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음악

스무 살을 맞은 <분노의 질주>와 함께한 사운드트랙

노래 덕에 질주의 생동감이 배가됐다.

by 한동윤

20년 전 시작된 그들의 질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1년 6월 짜릿한 스피드 액션으로 수많은 영화팬을 홀린 <분노의 질주>(Fast & Furious)는 2년, 3년 터울로 계속해서 극장가를 방문하고 있다. 예산의 다섯 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1편을 비롯해 전 시리즈의 박스오피스 성적이 훌륭하다. 이러니 꾸준히 제작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많은 인기에 힘입어 <분노의 질주>는 새천년 이후 만들어진 액션 영화 중 가장 장수하는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게 됐다.

148310-tv-feature-what-order-should-you-watch-the-fast-and-furious-films-in-image1-rzgajwfo2x.jpg

이 시리즈의 으뜸 성공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잘 달리는 근사한 자동차다. 아무리 외제차를 타는 인구가 부쩍 늘었다고 해도 쉽게 볼 수 없는 고급 스포츠카들을 100여 분 동안 구경할 수 있으니 확실히 눈요기가 된다. (자동차로 변신하는 로봇이 주인공인 영화보다 더 많은 차량이 등장한다.) 게다가 그야말로 쌩쌩 달려서 쾌감이 느껴진다. 가끔 미친 듯이 신 나게 드라이브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주인공들의 겁을 상실한 운전이 대리만족을 시켜 준다.


한편으로 영화는 버디 무비 성격을 띤다. 거리의 레이서이자 범죄자인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 분)와 경찰 브라이언 오코너(폴 워커 분)가 짝을 이뤄 악당을 소탕하면서 끈끈한 정을 쌓는다. 때문에 많은 남성이 자연스럽게 매료될 수밖에 없다. 1편 마지막 부분에서 도미닉과 브라이언이 경주를 벌이다가 도미닉이 몰던 차가 뒤집혔을 때 브라이언이 도미닉을 체포하지 않고 자신의 차 열쇠를 주며 보내 주는 장면은 뜨겁고 뭉클하다.

Fast-and-Furious.jpg

도미닉과 브라이언을 돕는 다른 주요인물도 재미를 더한다. 기술과 해킹을 담당하는 테이 파커(루다크리스 분), 2편에서는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지만 그 이후로는 쭉 감초 역할을 하는 수다쟁이 로만 피어스(티이리스 깁슨 분), 늘 분위기를 잡고 있으나 허술한 구석이 많은 한(성 강 분)이 뚜렷한 개성으로 각 시추에이션과 스토리를 유쾌하게 꾸민다. 한은 6편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에서 데카드 쇼(제이슨 스테이섬 분)에게 죽임을 당해 앞으로는 볼 수 없게 됐다. (이 설정은 여덟 번째 시리즈까지만 유효했다.)


이 영화에서 여배우들의 존재는 단순히 남자 주인공들의 사랑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레티 오르티스(미셸 로드리게스 분)는 레이싱은 기본에 육탄전도 많이 치른다. 미셸 로드리게스는 2000년 문제아에서 복서가 되는 <걸파이트>에 출연한 데 이어 <분노의 질주>로 강인한 이미지를 축적하면서 여전사 캐릭터만 따게 됐다. 브라이언과 가정을 이루는 미아 토레토(조다나 브루스터 분)도 평소에는 여리지만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한을 위해 목숨을 버린 지젤(갤 가돗 분) 또한 스턴트 장면이 많았다. 용맹한 여자 주인공들 덕에 활발함이 내내 지속된다.


