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과로사한 김과장, 일잘러가 되다 2-1편
"이게...... 실화인가?"
김민준은 1시간째 거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원룸 자취방의 익숙한 냄새, 책상 위 액자에 대학교 졸업사진, 그리고 거울 속 27살의 자신...... 꿈이라기엔 너무 선명하고 현실적이었다.
민준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2013년 3월 3일, 신입사원 연수를 갖 마치고 사무실에 첫 출근했던 날이다.
"진짜 돌아온 건가?"
가슴을 만져봤다. 어젯밤...... 아니, 12년 후의 그날 밤에 느꼈던 날카로운 통증은 없었다. 대신 젊고 건강한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샤워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만약 이게 정말 두 번째 기회라면 절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39세 김과장이었던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 이제는 안다. 열심히만 하고 똑똑하게 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이번에는 최부장님과 꼭 가까워져야 해.'
최부장은 민준이 전생에서 아침, 저녁으로 인사만 했던 옆 팀 팀장이다. 회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리더이자, 누구나 인정하는 일잘러였다. 하지만 민준은 그저 옆팀 '높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배울 것이다.
민준이 회사에 도착한 건 8시 30분이었다. 출근 시간은 9시였지만, 첫날이니까 일찍 와서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 벌써 오셨네요."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돌아봤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오늘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김민준입니다."
"아, 그래요? 반갑습니다. 저는 마케팅 1팀 박창수 대리예요."
민준은 전생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박창수 대리를 만나고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요. 그런데 일찍 오셨네요? 열정적이시네."
"그냥 첫날이라서요."
민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박창수 대리님 과거 민준의 선배로 짧은 시간 함께 근무했었다. 박창수 대리는 회사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실무자로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민준이 입사한 후 1년 후 이직을 했다. 당시 회사를 잘 다니고 있던 박창수 대리가 도망치듯 이직한 것에 대해서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이내 모두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당시 민준도 박대리의 이직의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같은 팀의 빌런 이재석 대리 때문이었다.
"그럼 커피 한잔 할까요? 오늘 오리엔테이션 있기 전까지 시간 있으니까."
"네 좋습니다."
박창수 대리는 카페테리아로 민준을 안내했다. 민준은 카페테리아로 가는 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가는 길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연기를 했다.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뽑은 후 두 사람은 테이블에 앉았다. 민준과 마주 앉은 창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신입사원 때는 모든 게 다 어려워 보이죠. 저도 그랬어요."
"어떤 게 제일 어려웠나요?"
"음..."
창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보고서 쓰는 거? 처음에는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민준이 귀를 기울였다. 이런 대화를 전생에서는 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혼자 끙끙거리면서 터득했었다.
"보고서에도 요령이 있나요?"
"당연하죠. 근데 그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예요."
갑자기 창수가 피식하고 웃었다.
"하지만 저는 운이 좋아 최부장님한테 조금 배웠죠."
"최부장님이요?"
민준은 최부장을 모르는 척 창수에게 되물었다.
"네. 우리 회사에서 제일 유명한 분이에요. 보고서든 발표든 뭐든 다 잘하시죠. 저는 사실 입사할 때 최부장님 팀이었는데 우리 팀이 신설되면서 옮겼거든요. 그래서 최부장님께 일을 조금 배울 수 있었죠."
창수가 최부장님 팀이었다는 것은 과거에도 몰랐던 일이다. 민준의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기회다.
"혹시...... 최부장님께 인사드릴 수 있을까요?"
"인사요?"
창수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 못할 건 없죠. 근데 왜요?"
"그냥...... 보통 직장에서 상사를 좋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대리님이 칭찬하시는 분이라서 한 번 뵙고 싶어서요."
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점심시간 후에 소개해 드릴게요. 최부장님은 생각보다 친근하시고 사교성이 좋으시거든요. 옆팀 신입사원이 인사하면 좋아하실 거예요."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자 민준의 팀은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 장소로 가는 순간부터 식사하고 사무실에 들어올 때까지 민준의 팀장 서상배 부장은 민준에게 회사 생활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제로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다. 민준은 전생에도 지겹게 들었던 팀장의 잔소리였지만 현생에서 들어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사무실에 들어와 칫솔을 물고 화장실로 향하는 팀장을 창수가 잠깐 멈춰 세웠다.
"팀장님 신입사원 주변 팀에 인사 좀 시키고 오겠습니다."
팀장은 대답 없이 손으로 오케이를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수가 민준을 데리고 옆팀 자리로 향했다. 민준의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어, 창수야. 점심 먹었어?"
최부장은 신문을 보던 중이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나이에 단정한 모습. 전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네. 그런데 오늘 새로 온 신입사원 소개해 드리려고요."
"아, 그래?"
최부장이 민준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민준은 순간 움찔했다. 날카롭지만 싫지 않은 눈빛이었다.
"김민준입니다. 마케팅 1팀에 배정받았습니다."
"반갑네. 최현우야. 영업기획팀 팀장이고."
최부장이 손을 내밀었다. 민준은 조금 떨리는 손으로 악수했다.
"반갑습니다. 부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혹시 필요한 것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하고!"
"그럼 혹시...... 시간 되실 때마다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인사치레로 한 말에 바로 민준이 도움을 부탁하니 최부장은 순간 당황했다.
"조언?"
"네.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 수 있는지 배우고 싶어서요."
최부장의 눈에 흥미로운 빛이 스쳤다.
"구체적으로 뭘 알고 싶은데?"
민준은 잠깐 망설였다.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말하면 이상할 것 같았다.
"우선 보고서 쓰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보고서?"
"네. 학교에서 배운 건 리포트뿐이라...... 회사에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서요."
최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하자. 오늘 6시 30분쯤 우리 팀 자리로 와요. 30분 정도 시간 낼 수 있어."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최부장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배우고 싶어서 오는 거지? 그냥 아부하려고 오는 건 아니고? 그런 거면 소용없어요. 난 힘없는 옆 팀 팀장이니까."
"아뇨! 정말 배우고 싶어서요."
"좋아. 그럼 있다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