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동력
디스크 환자였던 내가 10km 마라톤을 완주하였다. 그때 당시 건강검진표를 다시 꺼내봤더니 정말 눈물이 주르륵
병원에서 주사 치료를 받고 나오던 어느 날, 방사통 때문에 엉덩이를 계속 두드리면서 보조기를 착용하고 절뚝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지나가는 차에 비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너무 비참했다. 약물치료, 주사치료, 심지어 민간요법까지 다 해봤는데 아무런 차도가 없어서 정신적으로도 괴로운 나날들이 이어졌다.
정말이지 디스크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동반한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이 통증은 대체 언제 사라질까. 이 지난한 과정이 대체 언제 끝날까. 내가 다시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절망적인 매일이 1년 가까이 쌓여갔다.
결국에는 병원을 잘 만나서 치료를 잘 받았고, 지금은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으며, 간헐적인 통증자체도 없을뿐더러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이것도 정말 웃긴 것이 한주 내내 새벽 쪽잠을 자는 바람에 정작 대회 당일 아침에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자버렸다.
행사장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에 눈을 떠버리고 말았고, 대책 없는 느낌과 함께 정신없이 유니폼 갈아입고 이름표, 안내장, 무릎 보호대만 챙겨서 무작정 뛰어나갔다. 비가 온다고 하여 우산을 챙겼는데 하필 집힌 우산이 장우산이었던 건 최악이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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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속한 그룹이 출발하는 시간은 7시 30분.
참가자 전체 출발 마감시간은 7시 50분.
그 뒤로는 도로 통제가 풀려서 참가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쓰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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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지만 일단 지하철 안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세팅했고 이름표도 달았고 무릎 보호대도 야무지게 찬 다음 지하철역 도착하자마자 목에 피 맛나도록 뛰었다.
이미 모든 참가자들의 스타트가 끝난 지 한참 지났고, 현장도 철수되고 있었다. 메인 행사장이며 물품보관소며 들릴 겨를도 없이 마감시간 1분 남긴 7시 49분에 출발 지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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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숨 돌릴 새도 없이 혼자만의 꼴등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약간은 다른 의미로 수천 명을 따돌려버린 채... 한 손에는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는 장우산을 고이 들고서... 내가 전날까지 생각했던 출발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 넓은 도로 위를 혼자 뛰고 있는 사람이 나라니..... 이게 꿈이 아니라니
뛰면서도 실화인가 싶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일단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행사장까지 기어 나온 것만으로도 잘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냥 계속 뛰었다.
그런데 그냥 묵묵히 계속 뛰다 보니까 달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가망 없는 꼴등으로 시작했는데 무리에 편입될 기미가 보이니까 기분이 대박 째집디다. 이 기분은 오래오래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페이스가 가장 중요한 법이고 동요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뛰다 보니 어느새 시야가 트이면서 다리가 나왔는데 여기서 얼굴도 모르는 직원분들(로 추정되시는 분들)이 열심히 응원을 해주셨는데 갑자기 울컥-
대회 참여 못할까 봐 오는 내내 전전긍긍 긴장했던 마음이 풀려버렸나 보다
놀랍게도 이때부터 갑자기 힘이 붙기 시작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모두가 각자 저마다의 목적과 목표가 있겠지만 나한테 주는 의미 역시 남달랐다
달리기를 몇 달째 연습했지만 아직도 1분 1초 단위로 뛰지 않고 싶은 마음의 연속이고,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가 지긋지긋하게 반복되기도 했다.
그래도 꼭 지키고자 했던 목표는 아무리 힘들어도 반환점 도착할 때까지는 걷지 않기, 40분 전에는 멈추지 않기였는데 그냥 계속 참으면서 뛰다 보니 한 번도 걷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았다.
꼴등으로 출발했지만 그룹 안에 안착한 것은 물론, 수많은 분들을 뒤로 보내며 10km 무사 완주!
그것도 평균 기록보다 빠르게! 헤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자꾸만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진짜 오래 살고 볼일이다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