vin-diesel-fast-and-furious-racing.jpg

시원한 드라이빙에 음악이 빠지면 섭섭하다. <분노의 질주>는 꼬박꼬박 흥겨운 노래들을 지참해 귀도 즐겁게 했다. 1편에서는 당시 주가를 올리던 래퍼이자 조연으로 출연한 자 룰(Ja Rule), 주목받는 신인 피티 파블로(Petey Pablo) 등의 힙합 뮤지션이 참여했다. 그 가운데 캐딜락 타(Cadillac Tah)의 'POV City Anthem'은 아기자기한 전자음 루프로 중독성을 안겼다. 'Rollin' (Urban Assault Vehicle)'이라는 제목으로 재단장해 실린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의 'Rollin''은 DMX, 메소드 맨(Method Man), 레드맨(Redman)의 래핑으로 한층 거친 기운을 발산했다.


movie_image (1).jpg

2편의 사운드트랙 역시 힙합으로 구성됐다. 테이 파커가 처음 등장한 작품이기에 테이 역을 맡은 루다크리스(Ludacris)가 사운드트랙의 타이틀곡 'Act a Fool'을 불렀다. 당시 메인스트림에서 유행하던 육중한 비트에 루다크리스의 목소리가 은근히 굵어서 노래는 무척 단단하게 들린다. 로만 피어스 역을 맡은 타이리스(Tyrese)도 노래를 하나 수록했다. 그가 부른 'Pick Up the Phone'은 약간의 라틴 리듬에 깔끔하게 떨어지는 기타 리프로 그루브를 발산한다.


이 두 노래보다 조 버든(Joe Budden)의 'Pump It Up'이 국내에서 인기가 더 좋았다. 빌보드 싱글 차트 38위를 기록한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 클럽 어디를 가도 반드시 나왔다. 신인이었던 조 버든은 'Pump It Up'으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차트에 든 노래가 없어서 활동은 하는 원 히트 원더로 남게 됐다.


the-fast-and-the-furious-tokyo-drift-poster.jpg

3편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는 시리즈 중 유일하게 폴 워커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이다. 빈 디젤이 출연하긴 하지만 카메오였다. 일본을 촬영지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데리야키 보이즈(Teriyaki Boyz), 드래건 애시(Dragon Ash), 파이브식스세븐에이츠(The 5.6.7.8's) 같은 일본 그룹이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다. 한국계 멤버가 있다는 사실로 잘 알려진 파 이스트 무브먼트(Far East Movement)도 일본인 멤버가 있어서 사운드트랙에 섭외됐다.


데리야키 보이즈의 'Tokyo Drift'는 종소리로 만든 루프 덕분에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드래건 애시의 'Resound'는 드럼 앤드 베이스 반주와 턴테이블 스크래칭으로 질주하는 분위기를 배가한다. 아타리 틴에이지 라이어트(Atari Teenage Riot)의 'Speed'는 정신 사나운 전자음과 하드코어 펑크 반주를 결합해 스피드광의 운전을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movie_image.jpg

4편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에서는 영화가 나오기 1년 전 이미 히트했던 핏불(Pitbull)의 'Krazy'가 속도감을 높이는 공을 세웠다. 사실 핏불의 래핑보다는 한 번 들어도 머릿속에 바로 기억되는 전자음과 릴 존(Lil Jon의) 호쾌한 샤우팅이 더 돋보였다. 이번 사운드트랙은 넵튠스(The Neptunes)가 프로듀스해 전자음과 그들 특유의 넘실거리는 드럼라인이 전반에 나타난다. 이로 말미암아 수록곡들은 세련된 흥을 한껏 뽐낸다. 시리즈 중 가장 괜찮은 사운드트랙이었다.


