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나게 되는 사람들
2018.8.16.(목)
다이아몬드 헤드 트레일(Diamond Head Trail) - 플루메리아 비치 하우스(Plumeria Beach House) - 와이키키(Waikiki Beach) – 루스스 스테이크(Ruth’s Chris Steakhouse) – 쇼핑 (코스트코, 알라 모아나, 로스)
하와이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하와이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아이들 컨디션을 고려하여 다이아몬드 헤드의 일출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부모가 되었다. 다른 방에 묶고 있던 아들둘 가족이 아침부터 부엌에서 분주했다. 다이아몬드 헤드에 가는 아침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우리와 아침 일정이 같았다. 그 가족이 먼저 나가고 우리는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헤드 정상에서 이 가족을 다시 만났다. 하하하. 인도를 여행할 때도 한국인들이 가는 배낭여행 코스가 비슷하다 보니 한국의 30배가 되는 넓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곤 했었다. 3번 만나면 결혼해야 된다고 했는데 내 친구 진희는 정말 인도에서 만난 진화 오빠와 결혼을 했다. 문득 신기하다. 좁은 한국 땅에서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이 넓은 하와이 땅에서 서로 약속도 안 했는데 밤에 한 집에서 자고, 아침에 산 정상에서 또 만나고 하는 게 말이다. 이렇게 귀한 인연인데 이름도 몰라서 ‘아들둘 가족’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것도 신기하다.
부부의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는데, 두 분이 셀카 화면 안에 들어가려고 최대한 밀착하여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가웠다. 일출을 보는 이유는 일출이 아름다워서도 있지만 해가 완전히 떠서 더 뜨거워지기 전에 다녀오라는 깊은 뜻도 있나 보다. 열심히 걸어서 30분, 여유 있게 다녀오면 왕복 1시간 반 이상 걸릴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30분 만에 다녀와서 얼른 조식을 먹으러 가려던 계획은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어그러졌다. 아이들은 자꾸만 내 앞으로 가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천천히 같이 가자고 소리를 지르다가 애들 어딨는지 좀 챙겨보라며 남편까지 보내고 나니 나는 또 꼴찌가 되었다. 애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애들 입장에선 자꾸 엄마가 뒤에서 사라지는 거였다. 오르막길이 왜 이리 숨이 차는지. 오른쪽 코스와 왼쪽 코스 중에 더 수월하다는 왼쪽을 선택했는데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 가족 중 꼴찌가 될 때마다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세 남자가 나란히 걷는 뒷모습 사진도 좋지만, 옆모습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 오래오래 건강한 다리로 아이들과 같이 걷는 엄마이고 싶다.
정상의 탁 트인 시야에 내 눈과 마음도 열렸다. 땀 닦는 사람들의 여유가 향기처럼 퍼진다. 와이키키 쪽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애들한테 사정해서 겨우 사진을 찍고 더 이상 사진은 노노라는 아이들을 먼저 내려보냈다. 같이 안 올라가고 같이 안 내려오면 큰일 나는 줄 알던 불안한 엄마가 이제 좀 큰 건지, 간만 커진 건지, 뒤에서 남편과 둘이 사진 찍으며 천천히 내려왔다.
아침을 안 먹고도 아침부터 서둘러 트래킹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호텔 조식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영애가 결혼식을 해서 유명해진 카할라 리조트의 플루메리아 비치 하우스에서 우리의 마지막 하와이 브런치를 즐기기로 했다. 예약을 하지 않아서 30분의 웨이팅 시간이 있었다. 배가 무지 고팠지만 나는 이 웨이팅 시간이 참 좋았다. 호텔 안을 마음껏 둘러볼 수 있는 권리와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호텔 야외에 인공 바다 같은 곳이 있어서 다양한 물고기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돌고래와 돌고래 체험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하와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카할라 리조트는 나에게 이영애 결혼식도 아니고, 조식 뷔페도 아니고, ‘돌고래와 같이 수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체험비가 비싸도 꼭 예약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갇혀있는 돌고래를 체험하고 싶은 거야?’라고 말하며 탐탁지 않아해서 단단히 삐졌었다. 내가 이거 사달라, 저거 하고 싶다 하는 사람도 아닌데 모처럼 꼭 하고 싶다는 이것 하나에 no를 하다니 섭섭했다. 그런데 남편 말의 속뜻은 ‘바닷속에 살아있는 돌고래를 만나보자.’였다. 그런 건 있는 줄도 몰라서 꿈꿀 수도 없었던 나는 ‘비싸니까 no’로 남편의 말을 잘못 받아들였던 거다.
