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전시회 ‘넥스트라이즈(NextRise)’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산업은행과 한국무역협회가 개최한 넥스트라이즈에는 총 500여개의 국내외 스타트업들이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와 기술을 선보였으며, 218개의 국내외 대기업, 투자자들이 참석했다. 이러한 스타트업 전시회에는 성공의 꿈을 안고 많은 창업가들이 모이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투자처를 찾기 위한 ‘전략적 투자자’들도 많이 참관한다. 한 번 성공하기도 어려운 현실이지만, 한 번 성공한 기업들은 더 절실하게 투자처를 알아보러 다닌다. 경쟁사들은 호시탐탐 시장점유율을 늘려가며 숨을 조여오고, 큰 매출 또는 상장(IPO)에 이르게 했던 초기의 사업 아이템은 수 년이 지나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일수다. 다양한 산업과 시장으로의 다각화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하고자 하는 것이 이러한 성공기업들의 지상과제이며, 시장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수합병이 필수다. M&A라는 패달을 돌리지 않으면, 당신이라는 자전거는 넘어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인수합병이 원활하지 않다. 스타트업들도 먼저 성공한 기업들에게 기술탈취를 당하느니 코스닥 시장에 상장(IPO)하기를 원한다. VC나 PE 같은 재무적 투자자들도 기술특례상장, 스팩(SPAC)상장 등 여러가지 특례제도를 이용하여 그들이 투자한 기업들이 빨리 상장되어 지분을 현금화하길 원한다. 이렇게 인수합병(M&A)이 어려워진 나라가 된 원인에 대해서 세가지를 꼽아보고자 한다.
1. 매수자 측 사업계획의 부재
“엄변, 좋은 스타트업 있으면 좀 소개해줘.” 라는 부탁을 1년에 100건도 넘게 받는다. 특허법인 BLT에 2000개가 넘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탁을 들으면 “사업계획서 있으세요?”라고 되묻는다.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들은 사업계획 없이 인수합병을 시작한다. 이들을 ‘전략적 투자자(SI)’라고 하는데, 대부분은 여유현금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현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계획’이 없으면, ‘좋은 기업’을 소개해줄 수 없다. 전략적 투자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좋은 기업’을 100개 넘게 소개해 줘봐야 추천해주는 내 시간과 그것을 검토해야하는 그의 시간이 버려질 뿐이다. 돈은 있지만 계획이 없다면 차라리 VC나 PE같은 재무적 투자자(FI)들의 벤처펀드 결성에 LP로 참여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있다.
성공한 기업이 소액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사업계획이 필요하지 않지만, 회사의 미래를 위한 큰 투자 또는 그룹사가 되기 위한 인수합병에 있어서는 사업계획서가 매우 중요하다. 매수자(Buyer Side)측에서는 잠재적 매도자(Seller Side)의 사업계획서 입수에 중점을 두지만, 그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매수자의 사업계획서’이다.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기업이라면, 1000억원의 매출을 만들기 위한 사업계획을 세워야 한다.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기업이라면, 1조원의 매출을 만들기 위한 사업계획을 세워야 한다. 원양어선으로 참치를 잡던 회사가 포장용기 산업, 물류산업에 관한 사업계획을 치밀하게 세웠기 때문에 지금의 동원그룹이 될 수 있었다. 단순히 ‘우리 돈 좀 있는데, 괜찮은 기업 좀 알아봐줘’라고 말하고 다니면,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벌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분들의 제안은 늘어나겠지만, 정작 좋은 딜은 찾아오지 않는다. 좋은 딜은 매수자 측의 ‘사업계획서’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의 국가이다. 제조업 기반의 경제 생태계에서 성장한 제조업 기업들의 기존 원가계산 방식으로는 스타트업 투자 및 인수합병은 거의 불가능하다. 역사가 오래된 전통기업일수록 스타트업들의 사업계획서 작성방법을 배워서 자신들의 10년 후, 20년 후를 그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그림에 맞는 젊은 친구들을 만난다면, 훨씬 뜻이 잘 맞는 상대방을 찾기가 쉬워지고, ‘힙한 형’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부실한 기술실사
재무실사(Financial Due Diligence)와 법률실사(Legal Due Diligence)는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인수합병의 대부분을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이 관리하는 이유도 역시나 재무실사와 법률실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100억짜리 회사를 인수했는데, 10억의 가치만 있었다면 완전히 실패한 거래인 것이고, 100억짜리 회사를 인수했는데, 200억의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그 또한 완전히 실패한 거래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서 ‘기술실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기술만 있는 100억짜리 회사를 인수했는데, 10억의 가치도 없는 기술이었다면 그 역시 완전히 실패한 거래이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술실사(Tech Due-Diligence)’에 관한 이야기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그다지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다.
