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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27. 2015

책 읽는 밤은 당신의 낮보다 밝다

잠 못 드는 여름밤을 위한 '밤의 책들'

누군가에게 밤은 선생이다. 혹은 밤은 책이며, 도서관이다. 당신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줘야 하는 낮은, 사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어둠이 내리고, 그 어둠 뒤로 숨은 당신은, 밤이어야 온전히 혼자가 될 수 있다. 낮이 '함께' 있는 시간이라면 밤은 '나'의 시간이다. 

밤의 책들이 있다. 제목이 그렇든 내용이 그렇든 혼자 있는 밤의 '나'를 유혹하는 책들이다. 밤의 책이라고 반드시 밤에 읽어야 하는 규칙은 없지만, 밤이 아니라면 어울리지 않는 그런 책들. 하긴 이동진은 책 제목을 통해 '밤은 책'이라고 했지만, 그것을 뒤집어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모든 '책은 밤이다'.


밤에 쓴(100% 자신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그러했을 듯), 밤에 어울리는, 밤을 다룬, 제목이 '밤'인 책, 몇 권을 소개한다. 

1.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선생의 첫 산문집이다. 지난 4년간 한겨레신문 등 일간지에 게재했던 칼럼들과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는 밤에 일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밤을 이렇게 말한다. 

"밝은 곳에 있는 가능성은 우리가 다 아는 가능성이고 어둠 속에 있는 길이 우리 앞에 열린, 열릴 길입니다. 때로는 그 가능성 자체가 문학이죠."

"나이가 들면 어둠은 더욱 많아집니다.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빛나는 순간은 아주 가끔이죠.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이가 들면 어둠에 익숙해지고 어둠을 용서하게 된다는 거예요."



2. 이동진의 <밤은 책이다>

영화평론가이자 독서가인 이동진의 독서 에세이. 시간과 연민, 사랑과 관련된 77권의 책들을 소개한다. 모든 책은 밤에 제격이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깊은 밤이나 새벽에 읽기 좋은 책들이 있다. 그 책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동진은 밤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지만 난 밤눈을 이용하여 돌아다니면서 빅토르 위고의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빛나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다. 빛나는 세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세계다. 우리의 육신에 달린 눈은 오직 밤만을 본다.' 난 어둠과 숲과 밤의 동물들과 하나가 되었다."


3. 밥장 <밤의 인문학>

 

<더 빠>라는 술집이 있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수요일 밤만 되면 몇 명이 모여 책과 인생을 논했다. 이곳의 죽돌이 '밥장'은 이들과 함께 아예 '수요밥장무대'를 마련했다. 모임 취지는 인문학으로 삶을 조금이라도 더 촉촉하게 해보자는 것.  


밤에 맥주를 앞에 놓고 할 얘기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이들도 맥주, 외로움, 여행, 연애, 인간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인문학적' 대화를 나눈다. 이 책은 그 대화 내용을 모았다.


"<밤의 인문학>을 무대로 멋진 작가들의 멋진 생각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집배원처럼 작가와 문장, 이야기들을 배달해드리고 싶습니다. 딱딱한 강의 대신 맥주 잔을 부딪치며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누가 빨갛고 누가 하얗더라는 이야기 대신, 부동산과 재테크 대신, 글로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책과 인문의 바다에서 마음껏 허우적거리고 싶습니다." 


 4.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

알베르토 망구엘은 <독서의 역사>, <독서일기> 등을 통해 이미 만만치 않은 독서이력을 과시했다. 그를 '세계 최고의 독서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글쎄다. 이것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하여간 책과 독서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당신은 도서관에서 무엇을 떠올리는가. 아마도 기억과 추억, 경험이 다른 만큼 제각각일 터. 망구엘은 신화, 정리, 공간, 힘, 생존, 상상, 정체성 등 도서관과 연관되는 열다섯 개 주제를 놓고 도서관을 말한다. 망구엘은 책과 도서관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낸다. 

"우리는 어떤 도서관에서는 희망을 읽고, 어떤 도서관에서는 악몽을 본다. 우리는 도서관을 그림자에서부터 끌어낸다고 믿는다. 우리가 즐겁게 살기 위해서 책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 파트릭 모디아노의 <한밤의 사고>

                                   

글쎄다. 언젠가부터 서점가의 '노벨상' 특수가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나부터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즐겨 찾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 가는 경향도 있다. 어찌 됐든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사고는 대게 밤에 일어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한밤중에 일어난 의문의 차 사고를 매개로, 한 남자의 쓸쓸하고도 모호한 기억 속 풍경을 그리고 있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은) 내 삶의 한 시절에 종언을 고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소설에서 우연히 발생한 '한밤의 사고'가 주인공의 운명을 바꾼 것처럼 이 책도 자신에게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 셈이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6. 황경신의 <밤 열한 시>

황경신에게 밤은 갈등하는 시간이다. "삶에 중독되어 있는 혹은 마비되어 있는 낮의 시간이 다 지고 또 한 번의 밤이 깊어질 때마다, 여행을 끝내고 막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차가운 물을 마시고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반이고, 누군가 다정한 사람을 만나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반이다."

갈팡질팡하고 단호해지는 시간이 밤 열한 시다. "우리가 만약 밤 열한 시에 함께 있다면, 그런데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서로의 맨 마음을 이미 들여다본 것이다."

황경신의 열일곱 번째 책이다. 


일상의 고단함으로 지친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람 관계의 신산스러움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밤'이 그 무엇이든, 밤은 늘 당신의 책 읽기를 허락한다. 밤은 선생이자 책이다.

  

당신의 책 읽는 밤은, 늘 낮보다 밝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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