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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Dec 09. 2019

유럽, 10년 안에는 다시 갈 줄 알았지. 프롤로그

2007년, 나를 위해 다시 쓰는 유럽여행기


 *) 정확히 2007년의 여행기로 아무런 정보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얼마되지 않는 사진 중 제일 좋아하는 하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유럽 배낭 여행을 가야지, 하는 꿈이 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저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로맨틱한 꿈의 한 조각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배낭을 메고 가지도 않았고, 생각만큼 로맨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나름 커다란 한 획을 그어주었던 사건. 10년 안에는 다시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어느덧 12년이 지났고 보름쯤 있으면 13년 째로 접어드는 이제는 아련한 나의 첫 여행. 사실은 아련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기는 한데 언젠가는 점점 바래져 갈 것만 같은 기억이 아쉬워 나를 위해 적어보는 여행기.  




 꿈이 구체화된 것은 정말 우연찮은 계기였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1학년이라면 반드시 가야하는 답사 프로그램의 어느 늦은 밤. 술과 술게임으로 난장판이 된 방에서 친구와  숙소 슬리퍼를 질질 끌며 슬금슬금 빠져나왔다가 생각보다 많이 걸어거 도착한 낙산해수욕장. 모래 위에 슬리퍼를 깔고 주저앉아 밤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함께 나누었던 유럽여행의 꿈. 혼자 가기는 무서우니까 우리 같이가자! 친구까지 설레게 만들어서 둘이 큰소리를 땅땅치며 약속했지만 나중에 우리는 윈저성에 앉아서 커다란 백조를 보며 얘기했었다. 야, 진짜 너랑 올 줄 몰랐다.




윈저성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새. 엄청 커다래서 거위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니 백조같기도...




 2학년 여름방학은 너무 급하니까 3학년 여름방학을 디데이로 잡고 둘다 열심히 알바를 해보았지만 수도권사는 학생들이 서울 끝자락까지 통학하는 것도 허덕이던 때이니  대학생이 벌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었고 결국은 내가 번 돈(극소)+부모님의 도움(대부분)으로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하....기는 커녕 다달이 카드값을 걱정해야하는 지극히 소시민적 가정이지만 우연찮게도 그 당시에 이사를 가게 되면서 약간의 차액이 생겼고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선물해주셨고 정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여행이기도 했고, 하나도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캐리어부터 시작해서 카메라는 물론이고, 숙박과 교통을 포함 한 한달 정도의 여행경비 전체를 사용해야 하는 돈으로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알뜰살뜰(이라고 쓰고 구질구질이라고 읽는다) 아껴서 마지막 여행지였던 프랑스에서는 선물도 사올 수 있었다. 엄마는 가끔도 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평생 뭐 해달라고 하지 않던 애가 여행경비를 보태달라고 했다고. 사실 엄마한테 해달랬던 것도 많고 그 때마다 해주신 것도 해주지 않으신 것도 있는 기나긴 세월을 보내왔지만 엄마에게는 바라는 것 없는 착한 딸이었나 싶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궁상맞음의 끝의 보여줬던 우리의 한끼 식사가 되어 준 사과. 물론 이것만 먹지는 않았다.



 7월에 떠나는 여행을 연초부터 준비를 했다. 5월 부터는 거의 여행에 매달려 살아서 그 학기 학점은 최악(...) 한 번 여행을 가고자 마음먹으면 걱정도 고민도 많은 성격이 더욱 빛을 발해서,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고 A부터 Z까지 내 손으로 챙겨야 속편한 나는 여행사를 끼고 준비했음에도 매일을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무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지금처럼 인터넷상에서 다른 나라의 숙소나 교통수단을 예약하기 쉽지 않았던 시절. 물론 할 수는 있었다. 메일을 보내고 다시 답메일을 보내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친다면.... 첫 여행이기도 했고, 부모님도 걱정을 하셔서 그리고 솔직히 자신도 없어서 숙소와 호텔은 여행사를 끼고 진행하기로 했다. 당시에 선택한 여행사는 E모 여행사. 당시에도 유명한 대기업 여행사나 배낭여행으로 유명한 Tomorrow 여행사, Balloon 여행사 등등이 있었지만 그 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 회사가 배낭여행 전문을 내세웠던 것도 아니고, 세세한 일정을 조절해줘서도 아니고- 물론 이 부분을 유용하게 쓰기는 했다- 대학 친구가 이 곳을 통해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내가 아는 누군가가 직접 해 본 경험은 신뢰도를 높이고 낮추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다시 한 번 깨달은 사건.




