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있긴 있다
연습생들이 방송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매니저가 윽박지르며 다그친다. "야, 카메라 들어오면 내 얼굴 나왔을 때 좀 따먹어야 될 거 아냐." 걸 그룹 나인뮤지스의 데뷔 과정을 기록한 2014년 다큐멘터리영화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매니저의 지시는 앵글에 잡혔을 때 최대한 멋진 표정을 지으라는 의미다. 잘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긴 하지만 성적인 뉘앙스가 담긴 표현, 고압적인 태도를 통해 일부 연예계 종사자들의 상스러움을 확인하게 된다. 소속사 직원들의 연습생들에 대한 인격적 존중이 부족해 보이는 행동은 이외에도 더 나타난다.
나인뮤지스의 영화에 담긴 모습은 약과였다. 지난 10월 중순에는 6인조 보이 밴드 더 이스트라이트(The EastLight)의 멤버 이석철 군이 2015년부터 소속사 미디어라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김창환과 소속 프로듀서 문영일로부터 지속적으로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해 왔다고 밝히는 일이 있었다. 지각, 연주 실력 부족, SNS 활동 불참 등 별별 이유로 수시로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야구방망이로 때렸다고 한다.
멤버들이 10대이기에 대중이 받은 충격과 분노는 매우 컸다.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들 프로듀서를 엄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물은 닷새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한국 연예 기획사의 부끄럽고 참담한 민낯이다. 이 사건으로 권력을 앞세워 소속 연습생이나 아티스트에게 횡포를 일삼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무리 기량을 키우고 활동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목적이라고 해도 사납게 말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무식한 짓이며, 있어서는 안 될 비인간적 행위다. 미디어라인은 이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다고 회사를 소개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구성원들은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지도가 있는 회사에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 것을 감안하면 작은 무명 기획사들의 사정은 더 심할지도 모른다.
더 이스트라이트 멤버들처럼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나이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10대에 가수로 데뷔하는 아이들이 적잖다. 이들은 가수를 준비한다고 매일 상당한 시간을 회사가 마련한 연습실이나 숙소에서 보낸다. 따라서 기획사는 어린 연습생, 가수들에게 제2의 믿을 만한 학교와 가정이 돼 줘야 한다. 지성을 기르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살뜰히 지도해야 한다. 어른으로서 마땅한 책무다. 하지만 이런 환경을 제공하는 기획사는 거의 없다.
그동안 연예인 지망생이나 소속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한 기획사의 착취, 성추행 등 이런저런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방지하고자 2014년 7월부터 연예 기획사 등록제가 시행됐다. 이전까지는 국가에 신고만 하면 회사를 열 수 있었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기획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 관계자들은 소양이 부족하고 미덥지 못한 사람들의 업계 유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을 테다.
안타깝게도 더 이스트라이트의 피해 사례가 말해 주듯 까다로운 개업 절차가 완벽한 방어막이 되진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악인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때문에 전담 인원을 꾸려 주기적이며 적극적으로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 절실하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17조, 18조에 이 업무가 명시돼 있지만 실행은 빈약하기만 하다.
20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