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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08. 2022

내 글이 꼭 김 빠진 콜라 같다

# 내 글이 꼭 김 빠진 콜라 같다


요즘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이 꼭 김 빠진 콜라 같다. 지난 연말 이후로 나는 치열하게 산 1년에 대한 깊숙한 피로를 느끼는지 몸과 정신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사실은 글을 쓰기 좀 어려운 상태이다.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내 머릿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넘칠 것 같은 생각들을 문자로 옮기는 형식인데, 사실 요즘 나는 생각이란 걸 별로 안 하고 되는대로 살았다. 많이 지치면 혼자만의 공상을 잘하지 못한다. 거의 본능에 의지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버텨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언제까지 '글쓰기'라는 나의 소중한 취미, 잘하고 싶은 '작은 재능'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뭐라도 써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썼지만, 내 스스로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아.... 역시 김 빠진 콜라 같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뻔뻔하게 쓰자 다짐한다. 사실 나는 김 빠진 콜라를 자꾸 만들면서도 겁 없이 글쓰기란 과제에 자꾸 덤비는 내 모습을 좀 좋아한다. 그런 성실함이 나의 삶을 이끄는 꽤 중요한 동력이라는 것도. 사실 아침에 올린 글도 업로드를 했다가 왠지 마음에 안 들어 비공개로 했다가 결국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 다시 공개로 돌린 글이었다.


글은 자고로 엉덩이로 쓰는 거라 했다. 마음에 드는 글을 못 쓰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씩씩하게 글을 써보자 다짐한다. 김 빠진 콜라만 이어진다 해도 말이다. 하루하루의 실패가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꽤 괜찮은 톡 쏘는 콜라를 만들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


나에게 꽤 위로가 되었던 글귀를 올려본다.



"나도 학계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논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를 압도하는 글은 꼭 나타나거든.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내가 누구보다 잘 쓸 수는 없을지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을 거라고. 홍, 너도 너만이 쓸 수 있는 시가 분명 있을 거야."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가수들이 많고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당대 최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수십억 명 중 나뿐이다. 프레디 머큐리도 빌리 아일리시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내 목소리로만 할 수 있는 말, 낼 수 있는 느낌이 분명히 있다......(중략)...... 이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저 사람도 나처럼 못 쓸 것이다. 나보다 잘 쓸 수는 있겠지만 나와 똑같이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시는 수십 년간 쌓아온 나의 고유성이니까. 나의 역사를 통해 나만이 획득한 시선과 벼려온 감각이니까.


나의 주파수에 공명해줄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 문장이 퍼즐 조각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맞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 쓴다.


- 홍인혜, [고르고 고른 말] 중에서 -



홍인혜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나는 참 위로를 받았다. 이 글을 읽는 나의 많은 브런치 동료 작가들 또한 이 글귀를 읽으며 힘을 받길 바란다. 당신이 쓰는 글이 최고라 할 순 없을지라도 수십 억 명의 사람들 중 그런 분위기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라고. 내가 쓴 글에 대해 자주 실망하는 요즘, 이 글에 기대어 힘을 내본다.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독자들, 끊임없이 찾아 읽어주는 숨어 있는 독자들 모두 나의 글 실력이 아니라 나만이 낼 수 있는 어떠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분위기'는 그 누구도 자아낼 수 없는 나만의 것이라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 위로받는 내가 좀 웃기지만, 이 글을 쓰며 마음이 좀 괜찮아진다. 김 빠진 콜라라도 괜찮다. 내가 여전히 부족한 실력에 좌절하지 않고 당당히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




# 완벽한 오후


어제  오후는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조금 일찍 나와 휴직 이후 1 만에 밝은 평일 오후에 도서관에 들렀다. 햇살이 비치는 고에서 책을 고르는  순간이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공간  하나가 도서관인데,  도서관을 이렇게 밝은 평일 대낮에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완벽한 순간이었다. 여유로운 시기이니 왠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시집을 읽고 싶어 시집을 고르고, 최근에 읽고 무척 좋았던 데미안의 다른 번역 버전도 골랐다.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시간이 조금 애매해서 좋아하는 카페에 들렀다. 카페인에 취약한 자라 오후에만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 오후에 카페를 들를 수 있다니....! 패기 있게 핸드드립 커피를 골랐다. 오늘은 예가체프 콩가 내추럴이라는 원두라 했는데, 그게 무슨 원두인지는 모르나 커피를 막 마시려 시작할 때의 향기가 좋아서 갑자기 행복해졌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데, 이 작은 것들만으로도 내가 금세 행복해지는 사람이란 것에 기분이 좋았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커피와 책이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란 생각을 아예 안 해봤는데...... 경험해보니 커피와 책은 참 뗄레야 뗄 수 없는 꽤 환상의 짝꿍이었다. 아주 소중히 한 모금씩 예가체프 커피를 마시며, 한 문장씩 꼭꼭 씹어 책을 읽었다.


