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팩을 싸들고 이사하다.
37년 만에 단독주택 생활을 청산하고 아파트로 이사했다. 마당도 있고 내부는 복층이며 방도 여럿 있는 집에 살았으니 좋은 점도 많았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단독주택은 좋은 위치에 있는 아름다운 전원주택이어서, 전셋집이긴 했으나 내 인생 통틀어 가장 훌륭한 집이었다 할 만하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두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진심이어서 남들보다 두 배 이상의 가사노동을 해도 나는 그 생활을 가치 있다 여겼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했다. 30세가 되기 전에 시작한 단독주택 생활이 65 세로 막을 내렸으니, 나의 젊음은 단독주택 생활과 함께였다 할 수 있다. 두 아이가 마당 있는 집에서 유, 초, 중, 고, 대를 모두 졸업하고 결혼까지 하면서 나는 인생의 큰일을 단독주택에서 거의 완수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아파트로 이사를 결심하고 준비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가장 어려운 일은 전세금을 빼는 일이었다. 아름다운 전원주택이기는 하나 너무 낡고 너무 넓어서 평균적인 도시인들이 선호하는 집이 아니었음을 알고 절망도 여러 차례 했었다.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 이사하게 된 것은 천지신명의 도우심으로 가능했다 생각한다.
다음은 본격적으로 이사를 준비할 차례. 살림살이라고 해야 남들이 보기에는 버리기 아깝지 않은 물건들이 대부분이지만, 나의 일상을 받쳐주던 것들이고 또 추억이 담겨 있는 이 살림살이들을 버린다 결정하는 일이 그다음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소용이 될 만한 것들은 중고 마켓에서 무료 나눔을 하거나 작은 가격으로라도 판매하면서 버려지는 것들을 최소화했다. 물건 하나하나 사진을 찍고 이 물건은 이러이러하여 이러한 분들께 소용이 있을 것이라는 사연을 올리면 응답해 오는 분들이 있었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지만 열심히 하였다. 얼마나 많이 정리하였는지를 알려주는 객관적인 증거는 이사비용. 9 년 전, 그 집에 이사 들어올 때와 비교하여 이사 비용이 절반보다 적었다. 그동안의 물가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이 정도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많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다음의 일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혹 있다 해도 10%, 아니 5% 미만일 것이다.
지구 환경의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귀찮거나 힘들어도, 남들 눈에 구질구질해 보여도 꼭 하는 편이다. 나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 운동 후에 종이팩에 든 우유를 하나씩 먹는다. 그런데 이 종이팩은 재활용이 된다고는 하는데 수거하는 곳이 흔하지 않아 수소문하던 중 주민센터에 가져가면 수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량제봉투와 두루마리 휴지까지 보상으로 준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밖에서 먹는 것이지만 빈 종이팩을 가져와서 헹구고 펼쳐서 말리고 적당량을 모아서 주민센터로 가져다준다. 이사 준비로 몸과 마음이 심란할 때 이 짓을 꼭 해야 하나 갈등한 적도 있었지만 계속했다. 심지어는 다 처리하지 못한 종이팩은 이삿짐에 싣고 왔다. 보상으로 받는 종량제봉투 한 장과 두루마리 휴지 1개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다. 길거리 걸인에게 주던 자선의 금액을 5,000원으로 상향했다. 5,000원권을 넣어 다니면서 걸인을 만나면 그분의 손에 꼭 쥐어준다. 부끄러운 액수이고 부끄러운 횟수이지만 나의 지구사랑 정신과 노동으로 얻어진 결과이기에 신성함이 배가되기를 바라면서.
사회적인 큰 비극으로 전 국민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 하루빨리 아픔은 아물고 문제 상황은 해결되기를 바란다.
‘그래도 제대로 해야지.’ 이 말은 내 삶을 아주 쫀쫀하게 이어나가게 하는 말이다. 이사하면서 종이팩을 싸들고 온 것처럼 눈앞의 현실이 바쁘고 절망적으로 보이더라도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 써 보려 한다, 부끄럽지만. 2025.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