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한 2월 어느날에...
작년 2020년은 매우 특별한 해였다.
날씨가 잠시 따뜻해졌다가 다시 추워지는, 따뜻한 봄이 온건지 아직 겨울인지 햇갈리게 만드는 그런 날씨의 2월의 오늘 길을 걸으며 문득 작년 브런치에 썼던 글이 기억났다.
약 1년전인 2020년 2월 나는 COVID-19로 인해 갑작스럽게 새로운 경험들을 하며 느꼈던 점을 기록했었다.
(https://brunch.co.kr/@bizperspective/46)
그리고 벌써 1년이 지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글을 쓰던 당시만 해도 정말 많은 일들이 시작되기도 전인 극 초기였음에 웃음이 나온다. 그때에도 코로나는 심각해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전세계에 많은 피해를 줄 지는 몰랐고, 2021년에까지 이어질 정도로 장기화 될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1년 전 글을 읽으며 나는 내 삶 조차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음을 느낀다. 그땐 잠시 당시의 힘든 시기만 넘기면 여유도 생기고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변함없이 정신없고 기진맥진 하며 하루하루를 겨우 마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작년 2월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코로나의 장기화로 단합행사를 하지 못하며 회사 분위기에도 변화가 왔다.
원래 자주 회식을 갖던 영업팀 마저도 모임을 자제하게 되었고, 나는 아무래도 솔선수범이 되어야하다보니 사람이 적든 많든 약속 자체를 갖는 것을 자제했다. 그렇게 코로나블루가 조직 전체에 스며드는 와중에 여러 명이 동시에 퇴사를 하는 일도 생겼고, 이런 상황에서 자가격리 등도 발생하며 인수인계마저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남아있는 사람 그리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모아 으쌰으쌰하는 행사라도 한번 해야하는데, 그 마저 코로나로 인해 완전히 봉쇄되어있었다.
코로나블루를 회사 차원에서 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음 글에서 적은 것처럼(https://brunch.co.kr/@bizperspective/52) 감염 확산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코로나 블루를 해소할 만한 푸드트럭 이벤트 등을 기획, 준비도 하였고 분기별로 진행하던 타운홀도 비대면으로나마 지속하며 나름대로 커뮤니케이션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연말 즈음 우리회사를 찾아온 한 사건은 더욱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수도권의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던 시기 결국은 우리 회사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나는 아직도 그 소식을 처음 보고 받았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침에 중요한 회의 중이었는데 인사실에서 매우 급한 일이라며 "물류팀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워낙 미디어에서도 급격하게 증가하는 확진자 수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보고가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사자만 격리시키면 쉽게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고를 받고 1시간도 지나지않아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내 생각보다 많은 직원들이 이 사건에 대해 심리적으로 불안해하고 있었고, 실제 감염 리스크와는 별개로 조직에 이정도 불안감이 생기면 무언가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정확한 Impact Analysis가 있었기 보다 느낌이 그랬다)
그래서 바로 그날 모든 직원들을 조기 퇴근 시키고 "전원"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 후 나는 오후까지 보건소에서 나온 역학조사 팀과 CCTV 등을 확인하며 밀접접촉자들을 구분하고 저녁에는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는 다음날 나오기 때문에 전직원의 결과를 받지 않는한 출근시키는 것은 또 다른 심리적 동요를 낳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날도 일단은 재택으로 공지하고 daily operation을 위한 최소한의 팀과 인원은 음성결과가 나왔을 경우에만 출근하기로 했다.(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긍정과 적극성을 보여주는 직원들이 한 없이 사랑스러워보인다)
결과는 전원 음성. 그러나 밀접접촉자들은 2주간 격리가 되며 확진자가 나왔던 물류팀의 다수가 출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매일같이 소모품을 병원에 공급해야 하는 우리회사로써는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영업팀, 회계팀, 전산팀 할 것 없이 모두가 직접 차를 몰고 물건을 나르는 배송지원을 하는 연말이 되었다.