'피라네시'란 책을 읽는 중인데, 미궁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꾸려가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괜스레 위로를 받았다. 나 또한 어떤 순간에도 내 삶의 아름다움을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한 문장씩 눈에 담아 두었다. 책을 빨리 읽지 않는 이유가 여러 가지이지만, 한 문장씩 소중히 읽는 나의 태도가 '책'이란 존재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한다. 나의 존중을 표할 때 책이 나에게 마침내 내어주는 귀한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내 정신의 영역을 의미 있게 채우는 데에 꽤 도움이 되었다 생각한다. 부족함이 많은 나이지만 적어도 내 소중한 친구인 책 앞에서 한 번도 진중한 모습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자부한다. 책과의 깊은 관계에 대한 나의 보답이다.


이렇게 꽤나 완벽하게 행복한 오후를 보내고 나면 앞으로의 내 하루에 대한 좋은 길잡이를 얻었다 생각이 든다. 마음이 울적한 날에는 지금처럼 도서관에 가고,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독여야겠다. 나만의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은 오후였다.



# 프라이빗


'프라이빗'이란 말을 빼놓고는 내 삶을 설명할 수 없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나란 사람은 개인적인 시간, 개인적인 공간이 매우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감사하게도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개인적인 공간이 있다.


내가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의 서재가 나에게는 당연한 공간이었는데, 결혼과 출산을 겪은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이자 엄마인 나의 친구들에게 '서재'라는 공간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놀랐다. 내 책장, 내 책상, 내 컴퓨터, 내 피아노로 채워진 나의 서재. 내 딸 호두조차 엄마의 공간에 잠깐 놀러 온다고 생각하는 나만의 공간. 그런 공간이 내게 주어져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요즘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학교에는 나의 교실이 있다. 내가 늘 담임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나의 개인 공간. 어딜 가나 나는 그게 꽤 중요한 조건이고, 담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우습게도 점심 즈음 학교에서 유일하게 모두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을 수 있는 6학년 교실 앞의 화장실에서 양치하는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 넓은 학교라는 공간에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만끽하며 행복해한다. 그만큼 나란 사람은 '혼자'라는 걸 무척 좋아한다.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죽을 때까지 내가 가장 친해져야 할 사람은 스스로일 텐데, 혼자의 시간을 좋아한다는 것이 말이다. 오늘은 나의 서재, 나의 교실, 점심때의 혼자만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이런 내 삶에 무척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이 상황이 참 고맙다. 스스로의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혼자'의 시간과 공간을 남겨두는 것을 끊임없이 욕심내자 생각해본다.



# 도처에 널려 있는 감사


얼마 전 좋아하는 친구 은수와 이야기를 하며 많이 울었다. 카페에서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가 깊어졌고, 요즘 자주 하는 고민들에 이야기하다가 둘 다 울어버렸다.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나의 우는 모습을 보이며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누군가와 울 정도로 깊은 이야기를 서로에게 건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지를.


은수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한 발자국도 떼지 마.' 은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같이 행동력이 강한 사람이 한 발자국 앞으로 가는 것보다 멈추는 것을 얼마나 어려워하는지를 새롭게 깨달았다. 두 달 동안 꽤나 음습하고 묵직하게 내 품에 고여 있던 이야기들이 은수에게 말하는 순간 볕 바른 양지로 꺼내진 느낌이었다. 곰팡내가 날 것 같던 이야기들이 은수 덕분에 바짝 마른 햇살의 냄새를 품었다. 다행이었다. 은수 같이 그저 내 이야기를 아무런 판단 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내 친구라서.


오늘 만난 친구와는 신앙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다. 내가 곁 다른 길로 가면 나를 혼낼 것만 같이 무섭게만 느껴졌던 하나님이 요즘은 삐뚤어진 내 모습을 그저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느낌이라고. 친구는 내 이야기를 오랫동안 듣더니 나에게 이야기했다. 십 년 넘게 서로의 신앙을 품어주고 보듬어주는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이런 친구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내게 있는 친구들의  존재가 너무나 감사하다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말이 맞다. 정말 감사해야 하는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늘 내 삶에 많은 인복을 넘치게 부어주셨다. 내 곁에는 나를 사랑해주고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친구가 많다. 삶이 때론 너무 가혹하게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삶은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해야 할 일이 도처에 널려 있다. 주어진 감사만으로도 행복해하며 잠들자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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