기대를 접고 녀석의 생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도깨비거저리 수컷


이들은 식물을 먹는 초식성(Herbivorous)이나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육식성(Carnivorous)이 아닌, 버섯을 주식으로 삼는 '균식성(Fungivorous)' 곤충이었다.

많은 종류의 거저리들이 그렇듯, 우리에게 익숙한 생존 방식 너머 균류라는 또 다른 세계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이 신선한 존재들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그들의 여정을 추적하기로 했다.

이론은 명쾌했다. 녀석을 만나기 위해서는 '말굽버섯'이 자생하는 고목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정작 주변 산천에서 온전한 말굽버섯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고, 이번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굽버섯은 식용과 약용으로 워낙 인기가 높은 탓에,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이템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도깨비거저리는 그렇게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전설'과 같았다.

말굽버섯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사람의 욕심이 훑고 지나간 자리를 한참 벗어나, 산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깊은 숲에 들어서고서야 비로소 실마리를 찾았다.

그곳은 식생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농약이나 비료 같은 인위적인 오염 물질로부터 자유롭고, 쓰러진 고목들이 자연스럽게 방치되어 균식성 곤충들이 살아가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었다.

환경적 균형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그 숲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타임캡슐 같았다. 사람의 눈을 피해 깊은 품 안에서 당당히 자생하던 거대한 말굽버섯들은 그 자체로 숲의 건강함을 증명하고 있었고, 그 거친 외피 위로 마침내 전설 속 영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깨비거저리 수컷(左), 도깨비거저리 수컷, 암컷(右)


성충은 위협을 느끼는 순간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땅바닥으로 몸을 던져 낙엽 속으로 사라지는 기민한 방어 전략을 구사하지만, 버섯이라는 요새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 견고한 성벽 안쪽에는 녀석들이 남긴 알과 유충이라는 '확정적인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실 이 전 생애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 시작한 사육은 또 다른 경외심을 선물했다.

성충의 단단한 외피 뒤에 숨겨진 연약한 유충과 번데기의 시간을 공유하며, 나는 문헌 속 지식을 나의 생생한 감각으로 치환해 나갔다.

도깨비거저리 유충과 번데기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이들은 버섯 균사가 파고든 나무의 '리그닌(Lignin)' 성분을 분해하며 숲의 조각가 역할을 수행한다. 사육통을 가득 채운 '퀴논(Quinone)' 계열의 고약한 방어 물질 냄새조차 이제는 숲의 포식자로부터 이 느린 생명을 지켜주는 완벽한 화학적 성벽으로 느껴졌다.

생물이라는 것이 참 묘해서, 이처럼 한 번 제대로 눈을 맞추고 나니 비로소 '생태적 검색 이미지(Search Image)'가 각인되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녀석들은 더 이상 말굽버섯에만 국한되지 않고 숲의 무늬 곳곳에서 내 눈에 포착되기 시작했다.

말굽버섯의 도깨비거저리


도깨비거저리를 처음 만났던 그 숲처럼, 우리 곁의 산들이 본연의 균형을 되찾고 온전히 지켜졌으면 좋겠다. 쓰러진 고목이 자연스럽게 썩어가고 말굽버섯이 당당히 자생할 수 있는 그 '불편한 자연'이야말로, 균식성 곤충들이 전설이 아닌 일상으로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녀석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순수한 경외심을 가슴에 새기며, 이제 나는 새로운 여정을 준비한다.

주로 소나무잔나비버섯을 기주로 삼는다는 녀석의 작은 친척, '아기도깨비거저리'를 내 생물 위시리스트의 가장 윗줄에 올려두기로 했다.

말굽버섯을 찾아 활엽수림을 헤맸던 집요함으로, 이제는 소나무잔나비버섯이 깃든 깊은 침엽수림의 품을 향해 나의 아카이브를 확장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