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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 내가 나를 거부할 수 있도록

내가 지금 비록 이런 꼴이지만, 나 잠도 안 자고 개열심히잖아

by 대장장이 휴

"어제 세시간 .. 잤나?"


나는 게으르고, 정체되어 있는 지금 내 모습을 수용하기 힘든가보다. 실패하고, 아니 실패는커녕 실패가 겁이 나서 시도조차 못한 채 어물쩡거리기만 하는 내 못난 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나보다.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들한테도, 가족들한테도 할 게 많아서 어제도 잠을 얼마 못잤다면서 불평을 한다. 거의 입에 달고 산다. 할 게 많아서 잠을 얼마 못잤다는 이야기를. 물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그말을 꺼내진 않지만, 나의 퀭한 눈과 헝클어진 머리, 해질녘 건물 그림자처럼 길게 내려와있는 내 다크서클은 사람들이 먼저 묻게 만든다. "너 오늘 왜이리 피곤해보이냐. 어제도 밤샜냐."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듯이 말한다. "하, 나 어제 00책 좀 읽고, 운동 잠깐 하다보니 새벽 4시길래 후다닥 잤는데, 세시간 밖에 잤어."


핑계에 대한 갈망


나는 오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던 도중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걸 불교에서 '돈오'라고 하던가. 아무튼.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술 대신 잠에 취한 취객이 된 채, 잠에 휩싸여 비틀거리며 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띵, 하고 내가 허구한 날 얼마 못잤다고 말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내가 지금 내 성에 차지 않는 '허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가 필요했다.


나는 누가 봐도 무난한 삶을 살아왔다. 무난한 환경에서 무난하게 자라서 무난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무난한 직장에 들어와 무난하게 살고 있다.(무난이라 쓰고 모범이라 읽는 것 같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무난한 인생'을 내가 별로 탐탁치 않아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살아오면서 겪은 일련의 경험들과 시간들이 나한테 알려주었다. 나는 무난한 삶을 살기엔 너무 삐딱한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태생적 삐딱함을 저버리고 내 주위의 선한 사람들처럼 '무난하게' 살다가는 환갑을 맞이하기 전에 분통터져서 화병으로 요절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뭐,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될 것이 없다. 15년 전, 20년 전과 다르게 나는 이미 나의 태생적인 삐딱함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였다. 그러면 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내 삶을 채워나가면 된다. 근데, 그게 내 마음대로 잘 안 된다. 여기서 나의 못난 짓거리가 시작된다. 아, 이게 생각처럼 잘 안 되는거다. 나의 겁 많고 소심한 마음이, 남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비루함과 실패할까 두려운 불안과 함께 뒤섞여 내 못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근데 내 못난 마음이 드러나고 자시고, 생겨먹은 삐딱한 모습으로 내 인생도 삐딱선을 태워보자니, 너무 겁이 난다. 내 마음의 소리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눈빛과 사회의 기대(라고 쓰고 압박이라 읽는다.)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내 삐딱함은, 무난하길 기대하는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보다도 연약하다.


근데 상황이 이렇다고 솔직하게 고백은 못하겠는거다. ... 쪽팔리잖아. 대신에 나는 핑계거리를 찾았다. 그 핑계가 바로, "아놔, 나 어제도 몇시간 못잤어."다. 이 말은, 내가 지금의 내 불만족스러운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니, 지금의 무난하기만 한 내 모습을 보고 날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비겁한 외침이다. 사실은, 누가 봐도 지금의 내가 진짜 내 모습인데 말이다. "아니야! 내가 지금은 비록 이렇게 빛깔도 없고 비루해도, 이건 내 진짜 모습이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은거다 나는. 난 (한없이 무난하기만 한)지금보다 더 특별하고 멋진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될 거라는 오만방자함이 잔뜩 묻어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겁나 욕먹을 게 뻔하다. 게다가 그러기엔 내가 실은 뭐 하나 특출날 것도 없고 비루한 것 같은 슬픈 예감이 강하게 든다. 그러니 나는 핑계를 찾은거다. 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 멋지게 변모해나갈거라고. 그 이야길 하면서, 지금의 이 모습이 정체된 채로 고여있는 것에 대해 구차한 변명을 하는거다.


