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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n 17. 2023

일을 하며 친해지는 사이

그러니 나에게 친목을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안녕하세요, 독자님. 성실한 주말 연재를 꿈꾸는 연재 꿈나무 빗소리입니다.


초록의 계절입니다. 이 시기에 잔나비의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노래는 저만의 계절 주제가예요. 실컷 듣다가 또 다른 주제가로 넘어가곤 합니다. 파란 하늘로 뻗어가는 초록의 손들이 참 아름답네요. 미래를 기대하고 꿈꾸기보다 오늘 하루 안에서 제가 찾을 수 있는 최대치의 작은 행복과 감사를 찾고, 그 안에서 진심으로 기쁘고 싶어요. 오늘 하루는 제 긴 인생을 압축해 놓은 짧은 인생이니까요. 오늘 하루, 소중하게 보내시길요. :)



일을 하며 친해지는 사이


"저는 일을 함께 하며 친해지는 사람이라서요."


언젠가 학년 부장을 맡았던 친구가 동료 교사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때 당시 친구의 학년에는 업무보다는 인간관계 맺는 것을 더욱 중시하는 선배가 있었다고 해요. 물론 서로 대화하고 함께 놀면서 친해지는 성향은 그 사람의 고유하고 존중받을만한 성향이죠. 문제는 학년 부장이었던 저의 친구에게 자신과 똑같기를 강요했다는 점이었어요.


"부장님, 우리 자꾸 일만 하지 말고, 자주 모여서 수다 떨고 좀 친목의 시간을 가져요."


친구는 부장이 학년의 친목 유지에 너무 안일하게 행동한다는 뉘앙스의 말들로 계속 압박하는 선배로 인해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분을 오래 참아주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선배님, 대화의 시간 좋지요. 그런데 저는 일을 하며 함께 친해지는 사람이에요. 저에게 선배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아 주세요."


5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도 그 문장이 제 마음의 어느 한 구석에 가라앉아 오랫동안 둥지를 틀었습니다.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저와 교집합인 부분이 있다는 것. 친구와 저의 교집합은 과업을 함께 하며 친해지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일이 가진 특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일은 꼭 한 사람의 인생과 같아서 그 안에 희로애락이 가득합니다. 한 해의 교직 생활을 돌아보면 마치 소설처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순서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한 해를 함께 하며 힘든 일로 서로 지쳐도 보고, 의견을 합할 때까지 상의해 보며, 완성된 일의 결실을 보고 서로 뭉클해하며 기뻐하는 순간들이 있지요. 저는 그 시간 속에서 동료와 수없이 오고 가는 감정들을 참 사랑합니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이 오고 가는 순간도 있지만, 한 해를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감정들의 총합이 그 사람의 진가에 대해서 알게 해요. 좋은 사람처럼 보여도 한 해 함께 일하고 나면 다시는 연락하고 싶지 않은 동료가 있고, 그리 특별하게 보이지 않던 사람도 함께 일하고 나면 반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제 인간관계에서 십 년 넘게 서로 좋은 사이로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대학 친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로 만난 사이입니다. 한 해 동안 함께 일한 시간만큼의 확실한 보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생각하기에 느낌이 좋았던 사람들은 오래도록 저의 지인으로 남겨둡니다.


교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 업무보다 친목을 더 중시하는 분이 계셔요. 저에게도 일만 하지 말고 친목을 더 중시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자주 하기에 몇 번 대화를 오래 했는데, 대화가 끝날 때쯤엔 항상 그 시간이 아까워서 아쉽더라고요.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다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적당한 거리를 두며 제 업무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안에 분명한 확신도 세우기로 했어요. 나는 친목의 대화보다 함께 일하며 그 사람의 진가를 살펴보는 사람이라고.


대화를 통해 사람을 알아보는 것과 함께 일하는 과정을 통해 알아보는 것 중 무엇이 더 낫다고 우열을 가리긴 어렵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어떤 방식이든 각자가 선호하는 방식이 있고, 그렇기에 서로의 방식이 맞다고 누군가를 압박하기보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알아서 소신 있게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동안 사람들과의 초점 없는 대화를 피곤해하는 제 자신을 스스로 못마땅하게 생각했었거든요. 좀 더 인간관계에 치중하라고. 시간이 지나니까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좀 더 스스로의 특성을 면밀히 관찰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더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를 일로 만나는 과정을 즐기는 스스로를 존중하고, 나와는 다른 방식을 가진 사람을 바라보면 저런 방법도 있구나 인정하며 살고 싶습니다. 모두가 사람과 친해지는 방식이 다르기에 때론 좋아 보이는 방식이 있으면 헌 옷을 벗고 과감히 벤치마킹하는 용기가 제게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다 또 그 새 옷이 안 맞으면 다시금 스스로의 헌 옷을 멋쩍게 주섬주섬 입을 수 있는 배짱도 가질 수 있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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