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에 맥주를 마시다가

by 김지은이

며칠 전엔 늦은 퇴근길에 짬뽕집에 홀린 듯 들어갔다. 손님은 몇 되지 않았고 대부분 다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점원분은 내게도 다인용 테이블을 권해주었고 나는 자리에 앉으며 짬뽕과 맥주를 주문했다.

짬뽕이 나오길 기다리며 먼저 받은 맥주병 뚜껑을 따고는 망설임 없이 잔을 채웠다.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솔솔 올라오는 짬뽕이 나왔다. 곧장 국물부터 몇 숟갈 떠먹었다.


아 피로가 풀리는 느낌, 이렇게 다 먹고 바로 드러누울 수 있음 더 좋겠다.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고 각자 자신의 밥에 집중한다. 나는 빈 술잔을 좀 더 채우고 벌컥벌컥 잔을 비웠다. 그리곤 젓가락에 면을 둘둘 말아 크게 한 입 집어넣는다.​


그나저나 이렇게 간단해도 괜찮구나


처음 술을 접했던 갓 스물의 나는 지금의 이런 내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다. 자고로 술자리란 떠들썩한 무리와 함께, 본격적인 자리 속에서 근사한 안주를 차려놓고 부어라 마셔라 유쾌한 분위기가 끝이 없을 듯 이어져야만 하는 그런건 줄 알았었다.


그래 그 때의 나는 술약속이 잡히고 들뜬 마음에 생각에도 없던 옷 쇼핑까지 했었다. 급하게 사느라 내 몸에 맞지도 않는 걸 골라놓곤 몇 번 입어보지도 못했던 까만 자켓. 나한테 딱 맞는다며 당장 사라던 그 때 그 옷가게 아저씨의 얼굴도 떠오르려 한다.

​생각해보면 다른 것이라고 뭐 크게 다를까. 다 고만고만하고 간단할 수도 있는 일들인 것인데...

오래 전 고3 이었던 내게 수능날이 가까워질수록 가장 커지던 고민거리는

'다른 애들은 다 집에서 싸주는 도시락 가져올텐데 난 점심시간에 어떡해야 하지?'

그래서 수능날 새벽에 일어나 내가 했던 일은 내 점심도시락 반찬을 만드는 것이었다.


고심하고 고른 메뉴는 간장두부조림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날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간장양념의 농도를 조절할 줄 몰라서 간장은 금방 타는 냄새를 풍겼고 나는 가스렌지 앞에서 안절부절 했다.

'이걸 불을 꺼야 하나?'

'그러기엔 아직 두부에 양념이 안밴 것 같은데...'

'처음부터 다시 하기엔 시간이 없는데...'

그 날 시험보는 것 자체는 긴장되지 않았다. 사실 좋은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크게 신경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 너무 긴장됐다. 꼭 운동회 날의 나처럼, 소풍날의 나처럼.

그렇게 오지 않길 바랐던 점심시간. 망설이며 도시락 뚜껑을 열던 내 앞에 앉은 친구는 도시락통 속 까만 두부조림을 잠시간 빤히 바라보았다. 가능한 가지런히 담아보려 애썼던 까만 두부조림이 있었다.

그 때 아마 나는 죄라도 지은 양 친구에게 횡설수설 엉망인 두부조림에 대해 설명해보려 했을 것이다.

내 삶의 대부분은 그랬다. 너무 크게 긴장하고 떨며, 크기를 잔뜩 부풀린 걱정거리를 달고 살았다. 두부조림을 만들던 그 날 그 새벽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조금 더 간단하게 생각해도 돼."


안아줄 수도 있으면 더 좋겠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이 다 지난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아마 나는 다시 돌아가더라도 '너는 우리랑 달라' 라는 그 눈초리 한 번에 잔뜩 경직되어 웅크리고 말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런 불안한 내가 쌓이고 쌓여 나를 다독여 줄 생각도 해보게 되었으니 이 정도면 괜찮다.

매거진의 이전글이 글에 들어와서 따뜻한 눈빛으로 봐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