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일의 진실

산업통상부 장관의 던진 가짜 일 줄이기의 실체적 출발

by 김용진


서론. 산업통상부 ‘가짜 일 30% 줄이기’ 사례에서 출발하다

2025년 12월 17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가짜 일을 30% 줄이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 발언이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하다. 정부 부처의 공식 업무보고 자리에서 ‘가짜 일’이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공공연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산자부가 지목한 가짜 일이란 불필요한 보고, 보여주기식 행사, 결론 없는 회의, 형식만 남은 행정 업무 등이다.


이는 특정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민간을 가리지 않고 조직 전반에 누적된 업무 방식의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선언이었다.


이 글은 이 사례를 출발점으로, 가짜 일이 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살펴본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도대체 가짜 일은 왜 반복되는가?


I. 가짜 일은 개인의 문제?


조직에서 가짜 일이 많아지면 흔히 개인의 태도를 탓한다.


“일을 대충 한다”, “생각 없이 시킨 것만 한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러나 실제 현장을 들여다보면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대체로 성실하고, 바쁘고, 책임감 있게 일하고 있다.


문제는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일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는가다.


가짜 일은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조직이 설계한 제도와 문화 안에서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행동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성과보다 과정이 평가되는 구조,

책임이 개인에게 집중되는 문화,

결정을 미루는 운영 방식 속에서 가짜 일은 자연스럽게 증식한다.


즉, 가짜 일은 조직이 허용한 합리성의 부산물이다.


II. 제도와 구조가 가짜 일을 만든다


가짜 일이 만들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제도·구조 요인이다.


이 영역에서 가짜 일은 선택이 아니라 거의 필연이다.


첫째, 성과지표와 실제 목표의 불일치다.
조직은 성과를 말하지만 실제로 측정하는 것은 보고서의 완성도, 회의 참석 여부, 상사의 만족도인 경우가 많다.


이때 구성원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보다, 성과처럼 보이는 활동을 늘리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읽히지 않는 보고서가 계속 생산되는 이유다.


둘째, 과잉 결재와 복층 보고 체계다.
의사결정 권한이 위로 집중될수록 실무의 목표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결재 통과가 된다.


통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료는 점점 두꺼워지고, 표현은 점점 무난해진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중간 보고와 사전 조율이 늘어나며, 가짜 일은 본업을 잠식한다.


셋째, 중복 프로세스와 분절된 시스템이다.
동일한 데이터를 여러 시스템과 양식에 반복 입력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일을 하는 시간’보다 ‘기록을 맞추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시스템이 연결되지 않으면 수기 작업이 늘고, 오류를 막기 위한 확인·회의·재보고가 추가된다. 가짜 일은 시스템의 틈에서 자란다.


III. 문화와 행동이 가짜 일을 정당화한다


두 번째 이유는 문화·행동 요인이다. 여기서 가짜 일은 비효율이 아니라 안전한 선택이 된다.


가장 큰 원인은 책임 회피와 흔적 남기기 문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이 개인에게 집중되는 조직에서는 실행보다 기록이 중요해진다. “보고는 했다”, “공유는 했다”는 흔적이 방패가 된다. 그 결과 불필요한 CC(참조), 과도한 회의록, 필요 이상의 보고서가 쌓인다. 실행은 느려지지만 개인은 안전해진다.


다음은 위계와 체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상사를 설득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중요해지면, 핵심을 드러내는 분석보다 보기 좋은 자료가 우선된다.


불편한 사실은 완곡하게 포장되고, 보고의 목적은 의사결정 지원이 아니라 인상 관리로 변질된다. 이 순간 가짜 일은 급증한다.


또 하나는 회의 중심 운영과 ‘참석=기여’라는 착시다.


회의에 많이 참석하는 것이 성실함의 증거가 되면 회의는 늘어난다. 안건·결론·책임자가 없는 회의는 정보를 중복 전달하고, 실행은 항상 다음 회의로 미뤄진다.


회의 준비와 자료 작성, 사후 공유가 또 다른 업무를 만들며 가짜 일을 키운다.


IV. 역량과 운영의 빈틈이 가짜 일을 키운다


세 번째 이유는 역량·운영 요인이다. 이 영역에서는 가짜 일이 ‘대안’처럼 선택된다.


첫째, 문제 정의와 의사결정 역량의 부족이다.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조직은 결정을 미루고 활동을 늘린다. 자료 수집, 추가 분석, 유사 사례 조사가 반복된다.


기준이 없으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니 더 많은 자료를 요구한다. 가짜 일은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확대된다.


둘째, 역할과 책임의 불명확성이다.
누가 최종 책임자인지 분명하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같은 일을 조금씩 한다.


중복과 공백을 막기 위한 공유·점검·보고가 늘어나고 협업 비용이 급증한다. 모두가 바쁘지만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셋째, 자동화와 표준의 부재다.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지 않고 개인의 숙련도에 맡기면 품질 편차를 줄이기 위한 검토와 재작업이 붙는다.


표준이 없을수록 확인 절차가 늘어나고, 확인을 위한 확인이 새로운 업무가 된다. 가짜 일은 운영의 빈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V. 가짜 일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구조의 신호다


산자부의 ‘가짜 일 30% 줄이기’ 선언이 의미 있는 이유는, 가짜 일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일하는 방식 전체를 점검하겠다는 신호다.


가짜 일은 조직이 잘못 설계되었다는 경고다.
성과를 요구하는지, 과정을 요구하는지.
실행을 보호하는지, 책임을 전가하는지.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지, 미루게 만드는지.

가짜 일을 없애는 조직은 더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이 일, 정말 없어지면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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