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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Feb 26. 2024

[2-10] 밤새 내린 비로 벚꽃잎이 내려앉았다



밤새 내린 비로 벚꽃잎도 한풀 내려앉았고, 하늘의 색도 차분해졌다.




떨어지는 꽃잎보다 내리는 비가 반가운 것은 며칠 뒤숭숭했던 뉴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따뜻한 봄이 만들어 낸 축제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종종 무거운 소식을 접한다. 매년 몇 주씩 빨라지는 개화 시기에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벌레들의 먹이가 사라지는 것도, 몇 년 사이에 벚꽃이 2월에 만개가 될 것이라는 슬픈 예측도, 안타까운 산불로 밤새 한강에서 물을 퍼다 나르던 헬기를 보는 것도 봄과 함께 온 이야기 중 어느 하나 가벼운 소식이 없었다.





슬픈 이야기를 전하면서 무심하게도 하늘에는 황홀한 무지개가 걸려있다. 이 자리를 지키고 난 뒤부터는 비가 내리고 난 뒤 의식적으로 꼭 창문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뻥 뚫린 들판은 무지개가 걸리기 딱 좋은 장소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의 무지개는 마치 들판에서 솟아 오른 듯 시작과 끝이 모두 보이는, 무지개가 두손에 잡힐 것처럼 선명한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두눈으로 맞이할 때마다 도리어 자연을 마주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우울하고 불안해 잠을 못 잘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두발로 선 땅과 올려다 보는 하늘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 한켠 답답해지는 구석이 생긴다. 답답하다고 말이라도 꺼내면 그 마음이 조금은 나아질까 싶은 생각도 들어 글로, 일기로 두서없이 풀었던 적도 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얻은 가장 큰 고충은 효율성과 도덕성의 충돌이었다. 이토록 쉽게 배달음식을 사먹는 곳에 살면서 정작 내손으로 수백 개, 수만 개의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내게 주어진 가장 힘든 숙제다.



효율성 앞에 수많은 일회용기의 선택지가 놓인다. 포장과 배달로 매출을 올리는 시도를 해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용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잘 녹는 메뉴가 주력인 나는 거리에 따라 드라이 아이스를 올려야 했고, 종이 포장 용기를 사용할까도 싶었지만 녹아서 젖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코팅용기를 선택해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테이블이 많지 않아 대기가 생길 때에도, 배달을 원하는 요청이 들어올 때에도 쉽사리 하겠다고 결정하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나 역시 손쉽게 배달을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였고, 우리의 결정이 소비자에게 불편함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플라스틱 용기가 내손에서 생기는 일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수상한 다짐이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용기를 가져 오세요. 듬뿍 담아 기꺼운 마음으로 포장해 드릴게요."



지난 한 주는 재사용 용기를 가져와 포장 요청을 하신 분들이 많았다. 근거리의 분들은 접시를 들고 오기도, 뚜껑이 달린 다회용기를 가져오시기도 한다. 자리가 모자란 것을 전화로 확인하신 손님 분들이 기꺼이 그릇을 들고 방문해 보냉백 안에 담아가는 분들을 보면서 조금의 뿌듯함을 느낀다. 어쩌면 진짜 지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하게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한 명보다 지구를 위한 어설픈 보호대 여러 명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생각보다 지구를 위한 마음이 부족한 개인에 불과하지만, 의식적인 작은 손길이 모여 좋은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옳은 답일지는 모르겠다. 나의 결정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것은 손님들의 몫이기에 언제까지 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 지 결정하는 것은 내게 아직 먼 일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내려 앉는 벚꽃잎을 보면서, 비가 개인 후의 무지개를 보면서 다짐한다. 이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려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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