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오지라퍼
서울 지하철 4호선 이수역 플랫폼에서 있었던 일이다.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나에게 한 초로의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계속 무언가를 물었으나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한 눈치였다. 이때 자칭 오지라퍼인 내가 그들에게 접근하여 ‘무엇을 좀 도와 드릴까요?’ 했더니, 반가워하면서 장충체육관을 가려고 하는데 ‘동대문역에 내려야 하느냐, 아니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려야 하느냐’ 하고 물어보신다. 바로 열차가 들어와서 일단 함께 열차를 타고, 핸드폰에 있는 지도앱을 열어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리세요’라는 답변과 함께 앱 화면을 보여 드렸더니 고마워하시고, 또 안심하시는 표정이었다.
‘이런 앱 하나 있으면 이럴 때 편리한데 한번 사용해 보세요, 저도 지하철 공짜로 타고 다니는 나이입니다.’라고 했더니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부인의 손을 만져보라고 하신다. 손에 온기가 거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모든 말씀은 남편이 하시고, 아내는 그 옆에서 웃기만 하신 것을 알았다. 아내는 몸의 어느 부분이 많이 불편하여 50세 이후 언제나 붙어 다니면서 돌보아 주신다고 하셨다. 무슨 일로 장충체육관을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쪽지를 꺼내 보여주는데, 그 근처에 있는 OO족발집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쓰여 있었다. 족발집은 사당역, 이수역에도 많잖아요? 했더니, 그냥 나들이 삼아 가신다고.
열차가 한강을 건너가는데, 아내의 표정이 환해지고, 너무 예쁘다고 하신다. 남편도 맞장구를 치시고. 나는 이런저런 활동으로 한 주에도 여러 번 한강을 넘어 다니는데, 그냥 ‘한강이구나.’ 정도의 느낌, 또는 핸드폰에 집중하느라 한강을 넘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데, 이분들에게는 여러 날 전부터 계획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차창 밖의 한강을 볼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조금은 미안하고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오지라퍼인 내가 그때 개입하지 않았으면 이분들은 몇 차례 더 낯선 이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했을 것이다. 오지라퍼임이 갑자기 자랑스러워졌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길에서 무언가 도움을 구하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움을 주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외국인이 길 찾기에 애를 먹고 있는 현장에는 바로 출동하여 ‘May I help you?’라고 말을 걸어서 그들과 소통하고 같이 해결책을 찾아본다. 중학교 2학년 영어 실력밖에 안 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아쉬운 대로 도움을 주는 이나 받는 이에게 얼마나 요긴한지 모른다.
몇 번 안 되는 해외여행이지만, 갈 때마다 나는 현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신의 갈 길과 반대 방향이어도 긴 시간을 할애하여 기꺼이 동행 안내해 주어 무사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경험이, 용감하게 오늘과 같은 오지랖 넓은 행동을 하게 한 것이다. 이런 오지랖 넓은 행동, 계속해도 되겠지요?
2025. 10. 14.
이미지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