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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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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보이 Nov 23. 2023

일본 지가사키에서 만난 것들 #1

140년 동안 사람들의 꿈을 기억한 방에 관하여

유독 관광객이 찾지 않는 이 동네에선

더 철저하게 관광객이 되고 싶지 않아 진다.

고즈넉한 마을, 집 앞에서 캐치볼을 하는 소년들, 또 다른 이는 자전거를 재빨리 내달리며 친구와 장난을 치기도 하고, 자주 만나는 친구인양 주인과 강아지들은 인사를 나누고, 어린이집에서 아들을 데리고 나오는 아빠도 보인다.

그 풍경 속 내 자리도 있으면 좋겠다.

또 그런 상상을 욕심부려 본다.

지가사키의 햇빛은 예쁘고 도로는 벚꽃이 떨어진 것 같다


할머니는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르게 훨씬 인자한 얼굴이었다.

사실 예상이랄 것도 없는 게

내 상상 속에서 끝내 채워지지 않은 게 바로 주인 할머니의 얼굴이었다.

흰머리, 작지만 곧은 체형, 부드럽지만 또렷한 눈매, 마스크를 써서 알아듣기 어려운 고난도 일본어까지.

할머니의 얼굴 조각까지 거의 맞춰지자 상상이 아니라 진짜 이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감각할 수 있었다.

오는 내내 백팩 안에서 나와 같이 걸었던 깜짝 선물도 드렸다.

그랬더니 한참 뒤 산책을 나가려는 내게

"김홍 상"이라고 부르며 주방에서 나온 할머니.

내일 조식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원래는 안된다고 들었는데 일부로 만들어주시려는 것일까. 계속 사양했지만 할머니는 괜찮다고 연신 말하고 있었다. 입 주변엔 김가루를 잔뜩 묻힌 채였다.


숙소 앞에서 어디를 갈지 고민 중이던 나와

목소리부터 등장해서,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내게 김이 맛있다며 웃어주던 할머니.

그 순간에도 계속 들리던 바닷소리.

아마도 이번 도쿄 여행에서 가장 먼저 기억될 장면이 되지 않을까.


햇빛은 여기에도 있다


140년이나 된 이곳에서 사람들이 꾸었던 꿈들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시간 동안 똑같이 걸음마다 소리를 냈을 나무 복도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냄새를 흡수하고 있을 벽도,

숱한 눈과 마주쳤을 천정도,

아마 만나지 않았을까. 각자의 꿈과 이야기를.


이런 생각을 하며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옆옆방에서 묵고 있는 일본인 할아버지 세 분이 들어오셨다.

쑥스럽게 저녁 인사를 건네던 할아버지들과 목욕을 하며

이미 세 개의 꿈과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부족한 일본어로 반쯤은 생략된 이야기일 테지만.

이따 잠에 든다면 다른 꿈들도 찾아오지 않을까.

한국어로 번역된 이미지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런 바람을 또 욕심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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