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쿼시바인즈 [신세계], 록으로 벌이는 주술의 세계

멋진 록 음악은 계속 나오고 있다.

by 한동윤

록 음악 애호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푸념이 있다. "록은 완전히 끝났어." 맞는 말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처참한 현실은 이 반복되는 한탄을 매번 수긍할 수밖에 없게끔 한다. 록 음악이 빌보드 차트나 영국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광경은 이제 보기 어렵다. 국내 음원차트도 마찬가지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인지도가 갑자기 오른 경우가 아니면 록 음악이 음원차트에 드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록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 지 오래다.


그렇다고 록이 아예 사멸한 것은 아니다. 외국에서는 힙합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돌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많은 록 뮤지션이 활동하고 있다. 당연히 록 음반도 매일 출하된다. EBS <스페이스 공감>, KBS1 <올댓뮤직> 말고 록 뮤지션을 소개하는 방송이 없다 보니 다수에게 전파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록이 변두리로 밀려나긴 했어도 출중한 인물, 근사한 작품은 꾸준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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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시된 음반 중에서는 스쿼시바인즈(Squash Vines)의 데뷔 앨범 [신세계]가 가장 눈에 띈다. 도깨비 네 마리 사이로 힘 있게 내디딘 거대한 발이 그려진 민화풍의 앨범 커버부터 시선을 끈다. 내용물도 독특하다. 리드 싱어 이기범, 기타리스트 홍승기, 베이스 연주자 장광순, 드러머 제이로 이뤄진 이들은 익스페리먼틀 록과 사이키델릭 록, 헤비메탈을 버무려 한껏 별난 면모를 뽐낸다. 야릇한 구성을 바탕으로 몽환적인 기운을 풍기는 동시에 박력도 내보인다.


앨범을 들으면 많은 이가 굿판을 떠올릴 듯하다. 스쿼시바인즈는 스네어와 베이스 드럼, 하이해트가 주가 되는 보편적인 비트 대신 톰톰과 심벌즈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채로운 리듬을 들려준다. 이렇게 연출된 소리는 장구와 징이 중심 악기로 나서는 굿판의 배경음악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사납고 어지럽게 울리는 전기기타 연주가 더해져 분위기의 명확한 고조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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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도 굿판 풍경을 연상하게끔 하는 데에 일조한다. 록과 헤비메탈에서는 고음으로 날카롭게 내지르는 가창이 흔하지만 이기범은 내내 굴곡진 창법을 구사한다. 각 문장 마지막 음절 모음의 음을 위아래로 올렸다가 내리는 '귀기'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여기저기에서 마치 주문을 외는 것 같은 애드리브를 행해 무속의 향이 시종 지속된다. '샬롬'에서는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가사를 반복해 주술적 기운을 한층 진하게 퍼뜨린다. 한편으로 이기범의 보컬은 인도의 사원, 혹은 티베트인들이 사는 마을에서 들을 법한 형태라서 이국적인 정취도 함께 선사한다.


특색이 충만한 앨범이다. 그러면서도 견고한 짜임과 튼실한 연주까지 갖췄다. 2011년 딜리버 어스(Deliver Us)라는 밴드로 미니 앨범을 발표했던 스쿼시바인즈는 이름을 바꾼 뒤 지금까지 활발하게 공연을 벌여 왔다. 오랜 기간 무대를 경험하면서 밴드는 음악적 역량을 배양했으며, 자신들만의 색도 완성했다. 스쿼시바인즈에게 [신세계]는 숙련 끝에 얻은 귀한 결실이다. 더불어 록 마니아들에게는 록의 시대가 저문 이때에도 멋진 록 음반은 존재함을 알려 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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