5편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는 주인공들이 브라질로 도주한 사항 때문에 사운드트랙은 돈 오마(Don Omar), 카를리뇨스 브라운(Carlinhos Brown), 엠브이 빌(MV Bill) 등 남아메리카 뮤지션들이 줄을 잇는다. 레게톤 리듬을 앞세운 'Danza Kuduro', 라틴 음악의 이국적 정취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Carlito Marron', 브라질 힙합의 신선한 맛을 경험할 수 있는 'Desabafo / Deixa Eu Dizer' 등이 연신 흥을 유발한다. 브라질어 노래들이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장소에 대한 심상을 강화해 준다.


movie_image (2).jpg

각지에 흩어져 지내던 주인공들은 여섯 번째 작품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에서 정부 요원 루크 홉스(드웨인 존슨 분)의 도움 요청을 수락하고 런던으로 모인다. 영국이 활동 무대가 됐지만 이전 사운드트랙들처럼 그곳 뮤지션을 초빙하지는 않았다. 거의 미국 뮤지션이고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여가수 소해니 수아(Sohanny Sua), 러시아 전자음악 그룹 하드록 소파(Hard Rock Sofa),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피치스(Peaches) 등이 국적을 다양하게 만들 뿐이었다.


경력직 신인 래퍼들 위즈 칼리파(Wiz Khalifa)와 투 체인즈(2 Chainz)가 함께한 'We Own It (Fast & Furious)'는 앨범의 들머리를 묵직하게 장식한다. 둘의 단단한 래핑, 귀에 잘 들어오는 선율의 훅, 트렌드와 겹치지 않는 웅장한 힙합 비트가 조화돼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캐나다 일렉트로니카 프로듀서 데드마우스(Deadmau5)와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이 협업한 'Failbait'는 전자음악과 힙합의 요소를 절충하면서 절제된 그루브를 표출하고 피치스의 'Burst (Bart B More Remix)'는 격정적인 신시사이저와 주문을 외우는 듯한 싱잉으로 드세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한꺼번에 안긴다.


29WALKER1-superJumbo.jpg

7편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사운드트랙에는 스카일라 그레이(Skylar Grey), 찰리 푸스(Charlie Puth), 이기 어제일리어(Iggy Azalea), 키드 잉크(Kid Ink) 등 걸출한 신인들이 대거 참여해 작품성을 올렸다. 괜찮은 트랙들이 많지만 가장 인상적인 노래는 2013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폴 워커를 위한 추모곡 'See You Again'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각자 따로 차를 타고 가던 도미닉과 브라이언이 다른 길로 헤어지는 장면에 노래가 흘러 많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See You Again'은 폴 워커를 그리워하는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비연속으로 12주 동안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movie_image (3).jpg

2017년 개봉한 여덟 번째 시리즈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의 사운드트랙 역시 힙합, EDM, 라틴 팝으로 꾸며져 전작들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포스트 말론(Post Malone), 코닥 블랙(Kodak Black), 켈라니(Kehlani), 릴 요티(Lil Yachty) 등 10대, 20대 흑인음악 마니아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는 아티스트들을 동원해 트렌디함을 내보였다. 사운드트랙에서는 다섯 편이 넘는 싱글이 나왔는데, 이 중 빌보드 싱글 차트 34위를 기록한 포스트 말론의 'Candy Paint'가 성적이 가장 좋았다.


Fast-Furious-9-Trailer-3-2021.jpg

이달 19일 아홉 번째 연재물이자, 2019년에 나온 <분노의 질주: 홉스 & 쇼>에 이은 열 번째 장편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Fast & Furious 9: The Fast Saga)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개봉한다. 이번에는 죽은 줄 알았던 한이 돌아와 반가움을, 프로레슬러 존 시나가 분한 제이콥 토레토가 합류해 한층 강력한 액션을 선사할 예정이다. 20주년을 맞는 특별한 이벤트라 할 만하다.


사운드트랙 앨범 [Road to Fast 9 Mixtape]는 작년 여름에 이미 출시됐다. 이번 OST에도 위즈 칼리파, 타이가(Tyga), 토리 레인즈(Tory Lanez), 돈 톨리버(Don Toliver), 영보이 네버 브로크 어게인(YoungBoy Never Broke Again) 등 인기 힙합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영화 곳곳에 자리하는 노래들은 화려한 액션을 보조하며 박진감을 더해 줄 것이다. 또 한 번 힙합의 향연이 열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댓씽유두>, 노래 하나는 확실힌 남긴 밴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