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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Nov 21. 2022

근황 보고


지난 한 달간의 신변 업데이트. 


10월24일 새벽, 엄마가 화장실에서 쓰러지셔서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갔고 그대로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다가 이틀 후부터 일반 병실로 옮겨 계속 치료받다 11월18일에 퇴원하셨다. 내가 보호자로 지금까지보다 더 가깝게 엄마와 한 달을 지냈다. 


쓰러지신 이유는 간농양에 의한 패혈증 -  간에 큰(지름 8cm) 고름이 차서 염증이 혈류를 타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어쩐지 엄마가 언젠가부터 살도 좀 빠지시고 피로함을 자주 느끼시더니 특히 10월18일에 친구 댁에 다녀오신 뒤부터는 등과 어깨에 담이 크게 들린 것 같다며 정형외과에도 가보시고 그랬다. 근데 정형외과약을 먹어도 담은 낫질 않고 배만 너무 아파서 그럼 몸살감기인가 싶어 애꿎은 코로나 검사만 몇 번을 해보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도저히 기운을 차리시질 못하니 주말 지나고 월요일(10월24일) 아침에 무조건 동네 내과에 가서 영양제 주사라도 맞자고 다짐을 했었는데 새벽 2시에 뭔가 엄마방에서 쿵 소리가 나길래 가봤더니 엄마가 침대에 안 계시는 거다! 그래서 화장실로 쫓아갔더니 바닥에 쓰러져 계셨다.


의식을 완전 잃으신 건 아니지만 비몽사몽 몸을 가누지 못하시는데 내가 엄마를 부축해 일으킬만한 힘이 안되더라... 내 체격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만큼 힘쓴 걸로 나도 일주일 동안 허리, 다리, 엉덩이 전신에 근육통이 왔음.) 어찌어찌 화장실 밖까지는 나오시게 하고 119에 신고를 하고 병원 갈 채비를 하고(아빠 입원하실 때 해봤다고 뭘 챙겨야 될지 대충 알겠더라는...) 구급차를 타고 강남세브란스 응급실로 갔다. 혈압이 60/40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도 음압격리실에서 코로나 검사 음성 뜰 때까지 또 기다리고... 이놈의 코로나. 요즘 위급한 상황인데 집에서 코로나 검사하면서 병을 악화시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건너건너 아는 친구의 시아버님은 그래서 처치 시기를 놓쳐서 뒤늦게 응급실에 가셨는데 돌아가셨다고 한다 ㅠㅠ 


아무튼 26일 동안 입원하면서 엄마는 몸에 구멍을 세 개나 뚫어서 간에서는 고름을, 양쪽 폐의 막 쪽에서는 물이 찬 걸 빼내고, 승압제(떨어진 혈압 올리는 약)와 항생제를 진짜 말 그대로 들이부으며 치료를 받으셨다. 항생제도 그렇지만 승압제라는 게 굉장히 독한 약이라서 팔의 혈관들은 너무 가늘어 버티지 못한다고 목 쪽의 두꺼운 정맥에다 주사를 놓아야 한다고 목에도 구멍을 뚫었다. 주머니 세 개 + 주사약들 잔뜩에 혈압이며 산소 수치 측정하는 기계까지 주렁주렁... 


우리 엄마 엄살쟁이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큰일 앞에서는 되게 담대하다. 정신없어서 어디다 구멍을 뚫는지 뭐 하는지도 몰랐다고 하시지만 분명 아팠을 텐데 아야 소리 한번 안 하시더라.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그거 아프셨을 텐데 괜찮으셨어요?" 하니까 "네... 너무 아팠어요..."라고 대답하면서도 내 앞에서는 아프다는 소리가 한 번도 없었다. 입원한 4주 내내 그랬다. 내 몸이 힘들면 주변에 짜증도 내고 말이 곱게 안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엄마는 아픈 중에도 어쩌면 그렇게 말투가 상냥한지. 오죽했으면 내가 "그러고 보니 엄마가 육성으로 소리 지르는 거 들어본 일이 없네? 평생 화나서 언성 높아진 적이 한 번도 없어?" 하고 물어봤다. 우리 엄마 같은 환자면 간병 4주 아니라 40주여도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엔 화장실 한 번 갈래도 몸에 달린 줄이 하도 많아서 걸려 넘어질까 걱정이었는데 2주 정도 지나니 조금씩 상태가 나아지셔서 줄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근데 사람 몸이 한번 밸런스가 깨지면 다시 제자리 찾을 때까지 여러 가지 수치들이 제멋대로 흔들리더라. 염증 수치는 가라앉는데 또 이번엔 칼륨 수치가 높다고 해서 한동안 걱정을 하고(칼륨 수치가 높으면 심정지가 올 수 있단다), 처음에는 저혈압이라 승압제를 맞았는데 또 언제부터는 고혈압이라고 해서 다시 약을 드시고... 주사를 하도 많이 맞으니 혈관들이 터지거나 숨어버려서 새로 혈관 찾느라 매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도 3주 지나니 폐의 주머니들 제거하고 (튜브 끝에 갈고리 같은 게 달려있어서 뽑을 때도 무지 아프다고 한다.  그것도 심지어 무마취로 꼽았다가 뺄 때도 그냥 생짜로 뽑는다 ㅠㅠ ) 3주 반 지나니 간의 주머니도 제거. 마지막으로 위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간농양의 원인이 간혹 위나 대장의 암세포 때문일 수가 있다고 한다) 다행히 아무 이상 없어서 퇴원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부터는 집에서 먹는 항생제로 대체하여 치료를 한다. 남은 고름을 바싹 말려버리는 과정이란다. 한 보따리 받아온 약을 열심히 먹고 2주 후에 다시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간다. 퇴원 후에도 3개월 정도 통원치료를 해야 간농양이라는 게 치료가 된다고 봐야 한다 하더라. 


더 일찍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지 못한 미안함, 그래도 바로 응급실에서 입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고, 엄마의 회복력을 보니 아직 젊으신 것 같아서 기쁘다. 그리고 이번에 엄마 친구분들, 이웃들, 내 친구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기도해 주었다. 내가 밥 굶을까 봐 샌드위치랑 유부초밥을 몇 번이나 해다 주신 E 아줌마 (진짜 아줌마 음식 아녔으면 굶었을거다. 배고픈 생각도 안 들더라), 내가 학교 나가는 날 교대로 간병하러 와주신 C 아줌마 - 엄마가 세상에 그런 극진한 간호는 받아본 적이 없다 할 정도로 정성스럽게 돌보아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수시로 상황을 체크하며 엄마에게도 응원 문자를 보내주신 엄마 친구분들께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조건 없이 따뜻하고 고마운 분들이 많은지 정말로 감동을 많이 받았다. 앞으로 내가 살면서 갚아나가야 할 감사함이다. 엄마와 나를 걱정해 주신 분들뿐 아니라 내가 도울 수 있고 마음을 나누어야 할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아낌없이 표현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 사랑일 테니까.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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