그리고 나는 빅아일랜드 바다에서 살아 춤추는 돌고래를 만났다. 나의 버킷을 이루었다. (이날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4에 있다 https://brunch.co.kr/@blessed0594/11 )
이 리조트가 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인 줄 알았으면 나는 여기서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하지 못했던 더 넓은 세상이 있었다. 다시 한번 빅아일랜드의 바다에서, 돌고래와 수영하던 그날 그때로 돌아갔다.
여전히 기적이고, 선물이다.
마침 수의사가 돌고래 건강검진을 하러 왔다. 돌고래 이빨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연신 물고기를 던져주면 돌고래는 한결같은 미소로 서 있었다. 돌고래 표정이 이렇구나. 돌고래야 넌 슬플 때는 어떤 표정이니? 입꼬리랑 눈꼬리를 웃는 모양으로 고정시켜 놓은 것처럼 돌고래는 표정이 그랬다. 너의 다양한 표정이 궁금하구나.
호텔 앞으로 바로 이어지는 전용 비치도 아름다웠다. 수영복을 가방에 담아왔으면 나는 뛰어들었을 거다. 전용 비치를 넘어서까지 한참을 거닐었다.
정말 비싼 조식이었는데 늦게 가서 조식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음식이 잘 채워지지 않았다. 맛은 기억에 특별히 남지 않았지만, 바다를 보며 바닷바람을 느끼며 브런치를 먹던 그 자리와 그때의 감각은 생생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와이에서 유일하게 파킹 서비스를 받았다. 제복을 차려입은 멋진 아저씨가 우리 차를 몰고 호텔 정문 입구로 왔다. 참, 하와이에서 유일하게 가 아니라 내 인생 처음이었다.
오늘은 아빠곰이 서핑을 대여해서 혼자 타보기로 했다. 나와 아이들은 와이키키에서 마지막 바다를 즐기기로 했다. 이번에는 꼭 멋있게 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려고 했으나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윌리 찾기 놀이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기로 했다. 바다는 신기하다. 뭘 하고 놀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참 즐겁게 놀았다. 애들 어릴 때 ‘하루 종일 애랑 뭐하고 놀아?’하고 미스 친구들이 물어보면 ‘음, 뭐라 설명을 못하겠는데 나는 놀 줄도 모르고 놀아줄 줄은 더 모르는 엄만데 어떻게 재밌게 놀아지기도 해.’라고 대답했었다. 바다에서도 똑같다. 물튀공(물에 튀기는 공)과 조개 찾기 놀이, 둥둥 파도타기. 이렇게 말로 옮기면 시시해지는데 그때는 깔깔대며 참 재밌게 놀았다.
남편이 왔다. 다행히? 남편은 아직 선생님 도움 없이 혼자서 서핑하기는 무리라며, 사진 찍어줄 생각 안 하고 놀길 잘했단다. 우리는 서핑보드를 배 삼아 한참 놀다가 보드를 반납했다. 놀다 보니 동물원에 주차해놓은 차 출차 예약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남편은 급하게 차를 가지러 갔다. 하와이에서는 몇 시부터 몇 시부터 주차하겠다는 시간 약속을 미리 하고 돈을 낸다. 이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사람 일이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데 초과분에 대한 돈을 더 지불하는 식이 아니어서 시간에 쫓기는 점이 불편했다. 남편이 차를 가지러 가는 동안 우리는 하와이의 마지막 바다에서 한참을 더 놀았다. 씻으러 샤워기 쪽으로 갔는데 천막에서 반가운 얼굴이 나왔다. 우리의 첫 서핑 선생님, 카이카였다.
