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지 않는 천생 뮤지션의 빈자리

신해철 데뷔 30주년에 부쳐

by 한동윤


많은 이가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예감했다. 얼굴은 곱상한데 풍기는 카리스마가 예사롭지 않았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긴장한 기색 없이 노래도 시원스럽게 잘 불렀다. 직접 작사, 작곡했다는 경연 참가 작품 '그대에게'는 박력이 넘치면서 구성도 특이했다. 뇌리에 깊이 박힐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그날 대상 트로피는 '그대에게'를 부른 무한궤도에게 갔고, 밴드의 리드 싱어이자 노래를 만든 신해철은 음악계 종사자들과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다.


신해철은 이듬해 발표한 무한궤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에서 수록곡 절반을 작사, 작곡하며 남다른 음악성을 재차 선전했다. 그가 지은 곡들의 구조는 대체로 웅장했지만 까다롭지 않은 멜로디를 지녀 음악팬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갔다. 노랫말은 현실적이면서도 깊이 있었다. 타이틀곡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는 젊은 날의 낭만,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담아 또래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이후 솔로로, 록 밴드 넥스트로 활동할 때에도 신해철은 매번 다채로움과 견고함을 동반해 보였다. 재즈('재즈 카페'), 힙합과 하우스 음악을 혼합한 힙 하우스('도시인'), 프로그레시브 메탈('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전자음악과 국악, 록의 퓨전('Komerican Blues'), 아카펠라('아가에게') 등 대중음악의 여러 양식을 진취적으로, 알차게 소화한 궤적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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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넥스트 가동을 잠시 중단한 뒤에는 윤상과 결성한 노 댄스로, 크롬이라는 예명을 내세워 전자음악에 집중하기도 했다. 2014년에 낸 첫 번째 솔로 EP에서는 1인 아카펠라, 펑크(funk) 록, R&B 등 흑인음악을 주로 들려줘 또 한 번 신선함을 나타냈다. 신해철은 쇄신과 탐구의 걸음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


표현 면적을 나날이 확장했지만 그는 기존하는 다른 이의 곡을 모방하는 꼼수를 부리지 않았다. 늘 주관이 뚜렷했다. 외국 노래를 당당하게 베끼는 행태가 끊이지 않는 가요계에서 신해철은 순결한 창작으로 돋보인다.


다수가 한 번쯤 할 법한 고민을 다루거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명한 가사도 신해철을 특별한 음악가로 여겨지게끔 한다. 불투명한 앞날, 사회가 정해 놓은 성공의 기준 때문에 불안해하는 청춘들에게 위로를 건넸으며('나에게 쓰는 편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번민하는 이들을 격려했다('The Dreamer'). 속도를 최고의 가치로 받드는 현대 산업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스케치했고('도시인'), 물질만능주의의 만연을 비판하기도 했다('Money'). 휘발성 연애담을 주메뉴로 삼는 보통의 가수와는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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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그의 노래들은 대중의 보편적 감수성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거울 역할을 했다. 또한 갖가지 쟁점과 워낙 일상적이어서 간과하기 쉬운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 동시대 젊은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며 지성의 발육을 도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성스러운 연구, 기술적 성장, 철학적 사색을 담보함으로써 감동과 즐거움을 안긴 신해철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유행에 연연하지 않고 부단히 자신을 담금질했으며, 작품을 통해 진중한 물음을 던지는 천생 예술가였기에 그의 부재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크게 느껴진다. 올해로 데뷔 30년, 이 기쁘고 대단한 역사를 기념할 당사자가 없어서 더욱 아쉽다.



국민일보 한동윤의 뮤직플레이

https://entertain.v.daum.net/v/20181015040105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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