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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Sep 08. 2022

가족 간의 마음을 더 나누는 명절, 추석

: 모두가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바라며

『솔이의 추석 이야기』          

이억배(길벗어린이, 2017)   



       

도시 생활을 하던 솔이네 식구들이 추석을 맞아 솔이 아빠의 고향에 다녀왔다. 솔이를 따라 사실적이고 자세한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1980년대 어느 쯤에 서게 되고, 그 속에서 지금과는 다른 추석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추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가들과 그 너머 양옥 주택들이 1980년대 도시의 풍경을 대변한다. 추석 이틀 전, 솔이네 동네 사람들은 추석을 맞아 고향에 갈 준비를 한다. 목욕탕, 미용실, 이발소에 사람이 가득하고, 동네 가게에도 추석 선물용 물건이 가득하다. 명절을 맞아 들뜬 동네 분위기가 한 장의 그림 안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추석 전날, 솔이네 식구들은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어스름한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솔이네 식구들을 휘감아 돈다. 솔이 엄마와 아빠의 발걸음은 가볍고 설레기까지 하다. 솔이와 솔이 엄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고, 솔이 아빠는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었다. 추석을 맞아 고향에 가면서 가족들이 모두 한껏 멋을 부렸다. 멋이라고 하기에는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그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낯설게 보인다.          


 

솔이네 식구들은 고향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탔다. 하지만 고속버스는 신나게 달리지 못했다. 도로는 주차장처럼 변했고,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간식을 먹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하면서 지루한 기다림을 달랬다. 지치고 힘들 만 한데 사람들은 그 지루한 그 정체된 도로 위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림에서 보여주는 예전 자동차들의 모습이나, 사람들의 옷차림 그리고 도로 위에 펼쳐지는 간이 휴게소, 전화 부스의 풍경이 정겹다.



고향 마을에 도착한 솔이네 식구들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마을 앞에 서 있는 당산나무였다. 마치 그 나무는 낯선 타지에서 외롭고 힘겹게 살았던 마음을 모두 품어주는 것처럼 웅장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마치 타지에서의 수고로움을 위로해 주는 것 같다. 당산나무를 지나가면 드넓은 황금 들판이 펼쳐지고,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집에서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한눈에 보이는듯하다. 솔이 아빠가 고향을 떠날 때처럼 고향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솔이의 할머니가 솔이네 식구들을 맞이하러 한달음에 나왔다. 할머니의 그리움이 느껴진다. 한복을 입고 잰걸음으로 달려 나오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에 나의 친할머니 모습이 겹쳐 보였다. 친할머니는 회색 긴 머리를 참빗으로 빗어 내린 뒤에 머리를 돌돌 말아 비녀를 꽂고 한복을 입으셨다. 친할머니의 차림이 이상하다거나 예스럽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서 만난 친할머니의 모습은 항상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말수도 적고 웃음도 적은 친할머니와 나는 별다른 추억이 없지만, 명절 때마다 우리 가족을 맞이하며 웃던 친할머니의 미소와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우리 가족을 배웅하던 친할머니의 모습이 마음 한 켠에 몽글몽글하게 숨어 있다. 그림 속에서 잊고 지냈던 친할머니의 모습이 살아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댁은 넓은 마당이 있는 전통 한옥이다. 할머니 집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마치 각자 자신의 역할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함께 음식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추석 준비를 한다. 추석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풍성하다. 보름달 아래 함께 송편도 빚으면서 어떤 말들이 오고 갔을지, 다른 방에서는 무엇을 할지가 예상이 될 정도로 명절에 보이는 익숙한 분위기다. 그리고 추석 아침에는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온다. 마을에는 농악대가 풍악을 울리면서 신나는 놀이판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그 놀이판에서 신명 나게 강강술래를 한다. 추석의 풍습과 시골의 가을 풍경이 동시에 보인다. 잊고 지낸 한가위의 모습이다.           


시끌벅적한 고향을 뒤로하고, 솔이네 식구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솔이네 동네는 고요하게 잠들어 있다. 솔이 아빠의 손에는 할머니가 싸주신 햇곡식과 과일을 한 보따리 들려 있었고, 솔이 아빠의 등에는 솔이가 잠들어 있다. 솔이와 솔이 동생을 방에 누이고, 솔이 아빠는 고향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드리고, 솔이 엄마는 한복을 정리하는 것으로 추석을 마무리했다. 단출한 솔이네 살림살이에서 도시 생활의 고단함이 느껴지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추석은 그 고단함과 그리움을 한 번에 해결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을 시작하는 내일에 새로운 힘을 주었을 것이다.         


  

추석이 지금 사라진 명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도시로 떠났던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두 모여 명절을 준비하고, 마을 사람들도 함께 명절을 즐겼던 것에 비하면, 지금 추석의 모습은 다소 간소하게 변화된 것 같다. 또, 과거에는 추석이 한 해 농사의 노고를 격려하고 수확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면, 도시 생활이 일반적인 요즘에는 그 추석의 의미가 많이 흐려진 면도 있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명절을 기다렸던 아이였던 내가 이제는 명절을 준비하는 며느리가 되었다. 시대는 변화하는데 며느리의 역할은 별다르게 변하는 것이 없는지 의문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서 가족 간에 서로 왕래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농사짓는 시대여서 추수의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이 없어서 명절 때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명절을 대하는 태도는 시대가 변화하는 속도에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림책에서 보이는 솔이 엄마의 모습은 지금의 솔이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시댁에 도착해서 솔이 엄마는 내내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를 업고 성묘하러 산에 오른다. 집에 돌아와서 한복을 벗은 뒤에야 솔이 엄마의 얼굴이 편안하게 보였다. 솔이 엄마의 추석은 새벽부터 한복을 차려입고, 아이를 등에 업고 따라나선 고된 시댁 행과 친정에 가지 못한 미안한 마음으로 얼룩졌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 풍습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가족의 정을 나누고 추억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에 더 의미가 있게 되는 것 같다. 친척들과 모여 하루 종일 함께 놀아도 누구도 잔소리하지 않고, 기름 냄새 뒤집어쓰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해도 함께 고생한 정이 생기는 것 같다. 당장은 힘들어도 켜켜이 쌓인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기고, 며느리에게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남는 것 같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낸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그 하루가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할머니에게 달려가는 솔이의 모습과 농사지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주신 할머니의 짐 속에서 느껴지는 가족의 그리움과 정은 오늘에도 변하지 않고, 여전한 것 같다. 솔이의 추석 풍습이 과거에 머문 이야기가 될지라도, 추석은 가족 간의 마음을 더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도 전통 명절의 명맥을 잇기에 충분할 것이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이 그림책으로 내가 보낸 추석과는 다른 옛날 추석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추석 때 실컷 놀 수 있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추석이 매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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