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Jun 30. 2023

불행이 빼꼼히 고개 들 때



주기적으로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제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이미 세트 상품처럼 삶에 포함된, 오래된 불행이 빼꼼히 고개를 듭니다. 어제는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기분이라 중간중간 눈물이 흘렀습니다. 함께 놀던 딸이 말을 겁니다.


“엄마, 왜 울어?”

“네 말이 감동적이어서 울어.”


한참 있다 또 우는 저에게


“엄마, 왜 또 울어?”

“응?”

“혹시 눈이 아파?”

“응, 눈이 아프네.”


세 번째 눈물을 보이자


“있잖아. 눈물이 나올 때는 이렇게 이불을 꼭 껴안고 부비부비하는 거야. 자, 해봐.”

“(억지로 따라함)”

“알았지? 눈물이 나올 땐 이렇게 해.”


눈치가 빠른 딸에게 결국 저의 마음을 간파당한 거 같아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행복한 엄마가 아니라 미안하지만, 엄마 돌아가신 뒤부터는 죽음이 그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인식하게 되어 건강히 살아만 있어도 나는 좋은 엄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미안함을 오래 품진 않았어요.


행복해지고 싶어 글을 쓰기에 글을 쓸 때는 제가 할 수 있는 좋은 생각들에 날개를 달아 훨훨 날아가게 합니다. 글로서만 저를 보시는 분들은 제 어둠이 잘 보이지 않으실 거 같아서 저의 삶을 좋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도 종종 만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혹시 행복한 척 연기하는 사람인가 생각한 적이 있어요. 괜히 모두를 속이는 건가 고민도 하고요.


그래서 가끔 말하고 싶어요. 내겐 해결할 수 없는 불행이 있다고. 그리고 모두의 삶에는 드러나는 삶만큼, 똑같은 무게를 가진 불행이 내재하는 것만 같다고. 마치 빙산처럼요.


불행이 올까 봐 겁내는 것보다, 불행을 떨쳐내려 몸서리치기보다, 해결할 수 없는 불행 앞에서는 내가 종종 행복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는 수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그저 내가 숨 쉬는 것에 대한 감사만이 필요한 건 아닐까. 어제의 불행으로 죽지 않은 내가 감사하고, 없었던 일인 양 또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를 내어 감사합니다.


매우 느리지만, 저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제가 짊어지는 불행을 이고 지고 가느라 매우 느릴 거 같습니다. 그래도 또 앞으로 나아갈 거예요. 주어진 삶을 가지고 최선의 요리를 만드는 게 제가 해야 할 유일한 미션이니까요.


부서져 본 사람은 작은 빛에도 감사를 찾는 능력이 생긴다합니다. 저는 삶을 살아오며 산산조각이 나도록 부서져봤고, 그저 오늘 산 해바라기 마음으로도 순식간에 행복해지는 단순한 사람이네요. 여행을

가기 어려운 학기말이지만, 오늘 산 해바라기 속에, 지금 집에 가기 전 잠깐 들른 스타벅스에서 숨을 돌리는 찰나 속에 제 여행이 깃들어 있습니다.


실낱 같은 빛이어도 꼭 붙잡아볼게요. 제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실낱 같은 빛으로 깜빡이는 별이 되어 볼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깜빡이던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