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자네는 아는가? 선대에 나를 가둬뒀던 세 양반들이 하늘에서 통곡하겠구먼. 자네는 나를 어찌할 수 없어. 자네는 나 같은 존재만을 느껴. 그래서 어찌할 수 없거든. 인간들이, 이 세상이 나를 만들어 냈어.”
김 선생은 울림통 속에서 메아리치는 굵직한 소리를 듣느라 지금 상황을 깊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뒷덜미를 쥐고 있던 주먹의 힘이 풀렸다. 그 틈을 눈치 첸 검게 잠식된 기자는 비상구 문을 열어 몸을 피했다. 열린 비상구 출입문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열린 문 밖에는 테라스처럼 울타리가 있었고 그 넘어 가로등 머리가 바로 보였다. 4층쯤 되는 높이의 비상구였다. 바람에 의해 움직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슈슉’
한 손으로 테라스 울타리를 잡고 두 다리를 띄어 울타리를 순식간에 넘었다. 두 손으로 가로등의 머리를 붙잡고 몸을 기둥에 기대어 흐르는 물처럼 내려왔다. 기둥 중간쯤 잡았을 때 기자의 다리는 땅에 닿을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 김 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씨익 웃음 지고 기자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김 씨는 사라져 가는 기자의 모습을 보면서 벽을 세차게 쳤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쓸모없는 재능이구만.”
탄식이 터져나왔다. 김 씨는 남아있는 기자의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처음 기자를 만났던 장소로 돌아갔다. 아내는 흐트러진 가구들과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김 씨는 차분하게 집을 정리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놀라시진 않으셨는지.”
기자의 아내는 말없이 물건을 치우며 울먹거렸다.
‘바보. 괜찮을 리가 없잖아.’
울먹거리는 기자의 아내를 보며 김 씨는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었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주머니 속 소금을 만지작거리며 거리를 거닐던 권 씨는 중얼거렸다.
“땅의 기운이 이상해. 사람들이 미쳐 돌아가고 있잖아.”
“저것 봐. 신호등 무시하고 막 건너가잖아. 저러면 운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저러다 사고 나지.”
권 씨는 주머니 속의 소금을 횡단보도 여기저기 뿌려대기 시작했다.
소금을 뿌려대는 모습을 보던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어머 저 사람 뭐 하는 거야? 미쳤나 봐. 주머니에서 소금을 꺼내서 뿌리고 있어. 봤어? 봤어? ”
그 말을 들은 권 씨는
“아……아아… 예방차원에서.. 하는 겁니다. 다 우리 좋자고 하는 거예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려가는 것 같았다.
“뭐라는 거야. 진짜 미쳤나 봐.”
소금은 악의 기운을 물리친다는 옛 말이 있는데, 요즘 시대에는 땅에 소금 뿌리는 일은 없다. 지렁이에게 잠식된 인간들에게 소금을 먹여 인간으로 변하게 해야 한다. 더 이상 잠식 당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