기술실사는 피인수기업이 보유한 기술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이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특허, 기술 인프라 등을 포함해서 평가한다. 피인수자 측이 원천특허로 주장했던 특허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특허인 경우도 있고, 대단한 성능을 보인 소프트웨어이긴 하지만, 보안 취약점을 갖고 있어서 사이버 공격의 위험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하드웨어적으로 훌륭한 기술이긴 하지만, 경쟁사의 원천특허를 피해갈 수 없어서 결국 미국 시장진출에 쓸 수 없는 하드웨어 일 수도 있다. 인수합병 후 알고 보니 피인수기업의 기술이 인수기업의 기술과 연결하기 어려운 기술일 수도 있다. 또한, 피인수자 측에서 ‘노하우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고 하면서 극구 공개를 꺼리는데, 인수대금을 납입한 후, 해당 기술이 인수자 측에서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술일 수도 있다. 기술실사는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서 재무실사, 법률실사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과정일 수 있으며, 앞으로 그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3. 합병 후 통합(PMI) 실패
인수합병의 성과는 딜(계약)이 이루어지고 일정기간이 지나봐야 성과를 알 수 있다. 당장에는 대규모 인수합병 금액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만, 정작 그 인수합병이 제대로 성과를 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자주 다루지는 않는다. 많은 기업들의 인수합병 과정은 결국 ‘성과’를 내기 위함이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인수합병 후 통합(PMI: Post-Merger Integration)이 인수합병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함은 M&A전문가들 사이에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우선, 인수합병 초기 단계부터 명확한 통합 로드맵을 작성하여 단계별 계획을 세워야한다. 각 과정의 책임자를 명확히 지정하고, 분야별로 통합을 이끌 리더를 지정해야한다. 세부적인 일정관리는 당연하다.
두번째, 물과 기름처럼 다른 문화를 가진 두 회사를 합병하여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문화적 통합에 힘써야한다. 통합 과정은 불안 그 자체이며, 피인수되는 기업에 속한 직원들은 상대방을 ‘점령군’이라고 공공연히 칭할 정도로 두려움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전통기업은 스타트업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하며, 그들의 성과와 성장가능성이 그들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들임을 알아야 한다. 조직 전체의 일체감을 높이고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부터 익히도록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시스템 통합이 중요하다. 서로 다른 조직의 IT 시스템, 업무 절차 등은 완전히 다를것이기 때문에 시스템적인 통합에 대한 계획이 매우 중요하다. 인수기업에게 30년간 ‘당연’했던 시스템이 피인수기업 직원들에게는 완전한 구닥다리이자 업무능률 저하요소라고 생각될 수 있다. 반대로 빠른 의사결정이 성장동력이었던 스타트업의 IT시스템은 책임과 역할이 모호한 불명확한 IT시스템이라고 인수자 측에서는 생각할 수도 있다. 통합된 성과 평가 시스템도 필요하며, 피인수기업의 조직원들에게 너무 많은 변화가 발생하여 집단퇴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노력해야한다.
인수합병은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열쇠다. 다국적 기업이 되고자 한다면, 사업계획을 크게 그려야 한다. 또, 인수할 기업에 대한 기술실사를 분명히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합병 후 통합과정에 공을 들여야 한다. 한국의 경제는 미국자본에 의한 인위적 제조업 환경이 그 성장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2024년 오늘을 보자. 인구도 감소하고 경제의 활력이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를 인수합병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BLT 칼럼은 BLT 파트너변리사가 작성하며 매주 1회 뉴스레터를 통해 발행됩니다.
필자소개
엄정한 파트너 변리사는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를 졸업하고 2006년 43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유철현 변리사와 함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엑설러레이터형’ 특허사무소인 ‘특허법인 BLT’를 창업하였습니다. 기업진단, 비즈니스모델, 투자유치, 사업전략, 아이디어 전략 등의 다양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엄정한 변리사 : www.UHM.kr
엄정한의 생각마루 / facebook : www.FB.com/thinku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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