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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31. 2022

My favorite things

# My favorite things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1. 꽃

꽃을 정말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꽃을 말하라면 오래 생각할 것 없이 작약이라 말할 것이다. 부서질 듯 여리여리한 꽃잎이 가득 모여있는 작약은 그저 한송이만으로도 눈부시게 화사하다. 5월은 작약의 달인데, 매번 5월을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작약을 식탁에 꽂아두는 것을 놓치곤 한다. 작약에 대한 나의 슬픔을 박준 시인도 등꽃에서 비슷하게 느꼈나보다. 그의 책에서(이 책은 다음 단락에서 소개할 예정) 무척 공감가는 문장을 옮겨 본다.


생각 끝에 슬픈 일이 하나 더 떠올랐습니다. 오월이 되면 덕수궁에 등꽃을 보러 가야지, 그 등꽃 아래에서 한참 앉아 있다가 돌아와야지 하는 저만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렇게 하지 못한 채 지난 오월의 시간을 다 흘려보냈습니다. 이제 막 오월이 지났으니 다시 새로 오월이 오려면 시간은 가장 추운 길을 지나야 할 것입니다. 이 슬픈 일도 함께 슬퍼해주셨으면 합니다.


박준, ‘계절 산문’ 중에서



나는 작약을 보기 위해 이 추운 길을 지나야 한다. 그래도 함께 슬퍼해주는 박준 시인이 있어서 외롭지 않아졌다. 올해에는 꼭 작약을 사다 식탁 위에 두고 오랫동안 바라보며 그 화사함을 눈에, 마음에 가득 담아두고 싶다.


 좋아하는 꽃은 목련이다. 작약, 목련. 글을 쓰고 보니 나는 주로  모양의 꽃을 좋아하는  같다. 벚꽃의 향연도 아름답지만, 활짝  목련을  때의 설렘은 특별하다. 매년   앞의 목련을 감상하지만, 매번 목련이 얼마나 예쁜 꽃인가에 대해 새롭게 깨닫곤 한다. 벚꽃보다 목련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꽃을 사 왔다. 꽃을 사는 데에도 얼마나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인가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꽃을 사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바쁘게 살았다. 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꽃 생각이 절로 났다. 아직 봄이 오기 전인데, 벌써 튤립이 나왔길래 하얀 튤립을 사 왔다. 단아하면서도 앙증맞은 여러 가지 매력을 가진 녀석이다.



이런 소소한 것들에 저녁의 시간이 금세 행복해질 수 있는 걸 보면 삶에 필요한 것들은 정작 얼마나 작고 소소한 것들인지. 이런 작은 행복의 감각들을 놓치지 않고 살고 싶다.





2. 커피, 그리고 책



요즘 나의 즐거움 중 하나는 오후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다. 친구가 선물해준 드립백 커피에 천천히 물을 내려 커피를 만든다. 원두가 봉긋하게 올라왔다가 내려갈 때마다 내뿜는 향에 이미 커피를 마신 듯 기분이 향긋해진다. 커피를 마실 때는 일부러 바로 커피를 목 뒤로 넘기지 않고, 입 안에 잠시 머금고 있는다. 머금는 순간 입과 코에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향이 좋다. 그렇게 천천히 잠시 머금다 마시다 하며 커피가 내 몸에 스미도록 둔다. 한 모금씩 아껴 마시며 책의 문장도 고이고이 아껴 읽는다.


에세이스트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시인들이 쓴 에세이이다. 문학의 진수는 역시 시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시어를 쓰는 시인들이 에세이를 쓰면 산문인데도 꼭 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계절마다 시인이 느낀 감각들이 문장으로 펼쳐져 있다. 글을 읽으며 사무치게 아픈 그리움들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때론 작은 것 하나에도 아파하는 내가 결코 비정상이 아님을 깨달으며 위로를 받는다. 시인 같은 여리고 섬세한 글들을 쓰진 못하지만, 내게도 그와 비슷한 시 같은 마음이 있기에 이렇게 아픈 것이구나 싶다. 가뜩이나 좋아하는 박준 시인인데, 그 박준 시인이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 장르로 글을 써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박준 시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에세이를 마신 건지, 커피를 읽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에세이와 커피가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잠시 현재를 벗어나 그 어떤 꿈에 잠시 가닿게 해 준다는 것. 커피와 책의 공통점 같다.