 당시에 여행사에서 제공해주는 기본 일정은 22일과 29일 두 개. 엄청나게 고민한 끝에 이왕가는 거 얼마 차이도 안나는데 길게 가자 싶어서 29일을 선택했고 여행 막바지에 엄청나게 후회했다. 예나 지금이나 저질체력이었던 나는 22일이 넘어가면서부터 급격한 체력저하를 겪기 시작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어렵게 들어 간 스페인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지 않아서 막판에는 조금 힘들게 여행을 이어갔었다. 자꾸 집에 가고 싶어서 나에게는 22일 정도가 딱이야 했지만 10여년 쯤 지나서 돌아보니 그 때 그래도 무리해서 돌아보길 잘했어 라는 마음이 든다. 물론 인간의 망각의 동물이니 좋은 기억만 남아서 일 수도 있지만.



유럽 여행을 함께 해 준 우리의 커플 캐리어. 저렇게 어마무시한 자물쇠를 채워다녔다니.. (경악)


 캐리어를 사기 위해서 몇십만원어치 현금을 들고 샘X 매장에 갔지만, 돈이 없어보였는지 손님으로 응대를 해주지 않는 직원들에게 빈정이 상해서 옆에 있는 다른 매장에서 친구랑 커플로 캐리어를 사고 집에 오는 광역버스 두 자리를 차지하고 온 경험. 디지털 카메라를 사려고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기종별로 색감을 비교해보기도 했고, 오리엔테이션을 듣겠다고 강남에 있는 여행사까지 가기도 했었다. 비행기표 예매와 호텔 예약, 추가로 침대 기차 예약까지 맡겼던 여행사에서 일정을 22일로 잡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가기 며칠 전까지 열차 예약이 마무리 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는 등 출발하기 전까지도 온갖 에피소드가 많아서 이러다 가긴 가나 했는데 가긴 갔다.



매일매일 쓰기 위해 엄청 노력했던 일기. 물론 다 못 썼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웃긴데 동생과 엄마가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 줬는데 공항버스를 타고 손을 흔드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아무리 생각해도 주책바가지인 것 같은데 그 때는 그렇게 눈물이 났다. 무려 그 때 일기에도 웃기다고 써놨음.



겁쟁이에다가 불안증이 심한 내가, 나중에 엄청 친해지고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와 단 둘이서, 첫 해외여행을 무려 한달짜리 배낭여행으로 어떻게 갔었나 싶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들어 맞는 시기가 있나보다. 아마 이 때가 아니면 나는 아직까지 유럽 배낭여행을 가겠다는 꿈을 못 이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여행 후에 나는 겁이 조금- 아주 조금- 없어졌고, 영어 그다지 못해도 여행 갈 수 있구나 생각했고, 새로운 나의 능력을 깨달았고, 말이 통하는 곳에서는 길을 잃어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쉽게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가지 않았어도 나는 어떻게든 그 해 여름을 지나갔을 것이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깨닫는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 잘 한 선택 몇가지 중 매우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그 해 여름 내가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나도 바래지지는 않지만 조금씩 아련해지는 기억을 곱씹으며 쓰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유럽여행기. 언제나 그렇듯 투머치토커인 나는 아직 출발도 안 했다는 점 :D





여행이 절반도 더 지났을 시점. 내가 진짜 여행을 왔구나 실감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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