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Jun 24. 2023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지난 3월, 제 삶을 정의하는 새로운 단어가 추가되었습니다.


6살 아이 엄마, 부장교사, 읽고 쓰는 사람, 밴드 보컬


앞의 세 단어만으로도 이미 비좁은 제 삶에 한 단어가 더 추가되었고, 네 단어를 온 삶으로 끌어안는 데에는 예상보다 훨씬 큰 진통이 왔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힘든 걸 알고 있었음데도 내가 왜 그리 무모했을까 하는 생각을 4개월 내내 했습니다.


주 1회의 연습과 이어진 몇 번의 공연. 아가씨 시절이었다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일정이었지만, 아이 엄마에게는 아이를 대동하거나 맡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거운 일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2명의 보컬들과의 실력 비교로 혼자 찌질이가 되어 돌아오는 길 내내 운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음색이 좋다는 자신감으로 밀고 들어간 보컬의 자리였지만, 현실은 결국 실력으로 답해야 했습니다. 왠지 다른 보컬들과 비교되는 관객들의 호응, 오늘 공연을 망칠까 걱정되는 긴장감과 불안감. 제가 싸워야 할 감정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공연이 치러지는 날은 그 감정들과 험난한 전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6월 초, 정말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던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공연 사진 속에서 함께   관객석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보컬을 도전할 때만 해도 함께 하는 이들을 내가 ‘우리’라는 단어로 묶어 낼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제겐 그저 무대에 선다는 신기함과 기대감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연습하고 고민하며 좌절하는 많은 시간의 급류에 함께 몸을 맡기며 흘러가다 보니 어느덧 서로의 삶에 우리라는 단어를 새기게 되었습니다.


한 미혼 선생님의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아 사랑이 뭘까 한참 고민하며 함께 이야기하던 시간, 공연장 시설이 엉망이라 같이 멘붕에 빠지며 해결하려 애가 닳던 시간, 연습시간에 쫓기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공연에 들어가던 시간.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간 우리 아이를 서로 돌아가며 본 시간. 이 시간들이 합쳐지면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저 다가오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 고군분투했습니다.


4개월을 돌아보니 노래 불러 행복했던 시간보다 밴드 멤버들이랑 연습과 공연이라는 불안정하고 불편한 시간들을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낸 순간들이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40대 초반 아줌마가 나이, 성별, 성향을 뛰어넘는 공동체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것. 제가 4개월 동안 얻은 것은 이런 소속감이었고, 그 소속감이 주는 기쁨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망설여질만큼 마음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데이식스의 노래 가사처럼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강렬한 색깔로 색칠한 것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스케치가 협동화였기에 더 좋습니다.


앞으로도 힘듦이 예약된 시간이라 해도 이제 후회는 그만하려 해요. 노래와 ‘우리’라 부를 수 있는 동료들이 제 삶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삶의 기로에서 선택의 어려움이 또다시 다가올 때마다 어려움보다 소중함을 더 고려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소중함은 당장은 어려워도 결국에는 반짝반짝 빛나고야 마는 먼지 낀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니까요. 그저 매일 성실히 그 다이아몬드의 먼지를

닦아내는 것이 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모든 것의 민낯이 드러나는 계절



너무 얄미운 사람이 있어요. 작은 업무 하나조차도 절대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도록 철벽을 치는 사람. 학교 일의 특성상 업무 담당자끼리 협조해야 할 일이 많은데, 무조건 커트부터 하는 그 사람과 엮여야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큽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잡초처럼 매일 새롭게 어려운 문제가 솟아나는 교실 환경에 지치기도 합니다. 애를 써도 나의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을 때, 그런 순간에 권태와 좌절감을 느껴요.


여름이라 그런 걸까. 얄미운 사람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고, 지치는 환경에 한동안 마음의 힘이 빠졌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어요. 이렇거나 저렇거나 본질에만 집중하자고.


아무리 그 사람이 얄미워도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니 내가 요구할 건 요구하고, 거절당하면 당하는 대로 그저 내가 할 부분이라도 제대로 하자. 나는 성실함 속에서 기쁨을 얻는 사람이니 반쪽짜리 일이라도 내 방식대로 일하고 일이 완성된 뿌듯함을 누리면 된다.


결과가 이상해도 아이들에게 매일 매 순간 정성을

다하자. 정성을 다했는데도 안 되는 건 내 영역이

아니다. 안 되는 건 눈 감고, 잘 되는 것만 바라보자. 정성을 다하는 그 느낌이 그냥 너무 좋으니까.


사람을 안 미워하고 마음에 품지 않는 것, 정성을

다하는 것. 그런 마음들이 켜켜이 쌓인 내 삶의

지층은 분명 연륜으로 남을 거예요. 사람을 쉽게 용서하고, 매 순간 내가 해야 할 열심을 찾는 어른으로 늙고 싶어요. 그러니 지금 용서하고, 지금 열심을 내야겠습니다. 오늘도 용서에 실패했지만,  내일 일어나면 또 다짐할 거예요. 성공 여부를 떠나 새롭게 다짐하는 그 자체가 참 씩씩하고 멋지니까요.


여름입니다. 여름은 모든 것의 민낯이 드러나는 계절. 강한 태양빛에 윤곽이 드러나고, 넘쳐나는 열기에 감정의 밑바닥이 드러납니다. 그러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오면 거짓말 같이 하얀 눈으로 모든 것이 덮이죠. 마치 그런 민낯은 없었던 것처럼. 저는 학교 생활의 이런 사이클을 사랑합니다. 부풀어 올랐다가 익어가는 빵처럼 부글부글 끓어 넘치던 감정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 성숙되는 과정을요. 아마도 제 안에 들었던 미움과 권태도 첫눈이 오고 나면 한결 부드러워지겠지요?


사계절을 닮은 직장이 참 고맙습니다. 여름 한복판에서 겨울 학교의 애틋함을 기대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을 하며 친해지는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