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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Feb 04. 2022

거리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지

'친구'에 대해 사유하다

혜령이와의 관계는 생각할수록 신비하다. 우리의 연을 묶고 있는 실은 너무나 가늘고 헐겁다. 여전히 친구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이다. 어쩌면 실보다 중요한 건 그 실 끝을 잡은 손의 의지 일지도.


혜령이를 처음 만난 것은 사적 모임에서였다. 여러 사람과 함께 만나는 탓에 혜령이와 따로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지만, 멀리서도 혜령이 입을 열면 자꾸만 귀 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충분히 사유를 거친 언어를 좋아하는데, 혜령이는 그런 언어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 모임은 몇 번의 만남 이후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혜령이를 만날 기회도 함께 없어졌다. 우리는 교집합이 없었고, 사는 거리도 멀어 앞으로도 마주칠 일은 없었다.


용기를 내어 혜령이에게 연락했다. 함께 밥을 먹고 싶다고. 혜령이 사는 지역에 가려면 우리 집에서도 장장 3시간에 걸쳐 대중교통을 갈아타야 했다. 혜령이가 거절할까 걱정했다. 굳이 먼 길을 가서라도 자신을 만나겠다는 나를 혜령이는 오히려 고마워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과 이동 거리 사이에서 나는 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멀리서 온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있다는 혜령이의 말을 따라가보니 초여름 초록빛 나무가 무성히 둘러싼 강가가 있었다. 오래도록 강가를 따라 나무를 바라보며 함께 걸었는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다 갑자기 혜령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다다랐다. 자신의 어린 시절 아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혜령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론 가슴이 아프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큰 혜령이가 대견하기도 했다. 혜령이와 비슷한 시대에 자란 탓에 나 또한 닮은 아픔이 있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우리는 어린 시절 상처받았던 내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혜령이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거라는 걸 미처 생각지 못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어쩐지 혜령이의 마음속 나이테를 바라본 느낌이었다. 나이테의 모습이 생각보다 더 멋졌다.


그때의 그 만남 때문이었을까. 서로 다른 이유로 너무 바빠진 일상에 오래도록 연락을 하지 않는 고비는 몇 번 있었으나, 거짓말처럼 일정 시기가 되면 갑자기 서로를 떠올리고는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인연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은 채 이어졌다. 어쩌다 한 번씩 만나게 될 때마다 혜령이의 몇 마디는 내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겼고, 혜령이를 만나고 온 뒤의 날들은 그 말을 오래도록 복기하는 시간이었다. 혜령이는 상대방을 깊이 통찰하고 애정을 담아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말을 오래도록 복기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혜령이에게 고민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일상 이야기만을 할 때도 많았지만, 혜령이는 이상하게도 뜬금없이 내 고민을 관통하는, 혹은 그 고민에 결정적 방향을 제시해주는 말을 해주곤 했다. 일상의 이야기로도 덮이지 않는 내 마음속 이야기들을 이상하게도 잘 눈치채는 혜령이가 나는 매번 신기했다. 얼마 전 읽은 데미안을 보며 혜령이가 자꾸만 떠올랐다. 내게는 혜령이가 긍정적 의미의 데미안이었다. 알을 뚫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 꼭 한 번씩 등장하는 데미안처럼 혜령이는 중요한 갈림길에서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여전히 각자 바쁜 우리는 이번 겨울에도 만나기가 어렵다. 요즘따라 혜령이 생각이 자주 나길래 고시 공부하느라 애쓰는 혜령이를 위해 선물을 보냈다. 선물을 받은 혜령이는 메시지를 보냈다.

“안 그래도 네 생각이 계속 나서 연락해보려 했지.”


혜령이의 메시지를 보며 생각했다. 애쓰지 않아도 그저 서로의 생각을 자주 하는 이 마음이 우리의 실을 이어가게 했다는 것을. 멀리 살고, 누구 하나 외면하면 금세 멀어질 것 같은 우리의 위태로운 실은 생각보다 단단했다는 것을.


혜령이와 만나며 내게 있어 친구란 ‘가까이 살고, 자주 볼 수 있느냐’가 아니라 ‘거리와 상관없이, 자주 못 보더라도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아끼는지’에 따라 맺어지는 관계란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만나도 친구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2년에 1번 봐도 친구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매일 봐도 내 마음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꾸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혜령이를 떠올리며 나에게 있어 인연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해보았다. 내가 마음을 쏟는 관계들이 단순히 거리와 만남의 횟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하면서도 좋았다. 설사 내 친구들이 다른 나라로 떠난다고 해도 마음의 거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 단지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나는 친구들을 오래도록 보지 않고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마도 내 친구들도 비슷한 영혼을 가졌기에 우리가 계속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게 아닐까.


코로나로 모든 인연들이 강제 정산(?) 당하는 요즘. 하나둘 가늘게 이어졌던 실들이 많이도 끊어졌다. 내게 남은 실들의 반대편을 잡고 있는 단단함을 새삼 느껴본다.    명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소중함을 보듬어본다. 보듬을수록 배가 불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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