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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자의 하루, AI가 싹 갈아엎는 중

R&D, 2:8에서 8:2로 바뀌면 벌어지는 일

by 김용진

AI가 리서치를 대신하기 시작하면, 연구개발자는 무엇을 하게 될까?


AI 시대 R&D의 변화는 실제 연구자의 하루를 어떻게 바꿀까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 연구개발자 사이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AI가 논문을 더 빨리 읽는다”이다.

정말 그렇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가 논문 10편만 읽어도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이제는 AI가 300편을 2분 만에 정리해서 가져온다.


하루아침에 “리서치 8, 개발 2”였던 우리의 시간이
“리서치 2, 개발 8”로 바뀌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연구실 풍경을 아주 많이 바꾸기 시작했다.


1. 왜 연구개발자의 하루는 ‘준비’에서 ‘실험’으로 옮겨갈까?


리서치 시간이 줄어들면서 연구자의 하루가 바뀐다.

과거에는 아침 9시에 출근해 논문 서너 편을 프린트해서 형광펜으로 줄 긋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AI에게 “최근 6개월 내 ○○관련 기술 비교해줘”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된다.


한 연구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전엔 논문 찾다가 오전이 다 갔는데, 이제는 AI가 10분 안에 다 찾아줘서 오히려 막막해요.
뭔가 바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와요.”


그 말이 사실이다.
리서치가 빨라지면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대신 ‘해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R&D의 초점은 점점 더 실험·테스트·반복에 가까워진다.


예전에는 “자료 충분히 모았어?”가 출발점이었다면
지금은 “일단 만들어보고 비교해보자”가 기본 문법이 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거 가능성 있을까?” 라는 질문 대신

“일단 만들어보면 알겠지?”
로 바뀌는 것이다.


2. 왜 연구자는 ‘조사 전문가’에서 ‘해석 전문가’로 변할까?


AI는 빠르지만 영리한지는 두고 봐야 한다.
논문 정리는 잘해도 “그래서 이 기술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나?” 같은 질문에는 답변이 부족하다.


그래서 연구자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변한다.
자료를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자료가 주는 메시지를 읽는 사람이 되어 간다.


한 팀 미팅에서 실제로 나온 대화다.
“AI가 추천한 기술이 세 가지인데, 어느 걸 먼저 시도할까요?”
“AI가 결정해줄 수는 없어요. 결국 우리가 판단해야죠.”


AI의 등장은 판단의 필요성을 더 키운다.
판단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기술의 맥락, 제품의 방향, 시장의 상황, 실험의 가치 등을 읽어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는 점점 더 ‘의미 해석가’가 된다.
자료를 요약하는 기능은 AI가 가져가고,
자료의 의미를 통찰하는 기능은 연구자가 가져가는 구조이다.


3. 왜 조직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회의의 무게는 더 가벼워질까?


리서치 시간이 줄어들면 일의 스텝 자체가 달라진다.


예전 회의는 이런 식이었다.
“자료를 보니까 A기술이 우리랑 맞는 것 같고…”
“근데 다른 논문에서는 B가 더 효율적이라고…”
“그럼 자료 더 찾아보고 다음 주에 다시 이야기하죠.”


AI 이후의 회의는 완전히 다르다.
“AI가 A기술이랑 B기술, C기술을 비교했어요.
세 개 다 가능하니까 이번 주에 프로토타입 세 개 다 가봅시다.”


회의는 짧아지고, 실험은 많아진다.
이제 중요한 건 “무엇이 맞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먼저 시험할 것이냐”이다.
리서치의 무게가 빠지고, 실험의 가속이 시작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연구자들은 자연스럽게 말한다.
“이제 R&D는 느긋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실험하면서 생각하는 과정이 됐어요.”


4. 왜 기술전략과 사업화 전략은 ‘속도 게임’이 되는가?


AI 시대의 전략적 변화는 명확하다.
분석의 정교함보다 실행의 속도가 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어떤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분석은 AI가 도와주니까, 결국 누가 더 빨리 검증하고 더 빨리 실패하느냐의 싸움이더라고요.”


과거에는
‘철저한 분석 후 실행’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빠른 실행 후 보완’이 더 높은 가치를 만든다.


실험 중심의 기술전략이 등장하고,
제품 검증은 사전 분석이 아니라 시장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이전에는 대량의 정보를 확보한 기업이 유리했지만
앞으로는 더 빠르게 만들고, 더 빠르게 테스트하고, 더 빠르게 배우는 기업이 승자가 된다.

AI가 정보 경쟁을 평준화했기 때문에 속도 경쟁이 1순위 기준이 된다.


5. AI 시대의 R&D는 어떤 기회와 어떤 위험을 함께 가져올까?


이 변화는 분명히 많은 기회를 만든다.


개발 리드타임은 줄고, 혁신 속도는 빨라지고, 실험 중심의 판단이 기술 리스크를 줄여준다.
실제로 제품의 시장 적합성도 더 높아진다.


하지만 위험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한 젊은 연구원의 말이 떠오른다.
“실험이 너무 많아지니까 오히려 길을 잃을 때가 있어요.
AI가 정리해준 내용이 맞는 건지도 확신이 잘 안 들고요.”


이 말은 AI 시대 연구자들이 겪는 공통적인 불안이다.
AI를 과신해 방향을 잘못 잡을 가능성, 반복 실험으로 인한 비용 증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장기 연구의 약화이다.


빠른 실험이 강조되다 보면
10년짜리 연구, 5년짜리 프로젝트는 계속 뒤로 밀리기 쉽다.
R&D의 심도가 얕아지는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중요한 숙제가 된다.


6. 연구개발자와 리더는 앞으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까?

AI가 시간을 줄여준 만큼,
그 시간으로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한 연구소장이 남긴 문장이 있다.
“AI는 우리에게 시간을 줬지만, 방향을 주진 못합니다.”


그래서 R&D 리더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팀이 실험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험과 장기 연구의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연구개발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AI가 준 빠른 정보 위에서 더 깊은 판단, 더 넓은 맥락을 읽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7. 그럼 앞으로 R&D는 어떤 모습으로 이동할까?


AI는 리서치를 대체하지만, 리서치의 의미를 없애지 않는다.
단지 리서치가 ‘생각의 시작’이 아니라 ‘실험의 가속장치’로 변할 뿐이다.


앞으로 R&D는
‘정보를 모으는 조직’에서
‘미래를 검증하는 실험실’로 계속 이동하게 된다.


연구자는 더 많이 해석하고, 더 많이 실험하고, 더 빨리 배우는 사람이 된다.

AI는 우리에게 속도를 주고, 우리는 그 속도 위에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 변화에 가장 자연스럽게 적응한 R&D 조직이
AI 시대의 기술 경쟁에서 가장 앞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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