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원고를 앞두고 첫 문단의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어떤 단어로 시작해야 할지, 어떤 감정으로 서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그러나 숱한 고민 끝에 떠올린 하나의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확신을 입혔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첫 문단을 내 마음에 들게 쓰기 위해서는, 그간 썼던 첫 문단이나 다른 이의 첫 문단을 자주 보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 여기기에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에서 마음에 드는 첫 문단 두 개를 소개해요. 그리고, 이 문장을 쓰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함께 적었습니다. 브런치 독자님들을 위해 공유해 볼까 해요.
1)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미술관에 몸을 담았다. 미술관 건물 외벽은 투명한 통유리였고, 말끔한 창문을 허공이라 착각해 날아든 많은 새들이 머리를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미술관의 관리 아래 창문을 닦을수록 구별하기 어려운 투명함에 더 많은 새들이 다치고 죽었다.
ㄴ 어떻게 미술관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그 미술관은 어떤 미술관인지, 미술관에서 새들은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일일이 설명할 수 있지만 독자님의 몰입을 위해 커다란 사건 하나로 서두를 열었습니다. 더불어 초고에는 ‘투명함’이 아니라 ‘투명성’이었지만, 편집자님의 의견 아래 ‘투명함’이 조금 더 쉽게 읽힐 것 같다는 의견으로 수정하게 되었어요. 제가 첫 문장을 쓸 때 염두하는 법칙은 짧고 간결함입니다. 독자님들의 첫눈을 사로잡아 끝까지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이어나가는 힘을 지니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2)
주인공 얼굴과 이름과 나이는 가물가물한데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통나무집에 성큼 들어서는 한 아이의 뒷모습이다. 무엇이 특별하나 싶지만, 통나무로 둘러싸였다고 해서 보통의 통나무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배낭을 멘 아이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서 비슷해 보이는 나무 한 그루를 잡아 들어서는데, 그러면 순식간에 커다랗고 조용한 집이 펼쳐진다. 화르르 불타오르는 벽난로와 푹신한 소파로 아늑함을 더한 안락함의 대명사 같은 공간. TV 속 풍경을 마주친 뒤 나는 완전히 그 설정에 매혹됐고, 숲을 거닐 때마다 내 방이 없는지 괜히 소나무 몇 그루를 더듬거리며 무료한 시절을 견뎠다.
ㄴ 초고는 ‘주인공의 얼굴과 이름과 나이는’이었지만, ‘의’를 빼도 해석에 큰 지장이 없다는 편집자님의 의견에 맞추어 과감히 조사를 생략했습니다. TV 속 장면은 복기해도 흐릿할뿐더러, 장면을 모르는 분도 상상하기 쉽게 만들어야 하기에 다른 문단보다 수식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저 ‘아이’가 아니라 ‘배낭을 멘 아이’로, 평범한 ‘눈빛’이 아닌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냥 숲이 아니라 ‘빽빽하게 우거진 숲’으로 함께 배낭을 메고 또렷한 눈빛으로 자신만만하게 우거진 숲에서 나무 한 그루를 고르는 모습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책 한 권으로 세상에 내보내기까지 퇴고한 횟수는 총 열 번 정도가 걸린 것 같아요. 다정한 사랑과 연대의 힘을 만날 수 있는 책,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를 나와 지인에게 선물해주세요.
이어지는 다음 문장 읽으러 가기 ◡̈
온라인으로 저와 함께 책 읽고 에세이 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