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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n 29. 2023

사랑이 깜빡이던 순간

평상시에는 괜찮아도 이상하게도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은 꼭 무슨 일이 생기고야 맙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면 포기할 수야 없겠지만,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포기해야 할 제일 우선순위가 되어버립니다.


오늘은 밴드의 마지막 공연 날. 주행 중 타이어가 펑크 나서 수습하느라 고생했던 첫 공연 에피소드에 이어 마지막 공연 날에도 다른 일이 터졌고, 그 일을 수습하느라 공연 참여를 취소해야 하나 고민한 오후였습니다. 밴드는 제가 취미로 하는 상황이기에 아마도 모두가 밴드를 먼저 포기하라고 말하겠지만, 밴드 활동은 제게 취미이자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게 해 준 소중한 활동입니다. 저는 포기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생각했기에 여러 가지 장애물 같은 일을 넘어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직장을 가진 워킹맘으로서, 아이를 가진 아이 엄마로서 내가 당연히 포기해야 할 것들은 왜 이리 많은지. 그리고 포기하지 않음으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얼마나 어마 무시한 지…..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과 포기하지 않음으로 인해 밀려오는 수많은 고초 속에서 그렇게 힘겹게 1학기의 마지막 공연에 다다랐습니다.


굽이굽이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학교는 40여 명 규모의 작고 아담한 시골학교였습니다. 악기와 방송 장비들을 이고 지고하며 밴드 멤버들과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공연은 야외에서 하기에 버스킹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연이었습니다. 마이크로 첫 음을 떼는  순간 6월의 뭉근한 공기를 타고 목소리가 동동 떠다녔습니다. 학교 측에서 공연을 위해 아침부터 매다느라 고생하셨다는, 꼭 작은 별 같이 반짝이는 전등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꼭꼭 씹어봅니다. 6월만이 줄 수 있는 이 여름 냄새와 미지근한 공기, 서로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어깨 삼아 서로에게 기대 보는 순간들. 놀이터 보도블록 앞에 앉아 자유롭게 공연을 보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수많은 어려움에도 반드시 이 공연에 왔어야 할 이유와 감사를 찾았습니다. 평생 동안 잊히지 않은 아름다운 여름밤의 광경들을 눈에 차곡차곡 쌓으며.


내게 주어진 역할들을 소화하며 살아낸다는 게 갈수록 더 버겁고 힘들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일에 좀 더 용감해지고 싶습니다. 돈과 명예보다 추억의 곳간이 그득한 사람이 가장 부유한 노년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하거든요.


오늘 밴드 멤버 중 한 분이 이런 멘트를 했어요.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이런 가사로 이어지는 백만 송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하여 피운 꽃송이가 몇 송이나 될까. 죽기 전에 10송이만이라도 피워보고 싶습니다. “


멤버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어요. 나는 몇 송이나 피우며 살았을까. 부끄럽지만 아직 한 송이도 못 피운 느낌이에요. 옹졸한 제 마음은 미워하는 마음을 아직 못 버렸거든요.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함께 동시에 파고드는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는 버리지 못한 부족한 저를 어쩌면 좋을까요.


그래도 그 말을 들으며 새로운 결심을 해봅니다. 적어도 한 송이만이라도 제대로 피워보고 죽어야지. 미워하는 마음 없이, 정말 아낌없이 사랑만 주는 사랑 꼭 해봐야지. 저는 교사니까 아이들에게 꼭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사랑하는 제 아이에게도… 아직은 멀었지만요.


공연이 마치고 밴드 멤버들과 각자의 차를 타고 시골길을 줄줄이 달립니다. 빨간 불이 깜빡깜빡….. 서로의 불빛에 의지하여 한참을 시골길을 달리며 생각해요. 저 불빛들이 지난 1학기 동안 내게 나누어 주었던 시간들을…다가올 미지의 미래라는 어두움과 일상의 방해 속에 우리의 음악은 여전히 스러지고 아프겠지만…. 그래도 이 음악들이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처럼 예쁘게 피어나길 바랍니다.


내일도 더 맹렬히 편안함보다 소중함을 쫓아가자 마음먹으며, 하루를 닫습니다. 소중함을 택한 이는 비록 고단하겠지만, 적어도 하루의 끝에 다다른 느낌은 이렇세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테니까요.



+ 오늘의 마지막 공연을 위해 17년 만에 미니스커트에도 다시 도전을 해봤네요. 공연이란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있기에 많은 도전을 할 수 있어 고마워요.


https://youtu.be/wOAcqIgAmjM


+ 요새 이 노래에 꽂혔네요. 가사 듣고 눈물이 주룩주룩. 우리 모두 견뎌줘서 참 고마워요 꺾이지 말고 피어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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