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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n 10. 2023

토요일 아침 시간이 나에게 준 것들

작년부터 돌봄 담당교사가 되며 토요일 아침이 분주해졌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저에게 있어 토요일 아침은 바쁘게 돌아가는 평일의 시계를 잠시 끄고, 저만의 시계를 켜는 시간이었습니다. 눈이 저절로 떠질 때까지 마음껏 자고, 아직 잠든 아이를 뒤로 하여 살금살금 서재로 가 마음껏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쩌면 일주일의 시간 중 유일하게 제게 주어진 투명하게 비워져 있던 시간. 그 시간이 있었기에 평일의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돌봄 업무를 맡게 되며 그런 시간이 저의 세상에서 잠시 모습을 감추자 적응하기가 힘겨워졌습니다. 무려 이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18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네요. 토요일 아침의 저는 불안했고 외로웠습니다. 제게 지금 이 업무가 꼭 필요한 시점이기에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 업무를 맡았지만,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춥고 힘겨웠던 18개월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지금의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무엇이든 적응하는 데에 오래 걸리는 저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제야 저는 새롭게 변한 토요일 시간이 가진 색깔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시간이든 지나고 나면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무용해 보이는 일들도 반드시 그 발자취를 제 삶에 남깁니다. 저에게는 무척 소중했던 토요일 아침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낸 시간들은 저를 보이지 않게 성장시켰습니다.


안희연 작가는 그의 책에서 말합니다.


저에게 세상은 양초로 쓰인 글자 같습니다.
이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안희연, 단어의 집 중에서


양초로 쓰인 글자 같은 세상을 살아가며,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점자처럼 더듬어가며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라는 사람의 재질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탐독하는 시간일 테니까요.


추운 겨울이 지나 초록잎 무성한 여름이 왔습니다. 겨울이 오면 여름이 오고 또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압니다. 씩씩하게 겨울을 잘 보내다 보면 다음 겨울을 이겨낼 힘이 생긴다는 것도요. 토요일 아침의 슬픔을 이겨낸 제게 삶이 준 교훈입니다.


또 토요일입니다. 어디에 계시든,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씩씩하게 당신의 길을 가시길 바랍니다. 모든 길이 좋진 않겠지만, 모든 길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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