나 역시 정말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배송지원을 나갔다. 일부러 사람들이 빡세다고 하는 병원들로 자원해서 갔고, 이 참에 모든 것을 경험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남아서 더 중요한 일을 해야한다고 충고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는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강제적으로 타 부서 사람들을 물류지원으로 투입 시킬 수도 없는만큼 매일 자원자를 받아 진행해야 했는데, 2주라는 긴 시간을 버티려면 솔선수범도 필요했고 실제로 더 많은 head count도 필요했다.
아닌게 아니라 하루이틀이면 모르겠는데 2주를 지원하자 자기 일이 밀리고 지치는 사람들이 여럿 나왔다. 만약 내가 초반에만 반짝 지원을 했거나 안했으면 안 그래도 막을 수 없는 불평불만이 더 확산되지 않았을까?
시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당시 현장지원을 하며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보는 직원들이 있다.
아마도 매일같이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내가 실제 일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하며 얼마나 힘든지를 느꼈는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솔직한 내 답은 "내가 평소에 하는 일 보다 훨씬 나았다".
당연히 몸은 계속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피곤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 내가 하는 일(의사결정)이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올라오는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 하는 것들"에 대해 내 의견, 승인 또는 조언을 얻기위해 오는 것들이다. 어쩌면 각 사안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알고있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이런 의사결정 사항들이 절대로 "쉬울 리는 없다".
정말 그렇다.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오는 직원들의 고민을 들을 때 정말 하나도 쉽게 느껴지는 것이 없다. 2020년에는 쇼킹한 소식들이 너무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직원들이 갑자기 상담을 위해 찾아오면 또 무슨 일일지 겁부터 났다.
의사결정은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회사에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이 이렇게 의사결정하고 어려운 고민을 하는 일인데 이 고통은 경험을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진심이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넘겼는데 2021년에는 연초부터 훨씬 어려운 challenge들이 들이닥치고 있다.(기업 보안상 자세한 내용은 지금보다는 시간이 흐른 후 나중에 공유하기로 한다) 거기에 몇 년전부터 암으로 편찮으셨던 어머니가 몸도 조금 안 좋아지시면서 나의 멘탈은 더 상처를 입고 있다.
그러던 차 오늘은 전직원에게 작년의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Incentive가 나가는 날이었다.
금년 Incentive는 우리회사 창립이래 가장 많은 금액이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날이었다.
그만큼 작년 열심히 하여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고, 코로나블루 등을 고려하여 회사에서도 이 성과를 최대한 많이 직원들과 Share하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들은 소식에서는 통장에 찍힌 액수를 보고 많은 직원들이 놀라기도 했고 또 기뻐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좋아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다행스러우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나 역시 사람이라 그런지 최소 한 명이라도 고맙다라는 말이든 고생했다는 말이든 이런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뭔가 퇴근을 하며 쓸쓸한 감정이 들었다.
정말 지옥같은 1년을 보냈다. 거의 매일을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 속에서 일을 처리하며, 그 과정에서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하기도 했다. 노력만으로 될 일도 아니었다. 2020년의 성과와 위기대응은 운도 매우 중요했지만 내가 갖고 있던 역량들을 총동원하여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정말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그 결과가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날이었다.
내가 최근 듣는 분위기있는 노래의 제목처럼(https://www.youtube.com/watch?v=51RkNGIM5oE), 정말 "마음이 그래" 였다.(제목만 그렇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연인의 이별에 관한 것이고 나는 그런 스트레스를 갖고 있지는 않다)
그냥, 내가 한 고생을 회사에서 한 사람 정도는 알아주기를 기대했다. 작년 새벽, 주말할 것 없이 일 하며 내가 독립적으로 만들어낸 매출이 없었으면 회사는 마이너스 성장이고, 인센티브는 커녕 비용절감 때문에 감원을 걱정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결과에 대해서 주저리 주저리 하기보다 정말 2020년 끔찍하게 고생을 했던 내가 불쌍하고 가여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직원은 리더에게 “잘했어” 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듯 리더는 “고마워” 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많은 이들에게 서프라이즈였던 오늘 하루 정도는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으나 현실은 반차, 연차가 가장 많은 하루였다.
마음이 좀 그렇다.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해 온 일은 공표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회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람들은 '과정"을 모르는 것 뿐이다.
그나마 권진아와 개코의 이 노래"마음이 그래" 가 나에게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