나한테 있어서 이 변명은, 일종의 면죄부다. 어제 몇시간 못잤다는 핑계는 확실히 나에게 면죄부가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면죄부는 '책임이나 죄를 없애주는 조치나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나는 지금의 비루한 내 모습을(실은 비루하다고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일종의 '죄'나 '책임져야 하는'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수단으로 '내가 매일 열심히 노력하느라 몇시간 못자는 것'을 꼽고 있다.

비록 내가 지금은 이 꼴이지만, 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비루하지 않은 나의 진짜 모습을 찾을꺼야.
나 매일 잠도 거의 안 자가면서, 이렇게 노력하잖아. 그러니, 내가 지금 이렇다고 넌 날 비웃으면 안 돼. 알았지?


뭐 이런 오만방자하면서도, 남들이 날 비웃을까봐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마음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변명으로 승화(?!)시켜본거다. 정리하자면.


맨날 말로만


여기서 재밌는 건, 막상 내가 또 그렇게 정말 최선을 다해서 매일 내 인생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지도 않은 것 같다는 데 있다. 아니, 그렇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 이게 황당한 일인거다. 내가 잠을 몇시간 안 자는 건 사실이다. 그건 내 면죄부의 내용과 일치한다. 근데 막상 내가 그러면 자는 시간을 그렇게나 줄여야 할만큼 깨어있는 시간을 밀도있게 채우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잠을 줄여가며 기껏 한다는 일은, 그냥 좀 책도 뒤적거리다가 글도 조금씩 끄적이다가 노래도 좀 듣고 간식도 좀 먹다가 웹툰도 좀 보고 이런 식이다.


종합해보면, 그냥 나는 남들이 날 지금의 모습만으로 판단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강한 건지도 모른다. 즉,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만 온 정신이 쏠려있다는거다. 사실 멋진 사람이고 싶고 특별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 또한 결국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문제다. 인간의 존경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결국 다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니던가. '자기만족'이라는 포장은, 많은 경우 기만이고 위선일 때가 많다. 거 참, 곤란한 일이다. 나는 남들의 기대와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실제로는 완전, 절어있는거지. 남들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나(=지금의 나)와, 너(=바라는 나) 사이의 거리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럴싸한 면죄부까지 만들고 싶을 정도라면, 한 번 생각을 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할만큼 지금의 내 모습이 싫은걸까. 난 나에게 그렇게나 못나고 비루하고 어떻게든 외면해버리고 싶은 존재인걸까. 언제부터 내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던걸까. 내가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내 현실이 그렇게도 차이가 많이 나는걸까. 내가 그렇게나,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못난걸까. 내가 나에 대해 가지는 그 엄격하고 이상주의적이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기준은, 어디서 흘러왔으며 왜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에 대한 이 모든 기대들과 도전과 채찍질을 일시에 싹 다 내려놓아버리면 되는걸까. 그러면 정말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걸까. 내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과 생각들이 너무나 많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불만족스러워 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만큼. 그래서, 지금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방편을 찾다가, 하나의 면죄부를 찾아냈다. "나 잠도 몇시간 못잘만큼 되게 열심히 살아."


내가 나에 대해 가지는 (내가 언젠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내 모습과, 지금 이 순간의 진정한 내 모습은 많이 다르다. 그 괴리는 나를 괴롭게 하고, 나는 끊임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지금 이 순간 여기있는 내 모습' 대신 '내가 그리고 바라고 꿈꾸는 내 모습', 즉 내가 나에 대해 기대하고 주위에서 나에 대해 기대하는 내 모습만을 마음에 품고 바라보며 갈망한다. 그 덕에 '진짜 생겨먹은 그대로의 나'는 나로부터 방치되고 외면받고 소외당한다. 나는 그런 방치와 외면과 소외를 완성하기 위해, 끔찍하기 그지없는 '진짜 생겨먹은 대로의 지금 이 순간 내 모습'이 사실은 내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면죄부를 찾는다. 허둥지둥. 어떻게든 찾아낸다. 그래서 찾은 나의 보물같은 면죄부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을 잠식해나간다. 나중에는, 진짜 내 삶의 많은 부분들도 잠식해나간다. 결국 나는 면죄부로 뒤덮여서, 진짜 내 모습이 어땠는지 이제는 거울에 비춰보아도 알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건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는 무얼 더 고민하게 될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얼굴을 돌릴 것인가. 혹시 이 글에 담긴 나의 치부를 보는 여러분은, 진짜 여러분과 바라는 여러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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