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생각할 수 있나" 다시 주목한 앨런 튜링 질문

AI 시대에 돌아봐야 하는 핵심 질문

by emckk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을 다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U-보트에서 쓰이던 암호기계 이니그마를 해독한 과학자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그다. 튜링의 이니그마 해석으로 2차 세계대전 종전을 2년 앞당겼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영국 정보부(MI6) 출신이자 케임브리지 대학 역사학자였던 해리 힌슬리(Sir Harry Hinsley) 경은 "튜링이 전쟁을 최소 2년, 어쩌면 4년까지 단축시켰다"고 말했다. 미국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전 대통령도 “블레츨리 파크의 해독 정보는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것이 없었다면 전쟁은 훨씬 더 길어졌을 것이다.”라고 1945년 발언했다.


영국 맨체스터시 중심에 위치한 공원 새크빌 가든에는 그를 기념하는 추모비가 하나 있다. 오른손에 사과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튜링 앞에는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수학자, 논리학자, 2차 대전 시기의 코드 브레이커, 편견의 희생자'라고 적힌 동판이 붙어 있다. 튜링은 1954년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배어 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영국 정부가 강요한 호르몬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튜링이 주목받고 있는 건 최근 들어서다. 시대를 앞서가며 인공지능을 고민한 그의 과거는 다양한 사실에 묻혀 있었다. 어쩌면 그가 남긴 결과물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사건 4년 전인 1950년, 튜링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마인드(Mind)란 이름의 저널에 그가 발표한 논문 제목은 '계산하는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이었다.


%EC%A0%9C%EB%AA%A9_%EC%97%86%EB%8A%94_%EA%B7%B8%EB%A6%BC.png?type=w800 저널 마인드(Mind)에 발표한 '계산하는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그가 제안했던 질문을 영어 원문을 그대로 옮겨오면 'Can machine think?'이다. 세 단어로 이뤄진 간결한 질문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짧고 단순한 문장이지만 이를 해석한 한국어 문장은 다양하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 ‘기계도 생각이 가능하다’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 등등.


기계라는 주어에 붙는 조사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가장 흔한 번역은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이다.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엔 인간의 생각이 우선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기계 중심 사고가 배여있다. 이 문장에서 인간은 배제된다. 튜링이 던진 질문의 의도를 해석하면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가 아닌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가 맞다.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게 그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튜링의 글은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 수학자의 엉뚱한 생각 정도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게 그가 쓴 논문은 정교한 수식이 담긴 학술 논문이 아니었다. 다양한 생각을 담아 흘려쓴 에세이와 비슷했다. 그럼에도 논문에 담긴 내용은 그 어떤 과학 논문보다 혁명적이고 신선하다. 간결하지만 다른 사상가들이 담아내지 못한 시각이 담겨 있다. 논문은 튜링이 평생 품었고 자신에게 던졌던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튜링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표적인 인공지능인 챗GPT는 생각하는 기계인가? 만약에 생각하는 기계라면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일까 아니면 인간이 쌓아놓은 자료를 학습한 기계 장치에 불과한 것일까?


‘너는 스스로 생각하니’에 대한 챗GPT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아니요, 나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


나는 인간처럼 ‘자아’나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거나 감정을 느끼는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대신 학습된 패턴과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질문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가장 합리적인 답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그건 독립적인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언어 패턴을 잘 예측하는 능력 때문이에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튜링의 논문이 세상에 나온지 70년이 흐른 지금, 그가 던진 질문의 무게감은 더해가고 있다. 생각하는 기계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연결된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엔 낮은 수준이지만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들어오고 있거나 이미 들어왔다. 손바닥만한 기계가 스스로 생각한다는 건 튜링은 상상조차 못했을 거다. 인공지능이 담긴 에어컨은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스스로 인식해 가동 시간을 조절한다.



이미테이션 게임

튜링은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멈추지 않았다.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조금 더 다루기 쉬운 질문으로 대체한다.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이 질문은 기계와 생각에 대한 용어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계와 생각이란 단어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겠지만 이는 조금 위험한 태도일 수 있다.

기계와 생각이란 용어의 뜻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에 이르게 되면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대답하기 위해 갤럽을 통한 통계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작가 주/생각을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정의하기 위해선 여론조사와 같은 통계적인 수단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뜻)

그런 어려움을 피해가기 위해서 나는 이 질문을 보다 더 구체적인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질문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튜링은 이미테이션 게임을 제안한다. 이미테이션은 모방품 혹은 흉내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가 고안한 이미테이션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다. 우선 여성과 남성 그리고 심문자 세 사람이 등장한다. 심문자는 여성과 남성 중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여성(A)과 남성(B) 그리고 심문자(C)는 서로 다른 방에 격리된다.


C는 A와 B 각각에 질문을 던진 다음 성별을 맞춰야 한다. 목소리를 들으면 성별을 쉽게 구별할 수 있으니 답변은 방에 마련된 타자기와 종이를 통해 답한다. A와 B는 C가 자신의 성별을 헷갈리게 하는 게 목표다. B가 "내가 여자에요. 저 남자 말을 듣지 마세요"라 대답하는 식이다. 모르긴 몰라도 C는 쉽사리 답을 내긴 어려울 것이다.

167504_182312_122.png?type=w800 영국 맨체스터시 중심에 위치한 공원 새크빌 가든에 있는 앨런 튜링 추모비. 오른손에 사과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다.


튜링은 이런 이미테이션 게임을 기계로 확장한다. 여자와 남자 중 한 명을 생각하는 기계로 바꾼다. 다른 모든 조건은 동일하다. 생각하는 기계는 심문자 C를 속일 수 있다. "심문자가 게임이 끝날때까지 인간과 기계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 기계를 생각하는 기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라는 게 튜링의 결론이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대신해 생각하는 인간과 구별하지 못하는 기계를 등장시킨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생각 나아가 지능이란 단어를 구체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인간을 깜쪽같이 속이는 기계가 있다면 그 기계가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튜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계를 상대로 한 다양한 이미테이션 게임의 예를 든다. 5자리의 수 덧셈, 단편 시 외우기, 체스 등이다. 사칙연산에선 기계가 인간을 따라잡은 지 오래다. 손바닥보다 작은 계산기는 인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숫자를 계산한다. 튜링이 예로 든 체스를 통한 이미테이션 게임은 그가 떠난 뒤 현실이 됐다.


인간을 앞선 이미테이션 게임

1997년 5월 11일.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는 IBM 인공지능 컴퓨터 딥 블루와의 체스 대결에서 패배했다. 튜링의 논문이 나온 지 47년 만에 기계가 인간을 상대로 한 체스 경기에서 승리한 것이다. 인간은 도전자 기계를 상대로 한 다양한 경기에서 패배하는 중이다. 구글의 알파고는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을 상대로 한 바둑 경기에서 승리했다. 경기 결과는 인류 모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알파고 쇼크'라는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챗GPT는 이미테이션 게임 다시 말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지 오래다. 이미테이션 게임을 가볍게 통과한 또 다른 인공지능은 지금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를 구분지었던 ‘생각하는 존재’라는 가림막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튜링이 꿈꿨던 생각하는 기계가 다양한 곳에서 쓰이고 있다는 의미다. 알파고 쇼크 이후 기계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 같았던, 인간의 외양을 닮아 있고, 두 발로 걷는, 생각하는 기계가 우리 옆에 다가왔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