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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알유 Nov 21. 2020

소녀-4

나는 3명의 이복형제와 같은 집에서 자랐다.

당연히 이 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위로는 3명의 언니와 밑으로 3명의 동생이 나의 친형제이다.

아버지는 멀지 않은 큰 어머니가 사는 집과 우리 집을 3일, 4일씩 왔다 갔다 하셨다.

매일 아버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아버지가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집안의 절대적인

권력자였던 아버지를 단순히 무서워했던 다른 자매들과 달리 나는 마음 깊숙이 존경했다.

아침 4시 반에 하루를 시작해도 일이 많아 가족들이 다 자는 밤늦게서야 들어오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불 안에서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과 함께 들어오는 아버지께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곤 했다.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난 건지 얼마나 많은 일을 한 건지 어린 나도

아버지의 지친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여느 옛날 아버지 같이 감정 표현이 무뚝뚝한 아버지도 

"너 밖에 없구나"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은 아버지의 가장 큰 애정 표현이었다.


7살 때쯤 아버지가 다시 큰 집으로 돌아갈 때 일곱 자매 중에서 나를 데리고 집에 가셨다.

그렇게 나는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큰 집에 가게 되었고, 처음으로 큰 어머니와 이복형제들을 만났다.

"오늘부터 이 아이와 함께 살게 되었소" 아버지는 큰 집에 들어가면서 통보를 하였다.

나는 눈치를 보면서 인사했다. "..... 안녕.. 하.. 세.... 요" 

이복형제들은 이미 나와 나이 차가 10살 이상 났고 처음 만난 큰어머니는 다음 날부터 

나에게 부엌일을 시켰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아침 식사를 제외하고는 함께 상에 앉지 못했다.

겨울이 되면 차가운 냇가로 나가서 빨래를 했고 부엌 구석자리에서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그런 일로 기죽지 않았다. 나는 그런 류의 아이가 아니었다.


하루는 큰어머니가 계에서 돈을 뜯겨서 계주를 잡으려 다니다가 그만 아버지의 저녁 식사라는 

가장 중요한 일을 놓쳤다. 배가 고파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나만 있는 텅 빈 집에 큰어머니는 어디 가셨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때다 싶어 "큰어머니가 계주 잡으러 갔어요! 계주가 많은 돈을 들고 도망갔나 봐요..!"

큰어머니의 비상금을 모르셨던 아버지는 큰어머니가 오시고는 아버지가 호통을 치셨다.

나는 '그래 꼴좋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큰돈을 몰래 꽁쳐 두랬나' 싶었다.

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시켰지만 너무 힘들다 싶으면 나도 아버지에게 가서 종종 일렀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잘 대해주시오" 한 마디 했고 며칠 동안은 편해졌다.


여름이 되자 서울로 대학을 들어간 이복 언니가 방학을 맞아 내려왔다.

나는 그때 처음 만났는데 새침데기였던 기억으로 남는다. 

아버지가 언니와 함께 고모네 집으로 심부름을 보냈적 있다.

고모의 집은 버스를 타고 꽤나 멀리 가야 해서 가는 길에 점심을 사 먹어야 했다.

언니는 한 짜장면 집을 가리키면서 "저기서 먹고 갈래?" 했다.

나는 오랜만에 하는 외식이 좋아서 씩 웃었다.

오이와 계란 프라이가 올라간 짜장면을 맛있게 먹고 나가기 전에 계산을 하는데 

언니가 본인이 먹은 것만 계산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내가 돈이 없다고 하니 "어머, 너 돈 안 가져왔니..?" 그러더니 

정말 몰랐다는 표정으로 내 것까지 계산을 했다.

그러고는 "다음부턴 너 밥은 네가 계산하렴.." 말했다.

도대체 아직 국민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무슨 돈이 있단 말인가.

퍽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그녀는 다음 겨울에 집에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방학에 집에 오라고 전화로 호통을 치고 나서야 집에 왔는데 웬 남자와 같이 왔다.

언니가 집에 오지 않은 이유는 서울에서 만난 이 남자 때문이었다.

'서울깍쟁이'같이 생긴 좁은 어깨에 마른 남자를 보여주면서 둘은 교회에서 만났고 지금 매우 좋아하고 있으니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서울의 'E'대학교를 다니는 언니가 만나는 남자의 학교도, 집안도, 

사내대장부와는 거리가 먼 배포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어린 나도 보면서 '에잇. 뭐 저런 말랑말랑한 사내가 뭐가 좋다는 거야' 싶었더랬다.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고 먼 길까지 온 남자를 집에서 재우지도 않았다.

그러다 방학 동안 참지 못하고 언니가 서울로 훌쩍 떠난 날에 큰 어머니는 발을 동동거렸다.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다시 돌아오기로 했는데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밖에서 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몰래 문을 열었다.

대문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들어왔는데 아버지는 깜깜한 집에서 꼿꼿이 허리를 펴고 기다리던 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날 밤 아버지는 처음으로 회초리를 들었고 언니의 머리를 가위로 마구 잡이로 잘라 버렸다.


온 동네의 개가 한꺼번에 짖었다.

나도 그만하면 언니가 그만 만날 줄 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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