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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n 25. 2023

나의 사랑하는 교감선생님께

스스로가 생각해도 사랑과 교감선생님이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나의 교감선생님을 생각하면 사랑이라는 말 외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처음 교감선생님께서 우리 학교에 발령 나셨을 때, 지인이 교감선생님을 이렇게 표현했던 것이 기억난다.


“사랑스러운 마음을 가졌어.”


교감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훤칠한 키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쩐지 사랑스러움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지 않을 만큼 쿨내 나는 인상이어서 지인이 하는 말의 뜻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교감선생님과 함께한 지도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사랑스러움이란 단어가 교감선생님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생각하며, 지인이 해준 말들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교감선생님의 사랑스러움은 여러 군데에서 드러나지만, 내가 교감선생님께 가장 반한 순간은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교감선생님이 보인 태도였다. 내가 성경에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면 천국을 비유한 장면인데, 사자가 어린양과 뛰어노는 곳이라 표현한 부분이다. 갑질 신고가 보편화 되고 있는 세상이라지만, 교감이라는 자리는 합법적으로 자신이 가진 권한을 가지고 교묘하게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는 자리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보다 많은 권한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내가 느낄 때 교감선생님의 자리는 사자에 가깝다. 교감선생님이 자신이 사자라는 사실을 일부러 잘 잊어버리는 것 같지만. 교감선생님은 학교에 일회성으로 오는, 어쩌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만한 사람들에게조차도 정성을 다해 예의를 보여주고, 그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신다. 공손하게 말하고, 다정하게 인사한다.


특히 다정하게 인사하는 부분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다. 자동적으로 하는 인사는 마음의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고 할 수 있지만, 다정한 인사는 진심을 담아야 하기에 좀 더 에너지를 써야 하고 피곤할 수 있다. 교감선생님께 놀라운 부분은 하루 중 만나는 모두에게 다정하게 인사한다는 것이다.


겨울방학 때 도서관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인테리어 사장님께서 어찌나 무례하신지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아니 우리 교감선생님께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에 한 판을 할까 두 판을 할까 고민을 치열하게 한 적이 있다. 부글부글하는 나와 달리 끝까지 사장님께 공손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교감선생님을 보면서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지난 1월 발령 난 우리 학교 막내 22살 주무관님께도 늘 낮은 자세를 고수하는 교감선생님의 모습은 신선하다. 제때 처리하지 않은 일로 인해 교감선생님께 빨리 해주십사 부탁하러 주무관님이 오실 때는 마치 상사에게 업무 독촉을 받는 것처럼 쩔쩔 매시는 모습이 놀랍다.


교감선생님의 순한 맛만 봤다면 모두에게 낮은 자세로 대하는 교감선생님의 모습이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교감선생님의 매운맛, 걸크러쉬가 터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매우 비합리적인 상황 속에서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불합리하다 생각되었지만, 아무도 내 일이 아니라 관심 갖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교감선생님은 자신의 이익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가지고 집요하게 교육청에 이의를 제기했다. 돌아오는 대답들은 한결 같이 부정적이었고, 교감선생님의 이의 제기는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자신의 일도 아닌데 그렇게 소모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쓰는 교감선생님이 나는 이상하고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늙어야 할까를 자주 골똘히 고민하곤 하는 나에게 교감선생님과의 만남은 아주 소중한 기회이다. 바보같이 사는 그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이들을 존중하고, 나의 이익과 관련 없어도 누군가 불합리한 대우를 당한다 싶으면 파르르 하시는 참 이상한 교감선생님. 교감선생님은 내가 교감선생님이란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실 거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부끄러워서 아주 살짝씩만 손 편지로 표현하곤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신다면 깜짝 놀라시겠지만, 이 글은 교감선생님께 도착하지 않을 수신자불명의 편지이다.


세상에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어른들이 많다. 이 어른들과 내 삶이 만나 접합되는 순간, 나는 깊은 기쁨을 느낀다. 교감선생님의 삶은 내 삶에 녹아져 나를 좀 더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반년 밖에 안 남은 교감선생님과의 생활이 벌써 아쉽고 속상하다. 내게 하는 작은 부탁도 조심스럽게 교실에 올라와 공손히 부탁하고 가시는 교감선생님. 교감선생님의 부탁이라면 무조건 덮어 놓고 네라고 말하는 내 마음을 교감선생님은 눈치채셨을까. 학교 생활은 고단하지만, 교감선생님이 있기에 내 마음의 학교는 좀 더 따뜻한 온도를 가진 그 무엇이다. 월요일 출근이 싫어질 때마다 나는 교감선생님을 떠올린다. 내일도 교감선생님의 부탁에 0.3초 만에 네라고 대답해 드려야지. 내 어설픈 개그에 깔깔대고 웃으시는 교감선생님을 위해 또 다른 개그를 준비해야지.


나의 사랑하는 교감선생님께,

교감선생님, 제 삶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계시는 동안 모든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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