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을 맞은 푸지스 [The Score]

대중성을 강화해 큰 성공을 거둔 얼터너티브 힙합 명반

by 한동윤

2월 12일 미국 뉴저지주의 이스트오렌지시가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뉴저지주 출신의 힙합 그룹 푸지스(Fugees)가 1996년에 발표한 2집 [스코어](The Score)의 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성대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시장은 선언문을 발표하며 푸지스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칭송했다. 푸지스와 [스코어] 앨범이 대중음악계에 돋보이는 자취를 남겼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1994년 출시된 푸지스의 데뷔 앨범 [블런티드 온 리얼리티](Blunted on Reality)는 이렇다 할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앨범과 싱글들의 차트 성적은 모두 초라했으며, 음악 매체들의 평가 또한 미지근한 편이었다.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푸지스는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세 멤버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 로린 힐(Lauryn Hill), 프라즈 미셸(Pras Michel)은 실력을 자부하고 있었기에 세상이 언젠가는 자신들의 재능을 알아줄 것이라 믿었다.


레코드 회사의 사장 역시 푸지스의 능력을 신뢰하며 다음 음반 제작을 독려했다. 회사로부터 제작비 13만 5천 달러를 받은 그룹은 악기와 녹음 장비를 사서 리더 와이클레프 장의 친척 집 지하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이곳에서 멤버들은 반년 동안 곡을 만들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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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완성된 [스코어]는 1집보다 훨씬 가벼운 사운드를 들려줬다. 1집의 '내피 헤즈'(Nappy Heads), '리차지'(Recharge) 등에서 접할 수 있었던 괄괄한 래핑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데뷔 앨범의 거친 태도를 잠시 내려 두고 힘을 확 뺀 채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킬링 미 소프틀리'(Killing Me Softly)가 전략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유명한 노래를 부름으로써 친숙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힙합 스타일로 편곡해 흑인음악 마니아들의 지지도 획득했다. 밥 말리(Bob Marley)의 원곡을 재해석한 '노 우먼, 노 크라이'(No Woman, No Cry)도 원곡의 지명도에 힘입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뉴에이지 가수 엔야(Enya)의 '보디시어'(Boadicea)를 이용해 은은한 분위기를 조성한 '레디 오어 낫'(Ready or Not)도 무게를 줄인 제작 방식을 보여 줬다.


노선을 완전히 변경한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아이티 출신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놀림을 당하곤 했던 와이클레프 장은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1집의 몇몇 노래에서 미국 사회를 향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2집에서도 사회적 약자라서 차별받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어느 정도 내보였다. 하지만 긍정적인 노랫말의 비중을 높이고 부드러운 틀의 음악을 다수 마련해 청중을 향한 접근성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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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에 비해 한결 느긋하고 순해진 [스코어]는 푸지스에게 크나큰 성공을 안겼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랩 앨범'을 수상했으며, '킬링 미 소프틀리'로는 '최우수 R&B 퍼포먼스 듀오, 그룹' 부문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스코어]는 2021년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2천 2백만 장 넘게 팔렸다. 1994년에 맛본 고배의 기억은 말끔히 잊히고도 남을 성과였다.


2집을 통해 음악성을 검증했을 뿐만 아니라 인기도 얻은 세 멤버는 이후 솔로로서도 탄탄대로를 달렸다. 멤버들이 솔로 활동에 만족하면서 푸지스는 자연스럽게 해체에 이르게 됐다. 푸지스는 이제 없지만 여전히 많은 음악 팬이 [스코어]를 찾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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