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클로즈가드로 잡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클로즈가드란?
클로즈 가드는 상대의 손목과 옷깃을 잡아 상대를 당긴 후, 다리를 상대의 허리에 깊게 감싸고 발목을 교차시켜 상대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본자세입니다.
새벽 기상 모임 하프챌린지 단톡방에 기상 인증을 남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준비를 마치고, 건조기에서 도복을 꺼내 가지런히 정리한다. 흔히들 성공한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저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남들처럼 해내고 싶어 애쓰며, 내 방식대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두려움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나도 내 아픔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에 갇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 삶을 내가 이끌어 가고 싶었다, 비록 느리더라도.
비기너 첫 시합. 여자 마스터 -64kg에 출전 신청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단독 우승을 할지, 환불을 받을지, 아니면 체급을 올려 나갈지 고민하던 끝에, 나는 체급을 올려 출전하는 경험을 선택했다. 내 경기는 가장 마지막 순서였고, 관중들은 시합 매트에 둘러앉았다. 내성적인 나는 수많은 시선이 나를 향하자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손에 땀이 많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내가 먼저 상대의 클로즈가드를 잡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클로즈가드를 잡히고 말았다. 우리 팀 세컨은 “이모, 무조건 풀어야 해요. 무릎 넣어요!”라고 외치며 열심히 코칭해 주었지만, 연습이 부족했던 탓에 무릎을 제대로 넣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뒤집혔고, 상대는 마운트 포지션을 잡았다.
결국, 첫 시합에서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되었다.
그 이후, 클로즈가드만큼은 반드시 정복하겠다고 결심했다. 상대가 내 클로즈가드를 풀기 위해 양쪽 허벅지를 팔꿈치로 눌러도 절대 풀리지 않게 버텼고, 내가 클로즈가드에 잡히면 다양한 방법으로 빠져나가려 애썼다. 만약 풀리지 않으면,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며 나에게 맞는 서브미션을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시도했다. 집에 돌아오면, 허벅지는 늘 멍투성이였다.
세 번째 시합에서, 내가 클로즈가드를 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상대는 재빠르게 무릎을 세워 방어했다. 상대는 가볍게 내 다리 한쪽을 눕힌 후, 사이드 포지션으로 넘어갔다.
그날 시합에서의 패배는 단순히 기술적인 미숙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한 내 판단력과 경험 부족이 더 큰 원인이었다.
그때 비로소 승리와 패배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것이며, 순간의 판단력과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묶였다고 해서 반드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미리 대비하면 묶이는 상황을 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도전하면서 반복된 훈련 끝에, 바로 그다음 대회에서 상대와 클로즈가드를 주고받으며 치열한 경기를 이어갔고, 마침내 처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내 인생의 가장 큰 올가미는 이혼이었다.
주짓수에서 클로즈가드에 묶였을 때처럼, 나는 이혼이라는 현실에 묶여버린 느낌이었다. 주변에서는 이혼이 요즘 흔한 일이라며 위로했지만, 그 말이 큰 힘이 되지 않았다. 그 과정을 겪는 동안, 난 너무나도 힘들었다. “이혼만 아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다.
재혼을 생각하던 사람 역시 가족의 반대 속에서 나를 감싸야했고, '아이를 둔 이혼녀'라는 타이틀 때문에 가족을 설득하느라 매번 죄송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무거웠고, 가슴이 아팠다.
이혼은 내 인생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였기 때문에, 지금 우리를 하나의 공통점으로 끈끈하게 연결하고 있는 주짓수에 관한 글을 쓰면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단어를 피하려다 보니, 글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잃고 내 감정과도 어긋나 버렸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내 인생의 큰 영향을 미친 이혼을 무시하고서는 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 나 주짓수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데, 이혼한 걸 안 쓰니까 앞뒤가 없어. 만약에 주변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준이를 색안경 쓰고 볼까 봐 무서워. 포기할까?”
“포기하지 마! 네가 빠져나오지 못했네. 이번 기회에 다 오픈해. 네가 당당하면 사람들은 뒤에서 말하다가 지쳐. 네가 빠져나오지 않으면 네가 지치겠지.”
엄마의 말이 맞았다.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에 숨기고 싶었고, 들키지 않으려 애쓰면서 나를 묶고 있었다. 그 사이, 내 마음속의 갈등은 더 깊어만 갔다.
“친구가 아빠랑 왜 성이 다르냐고 물어봤어.”
“그래서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못 했어. 뭐라고 해야 돼?”
“요즘에는 엄마 성이랑 똑같이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엄마 성 따랐다고 하면 돼.”
다행히 아들과 나는 성이 같아서 둘러댈 수 있었지만, 아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쳤다. 아이가 한 학년 올라갈수록 심장이 철렁하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이러한 순간들은 내 안의 두려움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들이 자라나는 모습에서 나는 내가 놓아버린 것들, 그리고 여전히 나를 가두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인생의 클로즈가드를 잡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남들이 나를 묶은 것도, 상황이 나를 가둔 것도 아니었다. 이혼이라는 과거를 클로즈가드로 단단히 묶고,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편견을 핑계 삼아 스스로에게 “아직 준비가 안 됐다”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클로즈가드에 잡힌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연습하고 노력하면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주짓수를 배우면서 여러 번 넘어졌고, 질 때마다 내가 왜 졌는지,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를 배웠다. 내 삶도 마찬가지였다.
이혼이 나를 넘어진 채로 멈춰 있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가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글을 쓸 때도, 아들에게 우리의 상황들을 설명할 때도 과거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아픔도 경험의 일부로 여기기로 했다. 클로즈가드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배웠듯이, 내 인생에서 다시 서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묶어두지 않는다.
주짓수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묶였다면 풀어내고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인생의 클로즈가드를 풀어냈듯이, 이제 나를 묶어두었던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