3. 네일


손을 부지런히 쓰는 편이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두드리는 시대에 굳이 손글씨를 자주 쓰는 사람이고, 손을 부지런히 놀려 일을 한다. 그렇기에 네일이 무척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잘하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해야 할 컴퓨터 작업이 늘어나고, 사무적인 일들에 지쳐갈 때쯤 네일을 한 번 해보면 지루한 업무 속 활기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어 충동적으로 시작해봤다.


처음에는 와인색, 그다음에는 좀 더 도전적으로 남색, 내가 좋아하는 핫핑크색을 차례로 발라봤다.



이상하게도 색이 바뀔 때마다 손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일상의 새로운 재미가 되었다. 색깔이란 건 참 묘한 존재 같다. 밋밋했던 일상에 색깔이 들어온 뒤 볼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드니 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빨강. 그것도 아주 선명한 빨간색이다. 바깥 풍경은 무채색인데, 이렇게라도 빨간색을 보니 마음이 풍성해진다. 네일을 시작하며 색이 일상에 주는 힘을 새롭게 깨닫는다. 내가 쓰는 여러 물건들도 무채색만 쓰기보다 좀 더 다양한 색깔을 쓰며 다채로운 색의 감각을 느낄 필요가 있겠다 싶다. 세상에 다양한 색깔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 어떤 용기


얼마 전 글로 고백을 했지만, 요즘은 쓰는 글마다 도무지 마음에 안 든다. 또 마음에 안 드는 글이 나올까 봐 두려워 글을 쓰고 싶지 않아 피해 버릴 때도 많다. 대부분의 글을 브런치에 업로드하면 갑자기 삭제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러나 삭제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용기라 생각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런 용기와 맷집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이 든다.


나는 타고나길 완벽주의자이다.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긴 이후로 그렇게 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천성이란 건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에 쓰는 글마다 스스로의 마음에 들기가 참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또 지우고 싶어 질’ 글을 쓰는 이유는 글쓰기를 결코 멈추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끝까지 쓰는 용기가 내게는 무척 필요하다. 작가로서의 삶은 평생을 통틀어 살고 싶을 만큼 내게 꽤 중요한 삶이다.


어떤 글이든 그저 쓰려했다는 것만으로도, 글을 지우지 않고 계속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려 한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다.




# 말에도 숙성이 필요할까


내게는 좀 특이한 습관이 있다. 누군가에 대한 다정한 생각들을 바로 말하지 않고 좀 뜸을 들이곤 하는 습관이다. 일부러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저 어떤 말들은 해야 할 시기를 타고난다 생각해서이다.


친한 하영 언니와 대화하며 언니에 대해 생각했다. 언니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정말 강한 사람이구나. 내가 볼 때는 언니 삶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언니는 흐트러지지 않고 참 강인하고 건강하게 스스로의 마음을 지켜내고 있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며 언니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언젠가 언니에게 말할 기회가 스스로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몇 주 뒤 내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점차 잊어버리고 있을 때쯤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 그냥 일상적인 안부를 카톡으로 주고받았는데, 언니가 좀 우울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 그 말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언니에게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언니는 내가 자신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며 무척 감동 받아 했다.


나도 왜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나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경험상 내 안의 다정한 생각들이 점점 숙성되어 세상에 말의 형태로 나갈 준비가 될 때쯤 말들이 스스로 나에게 그때를 알려준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가끔은 당장 떠오르는 말만 듣기보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고르고 고른 말들을 듣고 싶다. 대개 그런 말들은 오래도록 곱씹고 싶을 만큼 깊은 맛을 가진 말들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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