다시 만난 카이카 선생님은 부인, 아이들과 천막에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나는 왜 두 번째 수업에 카이카가 안 왔는지 물었다. 첫 번째 수업 이후 아이들이 카이카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두 번째 수업도 카이카 선생님께 예약했었는데 아무 설명 없이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어있어 실망했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거였다. 카이카 선생님은 사실 모쿠 소속이 아니라 스타 비치샵에서 일한단다. 아내는 모쿠에서 일하는데 우리의 첫 강습 날 모쿠 강사가 모자라서 자기한테 연락이 왔던 거고 두 번째 수업은 처음부터 자기가 해줄 수가 없었는데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오해가 풀렸다. 똥꼬 1호, 2호가 좋아하는 카이카 선생님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섭섭함을 떼어내고 예쁘게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던 이유를 알았다. 애 셋 아빠였던 거다. 부부가 서퍼 강사 일을 하면서, 어린 세 아이들을 바다 천막에서 돌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카이카한테는 고단함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세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겐 아빠 같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자고 했다. 우리 사진기로도 찍을 걸 그랬다. 우리에겐 없지만 이날의 사진은 스타비치샵 홈페이지 어디에 걸려있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은 루스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먹었다. 울프강 아마데우스 스테이크 하우스와 루스스 중에 고민하다가 루스스로 결정하고, 오아후에 있는 2개 지점 중에 덜 복잡한 오아후-호놀룰루 지점으로 갔다. 초록색 시금치 소스가 스테이크와 너무 잘 어울렸고, 고기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풍채에서부터 자신감이 느껴지던 우리의 일본인 웨이터 아저씨는 아이들에게도 친절하고 서빙도 훌륭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들고 온 계산서에는 우리가 계산한 것보다 50불이나 더 많은 금액이 적혀있었다. 우리는 해피아워 시간이 아니었는지, 세트메뉴가 주문 불가인 시간이었는지 다시 메뉴판을 꼼꼼하게 확인했는데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저씨가 새로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이번에도 우리가 계산한 것과는 차이가 났다. 혹시 팁이 포함된 가격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세 번째 계산서는 정확했다. 아저씨는 이런 실수가 있었던 게 자존심이 상하셨는지 우리보다 더 굳고 화난 표정이 되어있었다. ‘미안합니다.’ 한마디면 우리는 마지막 아저씨 표정보다 아이들에게 장난치던 얼굴로 아저씨를 기억했을 텐데 아쉬웠다.
계획과 달리 오후를 와이키키에서 보낸 대가는?
쇼핑 없음!
폰 메모장 하나를 ‘쇼핑’이라는 제목으로 가득 채워뒀었는데 이 메모장의 목록들은 갈 곳을 잃었다.
어제서야 급하게 하와이 쇼핑법을 검색하다가, 쇼핑 할인쿠폰은 종이로 출력해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돼서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께 프린트를 부탁해볼까 고민했었는데 안 하길 잘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쇼핑을 못하게 된 게 아쉽지가 않았다. 노느라 쇼핑을 못해서, 그만큼 잘 놀아서 뿌듯했다. 버리고 새 운동화를 신고 오자며 가지고 갔던 제일 허름한 운동화는 하와이 흙과 바람을 묻히고 더 꼬질꼬질해져서 다시 돌아왔으며, 80프로 세일하는 브랜드 지갑으로 탈바꿈할 예정이었던 나의 지갑은 가죽이 벗겨져서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채로 그대로 돌아왔다. 쇼핑을 싸게 하는 게 득이 아니라 안 하는 게 득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내뱉으며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문제는 선물 쇼핑이었다. 미국 사는 동생한테 코스트코와 월마트 중 어디를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코스트코란다. 월마트, 코스트코, 알라 모아나를 문 닫기 전에 다니느라고 벼락치기하는 사람들처럼 바빴다. 순서를 정했다. 늦게까지 여는 로스를 마지막에 가기로 했다. 두남자네를 코스트코에서 또 만났다. 아침에 만나고, 밤에 만나고, 집에 가서 또 만날 사람들이다. 똑같이 초콜렛이 산처럼 쌓여있는 카트를 밀고 다니다 서로를 보자마자 웃음이 났다. 이게 제일 낫겠죠? 뭐 샀어요? 서로 쇼핑 정보를 교환했다. 이 와중에 나는 애들이랑 미니언즈 인형을 쓰고 사진을 찍고, 우리 남편은 와인을 슬며시 담았다.
남편은 쇼핑의 천국이라는 하와이까지 와서 쇼핑할 시간을 주지 못했다며 나에게 두고두고 미안해했다. 나는 돌고래 귀걸이와 탱크탑 위에 힙하게 걸치고 싶었던 알록달록 나시티가 아쉽긴 했지만, 쇼핑을 못한 건, 아니 안 한 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건 대신 경험을 샀다.
친정엄마는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몇 번을 물어도 하나도 없다고, 절대 뭐 사 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마지막에 ‘근데 하와이 노니 주스가 관절에 좋다든데...’하고 말끝을 흐렸다. 계속 물어보길 잘했다. 관절이 안 좋은 엄마를 위해 노니주스를 찾아 알라 모아나에서 온 드럭 스토어를 다 뒤져서 겨우 하나를 샀다. 빅아일랜드에서는 시식만 했던 빅아일랜드 쿠키에 들러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쿠키를 샀다. 시식 빚을 여기서 갚았다. 로스는 뭐라도 건져볼까 하고 들렸지만 너무 과감하거나 독특하거나 불편해 보여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와이의 마지막 밤은 도무지 내일 새벽까지는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빨래를 널며 짐 싸기를 내일로 미룬 채 그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