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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rdSong Aug 07. 2021

매일 매미가 왔다 가는 집

아파트 7층 베란다

여름이 두 동강이 났다.

일주일 넘는 시간을 지나 드디어 태양 아래 서 있으니 그 전보다 더위의 숨이 한풀 죽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귀로는 매미소리가 찢어지게 들렸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은 살림꾼이 되어있었다. 라파엘은 다 놀고 집 정리를 싹 할 만큼 훈련(?)이 되어 있었다.

내가 듣지 못해도 매미들은 울다가 죽어갔고

가족들은 내 빈자리를 그럭저럭 재주껏 채우며 잘 살아주었다.

라파엘이 마련한 '텐트'에 누워 놀았다. 침대 옆에 있는 커튼 밑에 누우면 삼각형 모양의 공간이 생겨 텐트 같다고 좋아했다. 엄마가 없어도 아이는 집안에서도 위안 얻을 공간을 찾아서 잘 놀고 있었다.

밤에 라파엘과 둘이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큰 매미소리가 들려왔다.

"헉, 이제 잘 시간인데 매미가 와서 붙었나 보다. 시끄러워서 어떡하지?"

하며 소리를 따라 가봤다.

앞 베란다가 진원지였다.

"맨날 와. 하느님이야. 조금 있으면 알아서 가."

남편은 태평하게 배구 중계를 보며 말했다.

뭐, 하느님?

믿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남편이 쓸 때가 있다니.

웃기기도 하고 순간 마치 어느 전설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 읽었던, 죽은 삼촌의 영혼을 구렁이로 표현했던 한국소설도 떠올랐다.

그리고 무슨 매미가 맨날 같은 집에 왔다가 알아서 가냐고. 말이 돼?

그런데 정말로 매미는 아주 잠시 우리 집 창문 어딘가에 붙어 울다가 떠났다.

정말로 잠시 다녀가다니 신기했다. 정말 쟤가 매일 온다는 걔(갸가 갸여?)라면 성체로 사는 짧은 시간 동안 매일 우리 집에 와주니 영광이 아닌가.

밖이 어둡고 크기가 작아 어디 붙어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매미는 쩌렁쩌렁한 울음소리로 엄청난 존재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렇게 7층인 우리 집까지 작은 무언가가 찾아줄 때, 어떤 생명체들이 주변에 함께 살고 있음을 느낀다. 잘 깔린 보도블록, 아스팔트만 걷다가 집에 와서 문 닫으면 서울의 아파트 한 칸에 고립되는 사람에게는 낯선 순간이다.

베란다 난간에 까치가 앉아있다 가거나, 매미가 가까이에 붙어있다 가거나, 하는 날이 그렇다.

지난달, 길을 걷다가 라파엘에게 매미가 성충이 되며 벗어놓고 간 껍질을 보여주었다. 아파트 담벼락, 나무껍질 위에 매미 탈피 껍질은 매미모양 그대로 남아 붙어있다.

그렇게 지나가는 나무, 담벼락마다 매미 껍질을 찾아보았다. 어떤 나무 한 그루에는 몇 센티 간격으로 매미 껍질이 8개나 붙어있었다. 모두 하늘을 향해 기어오르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가 매일 밟고 다니는 이 아파트 단지, 인도 옆 흙 속에 이렇게나 많은 생명씨들이 세상에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게다가 주인 없이 빈 껍질들마저도 모두 다 하늘을 향해 나선형으로 늘어서 있다니 하늘 향한 생명의 본능이 눈에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 전율이 느껴졌다.

무엇이 어디 있는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척박한 도시 땅속에, 하늘 아래, 나무 꼭대기에 수많은 생명이 움트고 있다. 꼬물대고 기어오르고 쪼아대고 매달리며 사람만큼 치열한 생명의 이력을 이어가고 있다.

어젯밤 매미 선생이 집안에 뿌려놓고 간 엄청난 소리는 이 도시의 밤, 너희만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며 죽비처럼 쏟아진

일종의 생명 성수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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