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러 유럽에 간건 아닌데..8화

여행의 시간

by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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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맞춰 둔 휴대폰 알람소리에 깼다가 뒤늦게 내 방이 아님을 알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새벽이 느껴졌다. 창문 틈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내다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어젯밤 아무렇게나 던져 둔 카메라를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는 붉은 태양을 보고 있으면 잠든 세상이 눈을 뜨는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또 하루의 시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하루, 한 순간을 소중히 살아야 한다고 늘 말하지만 우리는 무한한 시간을 사는 것처럼 일상의 시간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여행의 시간만큼은 1초도 그냥 보내지 않으려 애쓴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라도 여행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 순간이 아쉬워 그녀의 테라스 창을 두드릴까하다가 그만두었다.




서늘한 새벽 골목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구교황청 앞 광장은 바람이 주인인 것 같았다. 방향이 제각각인 바람들이 스치고, 부딪치고, 맴돈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나도 한줄기 바람인양 휘청거리며 흔들렸다. 스치고, 부딪치고, 돌아보고...


내 마음도 목적 없는 바람처럼 광장을 돌아다닌 일이 많았다.


마음이 그리로 끌려서 그곳에 갔으며, 그 엽서를 샀고, 편지를 썼다. 마음이 시켜서 편지를 찢고, 찢어진 조각을 다시 모아 붙였다. 주소도 우표도 없이 이국의 우체통에 엽서를 넣었다. 널 사랑한 것도 마음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내 책임이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


나를 옆으로 살짝 밀치고 지나가는 바람. 덕분에 다시 구교황청 입구로 걸어간다.

이제, 다시는, 휘청거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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