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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Mar 05. 2024

[2-14] 담백한 인간다움이 귀한 시대에 살면서


딸 - 랑.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손님이었다.



카페의 맞은편 길목에는 벚꽃이 만개해 삼삼오오 가족들의 손을 잡고 벚꽃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방금 들어온 손님 역시 벚꽃길을 따라 산책을 했고, 동생은 벚꽃길을 다 걸었더니 힘이 들어 아빠와 함께 길목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함께 먹을 망고빙수와 커피를 포장해가려고 들어왔다고 전했다. 



"어쩌죠. 저희가 일회용기를 사용을 줄이려고 포장은 지금 따로 안되는데.."



근처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다회용기나 그릇을 들고 오시라고 종종 안내하기는 했지만, 급하게 산책로를 되돌아 온 분들에게 용기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바쁜 시간이긴 했지만, 동생을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지는 남자아이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어떻게든 무언가 손에 쥐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제가 가지고 있는 밀폐용기가 하나 있는데, 모양이 예쁘지는 않지만 여기에라도 담아 드릴까요? 드시고 나중에  시간 나실 때 카페 1층에만 놓고 가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네모낳고 투박한 밀폐용기에 빙수를 꾹꾹 눌러 담아 아이 손에 들려 보냈다. 무언가를 해낸듯하게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았다.



며칠 뒤, 쉬는 날 카페를 청소하려 왔더니 1층에 밀폐용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안에는 커다랗고 빨간 토마토 세 알이 담겨 있었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그리고 나는 그 빨간 토마토가 왜인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담백한 이웃이 이런 느낌일까. 몇 줄 메시지가 없어도 깨끗하게 씻겨져 제 시간에 도착한 밀폐용기와 그 속의 토마토는 내가 지금 느끼는 동네의 따뜻함에 고개를 끄덕이기에 충분했다. 손님 분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가족이 이곳에 다시 방문했는지조차 모르겠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곤 이렇게 소리 없이, 조용한 따뜻함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늘 마감 시간 즈음에 어머니와 함께 자주 오시던 분이 있다. 얼굴을 기억하는 손님인데, 그 날은 친구와 함께 시간에 맞춰 바삐 달려오신 듯 보였다. 자리를 잡고 망고빙수를 주문했다. 메뉴를 내어 드린 뒤 마감을 준비하려 하는데, 손님이 부리나케 오시더니 혹시 빙수 하나를 더 주문해서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물었다.



"집이 근처셨죠? 바로 드실거면 그릇 채로 드릴까요? 금방 녹지는 않을 것 같은데"



"걸어서 5분도 안 걸려요!"



보기도 좋은 게 먹기도 좋은 법이니, 빙수는 원래 나가던 도자기 그릇에 담겨진 채로 어머니께 배달이 되었다.



"급하게 드시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릇은 시간 나실 때 카페 1층에만 놓아 주세요."



30분도 지나지 않아 손님이 다시 돌아왔다. 깨끗해진 그릇과 함께.



가자마자 집의 그릇에 옮겨담고 돌아왔다고 했다. 어머니가 여기를 좋아해서 늘 함께 왔는데 요즘 컨디션이 좋지 못해 같이 나오질 못했다고, 여기 간다고 얘기하니 드시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 포장해 드리고 싶었던건데 감사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포장이 어려운 불편함을 제공하는 카페에서 밀폐용기와 그릇에 내어 드린 일은 그리 높이 평가될 만큼 친절했거나,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포장이 되지 않아 손님들이 느낀 불편함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순간 마음이 내키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다. 무언가를 바라거나 그로 인해 대단하게 매출이 상승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이런 장면이 켜켜이 모여 내가 생각하는 동네에 필요한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힙하거나 핫해서 왜인지 모르게 들어올 때 긴장되는 장벽이 있는 카페가 아니라 은근하게 편하고, 적당히 부담없이 오갈 수 있는 집이 아닌 또 다른 장소로 말이다. 



인간성의 회복이나 인간다움에 대한 의미가 다시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평소에 인간미를 뜻대로 발휘하며 살아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순간의 진심이 닿을 수 있는 이웃이, 조금은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장소가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은근하고 부담없는, 동네의 길모퉁이 카페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이 뿌리깊은 생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태도와 하고 싶은 힘을 지니는 일, 그런 태도가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게 인간다운 사회로 가는 길이 아닐까.



살고 있는 동네 주변에 편하게 자주 찾아갈 장소가 많아지기를, 그리고 나의 공간도 그런 장소 중 하나가 되어지기를. 이곳에서 오래, 변하지 않는 인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되고 싶다고 느낀다.



너무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은 내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일이라 부담스럽다. 하지만 누가 보지 않아도 나의 행동이 세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늘 애를 쓰고 싶어진다. 눈 앞에서만 좋아보이려 애쓰는 것들에 지치지 않고 은근하고 꾸준하게 담백함을 건네어보자는 다짐을 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미지근하지도 않게 딱 세 모금 정도 마시고 난 뒤의 적당한 따뜻함을 가진 바닐라 라떼의 온도가 때마침 이런 생각을 하기에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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